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음악으로 그리는 신비, 올리비에 메시앙이 전하는 명상곡, “구세주의 탄생(1935)”
언어가 멈추는 곳에서 비로소 시작하는 음악을 누려 보세요.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 수많은 상징이 가득한 음악은 우리 영혼이 듣고 싶은 메시지를 스스로 선택하도록 문을 열어 둡니다.
글ㆍ사진 송은혜
2021.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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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리옹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차를 타고 동쪽으로 이동하면 영험하게 장막을 드리우듯 솟아오른 산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높고 깊은 산속으로 구불구불 난 길을 한참 동안 운전해 들어가면 알프스 한중간에 산악지대로 둘러싸인 분지 도시, 그르노블을 만납니다. 눈을 들여 어느 방향을 보아도 코앞에 위치한 산을 마주하게 되어 스탕달은 “길 끝마다 산이 있다”라고 했을 정도지요. 압도적인 대자연 앞에서 겸허해질 수밖에 없는 곳에서 올리비에 메시앙(1908-1922)은 구세주의 탄생(La nativité du Seigneur)”을 작곡했습니다. 신을 향한 경외가 대자연을 노래하는 것과 맞닿은 이유였습니다.

“나는 종교음악을 작곡한다. 

하지만 이 음악은 언제나 새소리, 우주, 별과 같은 자연을 향한 경외심으로 가득하다”

_올리비에 메시앙

메시앙은 셰익스피어 번역과 해석으로 유명했던 영어 교사 아버지와 시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풍성한 문학 소양과 알프스 대자연을 함께 누리던 어린 시절을 지나 가족이 파리로 이사한 후, 메시앙은 열 한 살에 파리 국립 음악원에 입학했습니다. 그곳에서 피아노 반주와 오르간, 음악사, 작곡을 공부한 후 스물두 살에 파리 트리니티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됩니다. 메시앙은 자신이 생각하고 구상한 음악 재료를 그대로 오르간 작품으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깊은 숲에 몸을 감춘 은자(隱者)처럼, 트리니티 성당 오르간 파이프 사이에 숨은 신비주의자는 자신의 음악 기법을 실험하고 시연했습니다. 그가 세상으로 나서기 전 온전히 고독을 즐길 수 있던 시절이었지요. 

유럽 여행을 가면 성당이나 교회 한쪽 벽면을 차지하는 화려한 오르간을 만나게 됩니다. 운이 좋으면 직접 소리를 들어볼 수도 있고요. 건물 전체를 울림통으로 사용하는 오르간은 그리스 시대 문헌에서 기록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래된 악기입니다. 역사와 지역에 따라 건축 양식이 달라지듯, 오르간은 시대와 지역, 제작자에 따라 독특한 음색과 구조, 외관을 가지게 됩니다. 소리를 내는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오르간 구조는 다양한 모양과 길이, 두께, 재질로 이루어진 수백에서 수천 개에 달하는 파이프, 파이프를 울릴 공기를 만들어 내는 바람 상자, 파이프로 공기를 공급하는 밸브를 조절하는 여러 개의 건반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연주자가 손건반과 발건반을 연주하면 건반과 연결된 파이프 밸브가 열리고 파이프 내부로 공기가 통과하며 소리가 납니다. 연주자는 작품에 따라 다양한 파이프 음색을 조합해 사용합니다. 1인 오케스트라라고도 할 수 있지요. 요즘에는 한국에도 제법 큰 파이프 오르간이 많이 설치되었습니다. 대형 콘서트홀에 설치된 오르간으로는 세종 문화 회관 오르간(1978년 설치)과 2016년에 개관한 롯데 콘서트홀 오르간, 횃불 선교센터 오르간이 있으니 기회가 생긴다면 직접 들으러 가보세요. 색다른 경험이 될 것입니다.


