“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거나 좋아 보이는 것, 호기심이 생기는 것, 새로워 보이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알리고 따라 해보는 것이 즐겁다.” _『별게 다 영감』, 3쪽
이승희 작가는 배달의민족 마케터로 일하던 2018년, 스페이스오디티, 에어비앤비, 트레바리의 마케터들과 함께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를 출간하며 회사 밖 세상에 이름을 처음 알렸습니다. 2020년 『기록의 쓸모 (마케터의 영감노트)』에 이어 2021년 12월 『별게 다 영감 (어느 마케터의 아카이브)』을 차례로 출간했습니다.
그의 모든 책에는 '마케팅', '영감', '기록'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마케터 이승희의 일상의 습관이었던 기록과 영감 수집은 이제 그에게 마케터만큼 중요한 ‘작가’, ‘창작자’ 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세번째 책을 출간한 이승희 작가를 새해 첫 출근일 저녁에 스토리 라이브러리에서 만났습니다.
매력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 : 디테일과 감각
지금 우리가 마주 앉아 있는 공간 '스토리 라이브러리(https://www.instagram.com/hello_storylibrary/)'를 기획하는 초기 단계에서 작가님을 인터뷰 했었습니다. 『기록의 쓸모』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기록’ 은 청소년들을 위한 작업실에도 중요한 경험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때 공간에 중요한 키워드로 ‘아득함’ 을 말씀하셨죠. 거대한 서가를 넣거나 아주 많은 것들을 넣을 수 있는 넓은 공간은 아니어서, 아득함을 어떻게 구현할까 고민했었어요.
아득함이 느껴져요! 문장 모음이나 사람들이 쓴 콘텐츠들이 많고, 쓸 수 있는 기록 도구들도 많아서 하고 싶은 게 많아지는 공간이네요.
영감을 수집하기 위해 다양한 공간, 새로운 장소들에 부지런히 다니시죠. 어딜 가서 뭘 보든 영감을 찾아내시는 분이지만, 작가님이 특히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공간에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브랜드나 주인의 취향이 디테일하게 들어가 있는 공간들을 좋아해요. 화장실까지 브랜드의 취향, 주인의 취향이 느껴지는 곳. 북유럽 콘셉트가 유행하던 때는 그 콘셉트만 가져간 공간이 많았고, 화장실에도 다 비슷비슷한 브랜드의 핸드워시가 놓여있곤 했잖아요. 그런데 그냥 비누를 쓰더라도 화장실 문에 브랜드의 정신이 담긴 문구를 하나 붙여 놓는다거나, 그런 곳이 훨씬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이 주인을 만나보고 싶다, 이 브랜드에 대해 조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호기심을 이끄는 공간들.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들어야 만남이 이어지듯이, 이 브랜드 뭐하는 곳인데 이렇게까지 했나 궁금한 곳들이 좋아요.
만드는 사람의 취향만큼 보는 사람의 안목도 중요한 것 같아요. 의도를 읽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공들인 디테일들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요.
그런데 그런 디테일들은 계속 모이면 퀄리티가 되잖아요. 디테일의 합이 퀄리티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그걸 누군가는 반드시 알아보게 되고, 그래서 알려지는 것 같아요.
그런 디테일을 만들어내려면 취향이 내 것이어야 하겠네요.
네, 내 것이어야 하고, 취향이라는 말이 거창하다면 어떤 의도나 좋아하는 것이 분명할수록 공간에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최근에 본 인상적인 공간이 있었나요?
'성수동 LCDC(https://www.instagram.com/lcdc.seoul/)'요. 자그마치나 오르에르를 디렉팅하신 김재원 대표님 (스튜디오 ZgMc 김재원 대표) 이 만드신 공간인데, 그분의 디테일을 볼 수 있어요. 복도와 공간의 구성이나 엘리베이터까지 모두 의도가 들어있는데, 도슨트 안내를 들으면서 디테일은 이 정도까지 해야 하는구나 느꼈어요. 몬스터 주식회사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공간을 표현했다고 하셨는데, 저도 그 영화 봤는데, 그걸 이렇게 풀어낼 수 도 있구나 하고.
그런 것이 ‘감각’ 이란 걸까요? 『별게 다 영감』에서도 여러 차례 등장하는 단어죠.
네, 그런 것 같아요. 감각. 그런데 제 책은 영감을 받은 것들을 모아놓은 것이잖아요. 그렇게 받은 영감을 내 것으로 소화해서 무언가를 만들어야 감각의 근육으로 쌓이는 것 같아요. 뭔가를 만들 목표가 있을 때는 제 안에 쌓여 있던 것들을 다 활용하게 되는데, 그런 기회가 없으면 감각으로 발전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냥 좋았다, 영감 받았다, 하고 끝나는 거죠.
기록에서 시작된 변화
기록하는 습관이 없었는데, 배달의민족에서 일하면서 주변 동료들의 영향을 받아 기록을 시작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이제는 작가님의 영향을 받아서 기록하는 분들도 많이 나타나지 않나요?
네, '영감노트 인스타그램 계정(https://www.instagram.com/ins.note/)'이 먼저였고, 거기서 책이 나온건데, 인스타그램을 만들었을 때 따라서 만든 분들이 많았어요. 『기록의 쓸모』나 이번 책을 보면서도 제 책을 보면서 기록했다는 말씀을 많이 해 주시더라고요.
왜 기록하는 일이 많은 관심을 받는 걸까요?
『기록의 쓸모』가 코로나 직후에 나왔거든요. 그래서 기록이라는 키워드가 코로나 시대에 급부상한 걸 저도 많이 느껴요.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까, 코로나를 지나면서 자기 삶에 대한 증거를 온라인에 많이 남겨야 하는 시대가 됐잖아요. 오프라인으로는 만날 수 없으니 온라인에서 본인의 페르소나나 존재감을 남겨야 되는 시대가 된 거죠. 자아를 만들어가려면 일상적인 나의 기록이 필요한거고요. 자신의 색깔과 언어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기록에 대한 책이 브랜딩 책들과 함께 급부상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블로그라는 매체도 한때 사라져 가는 것 같았지만 코로나 때 다시 급부상했다고 해요. 엄청 (기록을) 남기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남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록을 갈무리하고, 책이나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계신 작가님의 작업 과정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제가 제일 많이 들은 질문이 ‘그래서 아웃풋을 어떻게 내요?’ 예요. 저는 1년에 한 권씩 책을 쓰자고 스스로 목표를 잡았어요. 그러다 보니 모아둔 걸 계속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디지털에 익숙한 분들이 결국은 책을 내시는 것도 흥미로워요.
책이 주는 존재감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오랫동안 준비하고 만드는 영상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비교해 보면 영상에 비해 책은 오래 준비해서 만들잖아요. 빠르게 만들어진 콘텐츠는 그만큼 증발이 빠른 것 같아요. 모두들 책을 쓰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런 깊이 때문이 아닐까요. 오래 갈 수 있는 자기만의 콘텐츠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유튜버들도 결국 책을 내는 것 같아요.
영감 계정에 쌓은 모든 내용이 책에 담기지는 않았죠. 어떤 기준으로 내용을 추리고 담으셨어요?
지금의 기준으로 볼 때 저에게 다시 영감과 자극을 주는 것들만 선별을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했더니 공통적인 주제들이 나오더라고요.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모아둔 영감, 마케팅적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영감이나 카피에서 얻은 영감이 많았고, 자존감을 올리고 잘 살고 싶다는 마음에 계속 되뇌는 영감이 많았어요. 또 글을 꾸준히 쓰고 성실한 사람들에게 받은 영감이 많다는 걸 깨닫고 나니까, 제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였어요.