프랑스 파리 트리니티 교회 오르간

메시앙이 일했던 트리니티 성당 오르간은 카바이예-콜(1811-1899)이 제작한 악기입니다. 서로 잘 어우러지는 음향, 큰 규모임에도 가볍게 연주할 수 있는 손건반이 특징인 카바이예-콜 오르간은 작곡가, 세자르 프랑크(1822-1890)를 기점으로 프랑스에 오르간 심포니 음악 전통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 오르간으로 연주되는 프랑스 낭만 음악을 먼저 들어 봅시다. 독일 오르간이나 바로크 오르간과는 다른 프랑스 특유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음색을 맛볼 수 있습니다.


세자르 프랑크, 《프렐류드와 푸가, 변주곡》

Op.18 중 ‘프렐류드’, 자비에 바르뉘스 연주(파리 생-쉴피스 교회, 카바이예-콜 오르간)  


오르가니스트였던 메시앙은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도구로 종교음악을 택했습니다. 종교는 그에게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제공했습니다. 누구나 알 만한 종교적 상징과 형식을 사용하며 메시앙은 그가 지향하는 바를 그 안에 담았습니다. 인간을 초월하는 추상적 세계, 인간 영혼에 닿을 수 있는 표현을 찾고자 노력했고, 그를 가능케 하는 다양하고 구체적인 이론을 정립했습니다. 종교 형식은 영혼을 발견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절대적 세계를 꿈꾸었던 메시앙은 장조와 단조를 벗어나는 자신만의 새로운 음계를 만들 때도, 가능한 전조의 수가 제한된 음의 배열을 연구해 총 일곱 개 선법을 만들었습니다. 전조의 수가 제한되었다는 것은 조성을 바꾸다가 결국 같은 음 배열을 가진 원래 조로 돌아오게 되는 수를 의미합니다(예를 들어, 드뷔시가 많이 사용했던 온음 음계는 두 번 밖에 전조 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이 끌리는 대로 음을 조합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의미를 부여해 음계를 만드는 방법이었지요. 주어진 음정을 확대하거나 화음에 음을 더해 소리의 공간을 확장하고, 리듬에 음가를 더해 시간을 확장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음향과 비대칭적인 리듬을 획득했습니다. 그리스의 시 운율과 힌두 음악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전에 없는 리듬을 개발하고, 거꾸로 시작해도 원래 리듬과 동일한 리듬 형식(역행 불가능 리듬)을 찾아 대칭을 만드는 등, 메시앙은 다양하고 철저한 음악 기법을 구축해 사용했습니다. 감정을 전달할 때, 더욱 확실하고 분명한 방법을 원했던 이론 선생님다운 면모였습니다.

메시앙은 피타고라스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처럼 수비학을 사용해 작품에 의미를 더하기도 했습니다. “구세주의 탄생”을 예를 들어 볼까요?


총 아홉 곡의 명상곡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습니다.


1. 성모와 아들
2. 목동들
3. 영원한 섭리
4. 말씀
5. 신의 아이들
6. 천사들
7. 예수가 고통을 받아들이다
8. 동방박사들
9. 우리들 가운데 계신 신(神)


신을 뜻하는 3에 ‘영원한 섭리’ 즉, 신의 뜻을 배치하고, 세상을 의미하는 7에 ‘예수가 고통을 받아들이다’를 넣어 세상에서 받을 고통을 암시했습니다.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는 신, 즉, 태어날 예수를 뜻하는 9는 성모의 임신 기간, 아홉 달을 의미합니다. 숫자 상징만 생각하면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음악을 들어 보면 구체적으로 장면을 묘사하는 감각적 음향이 가득합니다. 6번 곡, ‘천사들’에서는 반짝이는 높은 소리로 가볍고 빠르게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모습을 그리지만 3번 곡, ‘영원한 섭리’는 인간의 제한된 시간관념을 넘어서듯 느리게 진행합니다. 7번, ‘예수가 고통을 받아들이다’에서는 운명을 따라야 하는 예수의 인간적 고뇌와 갈등을 다양한 불협화음과 음색으로 대조해 표현하다가 마지막에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예수를 묘사하듯, 완전 협화음으로 끝납니다. 마지막 9번은 인간 세계로 내려오는 신을 불꽃처럼 장중하게 하강하는 강력한 리듬으로 표현합니다.