쌓아둔 영감을 책을 내기 위해 묶어 보니까 알게 된 거네요. 일단은 쌓아야 하고요.
우선은 쌓아야죠. 송길영 바이브컴퍼니 부사장님이 『그냥 하지 말라』에서 “그냥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우선은 쌓는 것으로 시작은 해야 하니까. 그래야 내가 관심있는 것, 나에게 중요한 것을 알 수 있어요.
하지만 모든 기록이 창작이 되지는 않죠.
그래서 질문을 계속 던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무엇을 했다, 어딜 갔다고만 기록하는 게 아니라 오늘 인터뷰를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고, 뭘 보면서 어떤 걸 찾았는지, 이렇게 질문으로 넘어가는 기록을 하면 계속 생각하게 되니까요. 그게 아웃풋으로 나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나에게 계속 질문을 해서 내 생각을 계속 명료하게 정리하다 보면 단단해지니까.
지금 질문을 드릴 때마다 거침없이, 조리 있게 답하고 계세요.
제가 질문 받는 자리를 진짜 좋아하거든요. 왜냐하면 질문이 귀하잖아요. 이렇게 대화하고 질문하고 대답하고 반박하고, 하는 것이 재밌어요.
떠들썩하게 호들갑 떨며 영감을 주고받는 사람들
매일매일 하늘에서 쏟아지는 영감을 놓치지 않으려면, 지금 꽂혀 있는 테마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상을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며 호들갑을 떨어야 한다. 호들갑을 떠는 만큼 반짝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_『별게 다 영감』, 7쪽
책에 ‘떠들썩한 호들갑’ 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그 말이 너무 좋았어요. 감탄할 수 있는 열린 태도, 호기심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작가님의 호들갑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첫 직장은 병원이라 점잖아야 하고, 다 아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중요했어요. 좋은 식당을 가도 원래 많이 와본 것처럼 행동해야 품격 있는 거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두번째 직장인 배달의 민족 (배민) 에 왔을 때 모두가 호들갑을 떠는 걸 보고 많이 놀랐어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셨던 한명수 상무님이 『생각의 탄생』이라는 책을 마케터와 디자이너들에게 추천하셨는데, 그 책에 ‘사소한 것의 장엄함’ 이라는 표현이 나와요. 작은 것을 위대하게 바라보는 것이 배달의민족의 철학이라는 이야기를 상무님도, 창업자인 김봉진 의장님도 많이 하셨고, 배민 콘텐츠도 사소한 것으로 위트를 만들고 재밌게 비트는 걸 많이 하다 보니 브랜드에서도 많이 배웠어요.
일상에서도 작은 것에 감동받고 즐거운 행복을 빨리 빨리 느끼는 태도를 배우다 보니까, 호들갑을 떨면 많이 얻는구나 깨달았죠.
동료들이랑 카페 같은 데를 가도 동료들은 화장실에서도 사진을 찍어오고 명함이나 영수증도 다 노트에 붙이는 거예요. 처음에는 왜 쓰레기를 안 버리고 정성스럽게 붙이고 있지 했는데 (웃음) 그게 다 자산이 되더라고요. 가져가는 영감에서 제가 양적으로 뒤쳐지는 거예요. 나도 호들갑 떨면서 좋은 걸 더 많이 발견해야겠다, 생각하게 됐어요. 좋은 걸 더 많이 발견해 내는 일이 경쟁처럼 되고,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동료들과 문화가 있었어요.
배달의민족이라는 브랜드, 리더와 동료, 문화에서 영향을 받았고, 그때 갖게 된 습관들로 지금의 작가님이 되신 건데요. 그런 문화를 가진 조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있으세요?