풍성하고 복잡한 메시앙의 음악 기법은 명확한 형식을 따라 느슨하게 배치되었습니다. 3번 곡 “영원한 섭리”처럼 단순한 멜로디를 느린 화성으로 반주하는 간단한 형식에서부터 9번 곡 “우리들 가운데 계신 신”처럼 화려한 토카타, 그리고 바흐의 장식 코랄을 닮은 4번 곡 “말씀”까지 메시앙은 다양하고 익숙한 음악 틀을 사용했습니다. 낭만 악기로 연주하는 고전적 형식, 종교적 상징과 수학 공식처럼 탄탄한 이론을 바탕으로 메시앙은 자신만의 독특하고 이국적인 색채를 균형을 맞춰 풀어 냈습니다. 그렇다 해도, 음악을 들으며 그가 고안한 모든 재료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우리는 그저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르면 되니까요. 다양하고 신비로운 오르간 색채를 따라 성탄의 장면을 상상해 보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Verbis defectis musica incipit

언어가 멈추는 곳에서 비로소 시작하는 음악을 누려 보세요.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 수많은 상징이 가득한 음악은 우리 영혼이 듣고 싶은 메시지를 스스로 선택하도록 문을 열어 둡니다. 오늘날 종교가 지닌 무게와 의미는 이전 시대에서 향유했던 정도와 사뭇 다릅니다. 12월이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탄이 다가옴에도 마음껏 기뻐하기 불편할 정도로 세상 속 종교는 주어진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때입니다. 하지만, 종교가 그렇다 해서 우리가 보다 나은 세상을, 더욱 깊은 영혼을 꿈꾸지 못할 이유는 없지요. ‘초월성’을 추구하는 예술가는 우리 영혼을 고양하는 여러 방법을 제공합니다. 메시앙도 마찬가지였어요. 종교적 제목이나 특정 단어에 상관없이 그가 창조한 음악은 우리가 내면 깊은 곳을 바라보며 숙고할 시간, 인간적 욕심과 갈망을 넘어선 절대적 이상을 엿볼 시간을 제공합니다.

종교적 외피(外皮)를 뚫고 인간의 영혼에 닿기를 바란 메시앙의 음악을 들으며 기억과 영원, 우주가 교차하는 신비로운 음악 세계로 한 걸음 다가서 보시지요. 높고 둥근 천장과 빛나는 채색창, 신비로운 아라베스크 장식이 가득한 눈에 보이지 않는 고딕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곳에서, 희망 없는 인류를 구할 메시아를 닮은 선함이 우리 안에 기적처럼 싹 트기를 기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올리비에 메시앙, “구세주의 탄생(1835)”, 
올리비에 라트리 오르간 연주, 도이체 그라모폰 2002


1. 성모와 아들 La vierge et l’enfant 



2. 목동들 Les berges 


3. 영원한 섭리 Desseins éternels 



4. 말씀 Le verbe 



5. 신의 아이들 Les enfants de Dieu 


6. 천사들 Les anges 


7. 예수가 고통을 받아들이다 Jésus accepte la souffrance 


8. 동방박사들 Les mages 


9. 우리들 가운데 계신 신(神) Dieu parmi nous 



Tom Winpenny 메시앙: 구세주의 탄생 [오르간 연주집] (Messiaen: La Nativite du Seigneur)
Tom Winpenny 메시앙: 구세주의 탄생 [오르간 연주집] (Messiaen: La Nativite du Seigneur)
Olivier Messiaen, Tom Winpe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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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혜

음악 선생. 한국, 미국, 프랑스에서 피아노, 오르간, 하프시코드, 반주, 음악학을 공부한 후 프랑스의 렌느 2대학, 렌느 시립 음악원에 재직 중이다. 음악 에세이 『음악의 언어』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