원래는 전혀 없었는데, 배달의민족을 나와 보니 그런 문화를 가진 조직 자체가 귀하다는 걸 깨달았고, 또 저는 주변 환경이 같이 좋아야 제가 좋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도 그런 팀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인스타그램에서 추천하신 책 『프리워커스』가 떠오르네요. 기존 회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만든 팀 이야기가 흥미로웠는데, '포스트웍스(https://www.instagram.com/post_works/?hl=ko)' 활동도 하고 계시죠. 새로운 일과 조직에도 관심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맞아요. 포스트 웍스라는 마케터들의 협동조합을 만든 이유도, 회사 아니면 프리랜서로만 나뉘는 시장에 물음표를 갖고 다양한 일의 방식을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왜 주 5일이어야만 하지? 왜 재택 아니면 오피스여야만 하지? 왜 프리랜서여만 하지? 3일은 오피스 출근하고 이틀은 프리랜서처럼 일할 수는 없을까? 하는 다양한 대화를 계속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모으고 싶다는 생각에서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시도해보니 회사와 프리랜서의 경계에서 힘든 부분도 많아서, 우리가 (새로운 방식을) 어떤 식으로 만들어 나가야 할까 계속 이야기하면서 고민하는 단계예요. 우선은 저도 이직을 해서 회사 일에 전념하고 있고요.
마케터의 일, 창작자의 일
마케터 일을 잘하기 위해서 기록을 시작하셨는데, 그 기록이 모여서 창작의 세계를 만들어냈습니다. 마케터라는 일과 창작자의 일은 서로 어떤 영향을 주나요?
처음에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 그냥 시작한 거였는데, 만들면서 생산자, 창작자 입장에 서 보니까 만들면서 느끼는 배움이나 감정들이 있고 그 안에서 성장하는 게 있더라고요. 일할 때 아웃풋을 내는 거랑, 제 개인의 것을 창작하는 건 다른 이야기잖아요. 제 인생을 들여다보고 제 생각을 끄집어내다 보니까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마케터 일을 할 때는 브랜드의 목소리로 브랜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제가 뒤로 숨어야 하는데,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분명하면 거기에 편승할 수 있는 부분도 있어요. 최근 집을 꾸밀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요, 인스타그램에서 사람들이 쉽게 예쁘게 꾸미길래 따라하면 되겠지 했는데 안되더라고요. 나의 것을 만들어내는 건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구나, 창작을 하면서 많이 느꼈어요.
마케터 일에 도움이 되는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요?
마케터 개인의 자아가 바로 서 있지 않으면 일을 할 때 많이 휩쓸리는 것 같아요. 배달의민족에 다녔을 때 제일 힘들었던 건 제가 곧 배달의민족이 되어버렸던 거였어요, 배달의민족이 성장을 하면 저도 성장한 느낌이 드는데, 브랜드가 실수할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때면 제 인생이 휘청거리는 느낌을 받는 거예요. 나라는 사람의 자아를 단단하게 세워 두고 일을 해야 브랜드를 관리하고 마케팅하는 일도 잘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또 한가지는, 우리 브랜드의 팬이나 관련된 세계의 사람들의 이야기만 주로 듣다가, 개인의 창작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들,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뭐고 어떤 것에 공감하는지 조금 다른 방향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보게 되어서, 개인 계정을 운영한 것이 회사 일에도 도움이 되었어요.
마케터의 일과 창작자의 일은 상성이 좋은 것 같네요.
상성 (노트에 적으며). 그런데, 한편으론, 모르겠어요. 브랜드의 목소리를 낼 때는 브랜드 뒤에 확실히 숨어야 되는데, 제가 취향이 강해지니까 같이 일하는 디자이너와 갈등이 심했거든요. 제 의견에 그건 승희님의 취향이라는 반박을 듣고 내 자아가 너무 강해져도 안되겠구나, 그럼 어떤 식으로 일해야 할까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마케터는 경험을 많이 해보고 좋아하는 걸 끝까지 좋아해 봐야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길 많이 하는데, 때로는 아예 취향이 없거나 무딘 것도 좀 필요한 것 같아요. 다 좋다, 좋다 하고 받아들여야 다양하게 만들어 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취향을 날카롭게 만들기보다 좀 무디게 두는 편이예요. 다 좋아하고, 멜론 TOP 100도 다 듣고, 그래야 대중이 좋아하는게 뭔지 알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진화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기록이라는 습관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오셨습니다. 요즘 새롭게 가져 보려고 하는 습관이 있나요?
기록은 꾸준히 가져가고 싶고요, 최근 습관을 들이려고 하는 건 긴 호흡의 콘텐츠를 보는 거예요. 핸드폰 스크린 타임을 8시간에서 4시간으로 줄이고, 일주일에 한번 영화를 보고 글쓰는 것을 목표로 세웠어요. 제가 작년에 영화를 세 편도 안 봤더라고요. 유튜브도 스킵하면서 보고, 뭔가를 떠올릴 때도 인스타그램에 쓸 글로 생각하게 되고요. 뉴스레터를 서른 개 쯤 구독하는데, 뒤쳐지지 않으려고, 트렌드를 빨리 담으려고 대충 막 보는 느낌이지, 저에게 생각으로 남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스스로 깊이가 부족하다는 걸 많이 느낍니다. 긴 호흡의 콘텐츠를 깊게 소비하는 근육을 기르고 싶어요.
그동안 아홉 번의 작업실 인터뷰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목소리를 전하는 창작자들을 만나왔습니다. 일의 세계를 글로 담아 세상에 소개하는 창작자, 주목하고 있는 세상의 문제를 글과 영상에 담아내는 창작자,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창작자, 창작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창작자, 일상을 포착해 음악과 뮤지컬을 만드는 창작자들... 마지막 인터뷰에 어떤 창작자를 초대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이승희 작가의 『별게 다 영감』이 출간되었습니다. 글과 영상, 음악, 그림, 모든 표현 방식이 아직 낯선 사람들에게 가장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출발점이 ‘기록’ 과 ‘수집’ 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크리에이터’ 가 될 수 있는 시대에 내가 생각하는 크리에이터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꺼낼 수 있는 사람, 자기 생각으로 일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크리에이터 아닐까.” _『별게 다 영감』, 4쪽
세상엔 다양한 영감이 가득하고, 우리는 실시간으로 세상과 연결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창작이라는 세계가 아주 멀리 있지 않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해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론 너무 많은 목소리와 정보 사이에 휩쓸려 버리기도 쉬운 시대입니다.
이승희 작가를 인터뷰하며 노트 첫 줄에 ‘눈과 목소리’ 라고 썼습니다. 호기심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눈, 즐겁게 대화 나눈 목소리를 글로 고스란히 담지 못해 아쉽습니다. 영감 수집의 기술이 있다면, 눈과 목소리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지난 열 번의 만남에서 창작자들이 각기 전해 온 생각과 에너지가 조금이라도 여러분께 전해졌다면 기쁘겠습니다. 좋아하는 세계를 발견하는, 나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기록하고 만드는 새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승희 하루하루에 충실한 기록자. 기록은 나에게 일상이자 성장이다. 일을 잘하고 싶어서 시작한 기록이 마케터라는 직업을 갖도록 이끌었고, 순간을 공유하고 싶어서 기록한 계정이 영감노트라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유튜브를 통해 일상을 기록하고 영감을 나누며 조금씩 나아간다. 좋은 것을 빨리 알리고픈 마케터. 나만의 언어로 기록하는 작가. 『인스타하러 도쿄 온 건 아닙니다만』, 『여행의 물건들』, 『기록의 쓸모』를 썼고 3명의 마케터들과 『브랜드 마케터들의 이야기』를 썼다. 앞으로도 꾸준히 이야기를 전하는 작가이자 크리에이터로 활동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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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미
벤처 기부 펀드 씨프로그램의 대표. 플레이 펀드를 통해 어린이들을 위한 제3의 공간에, 러닝 펀드를 통해 교육 실험에 투자한다. 새로운 실험이 많아질 때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