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24 인문 MD 손민규 추천] 우리의 밥상은 안녕하십니까?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은 어쩌면 소비자에게 밥값은 제대로 지불했느냐, 생산자에게는 밥값을 제대로 받았느냐를 묻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글ㆍ사진 손민규(인문 PD)
2021.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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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올랐다. 아파트 매매가도 오르고 전세와 월세도 올랐다. 세금도, 건강보험료도 올랐다. 편의점 삼각김밥과 봉지 라면도 1,000원으로는 살 수 없게 되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물가 상승은 필연일까? 직장인들은 자조적으로 내뱉는다. 우리네 월급 빼고는 다 올랐다고. 사실이 아니다. 월급 말고 안 오른 게 또 있다. 쌀값. 공기밥은 여전히 1,000원이다.

대한민국 고도성장 이면에는 저곡가 정책으로 상징되는 농민의 희생이 있었다. 대한민국만 그럴까. 다른 나라에서도 근대화, 도시화, 산업화의 다른 말은 농민의 몰락이었다. 농민의 위기는 농촌, 농업, 먹거리, 생태 문제이기도 하다. 결국, 이는 인간 존재 전반에 관한 위기인 셈이다.

이제는 농촌에 사람이 많이 남지 않은 탓일까. 이토록 중요한 농민 농업 농촌에 관한 문제의식이 사회 전반적으로 널리 퍼져 있지는 않은 느낌이다. 당장 유력 대선 후보들이 발표하는 공략만 봐도 그러하다. 농민, 농촌에 관한 정책이 없다. 있더라도 자세히 찾아봐야 겨우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후순위다.



농촌의 문제가 곧 생태의 문제인 점을 생각하면 다소 의아하다.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는 추세를 반영해서인지 생태 환경 책은 자주 출간되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처럼 몇몇 책은 베스트셀러 높은 순위에 오르기도 할 정도다. 그에 비해 농민 농촌 농업에 집중한 책은 찾기 힘들다. 그래서 더더욱 농촌사회학자 정은정 저자가 쓴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출간 소식이 반갑다.

대한민국 치킨의 역사를 자영업과 양계업, 플래폼 사업 등등 산업 측면에서 분석하고 알기 쉽게 설명한 『대한민국 치킨전』, 고 백남기 분 농민 투쟁을 기록한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다』와 같이 정은정 저자는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책을 써왔다. 출판계에서 흔히 쓰는 분류로는 음식인문학이고, 저자의 전공으로 말하자면 농촌사회학이겠다. 이번 책도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다. 밥을 둘러싼 다양한 장면을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재치있게 쓴 글을 모았다. 이번 책의 부제는 '농촌사회학자 정은정의 밥과 노동, 우리 시대에 관한 에세이'다. 에세이라고는 하지만, 독자가 읽기에는 '명상록' 혹은 '사회비평집'으로 읽힐 만큼 밥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진중하고 음식을 둘러싼 우리사회의 초상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먹어야만 살아남는 숙명이야 짐승이나 사람 모두 매한가지이지만, 인간은 생존과 존엄, 그 모두를 갖추어 먹어야 하는 식사의 존재다. 먹이가 아닌 밥을 먹기 때문에 인간의 삶으로 나아온 것이며, 밥을 통해 사랑과 질투를 느끼고 협력과 경쟁을 배우며, 사람의 꼴을 갖추며 살아왔다. 그러니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은 밥 먹을 자격은 갖추고 사는지를 묻는 매서운 질문이기도 하지만, 이 질문 앞에서 서성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먹는 밥에 과연 인간성이 깃들어 있는지를 곱씹어 보면 끝내 미궁 속이기 때문이다. 사람과 자연 모두가 상처 받은 밥상을 무람없이 받아 들고 입만 흥겹고 배만 두둑해진 것은 아닐까.  _(7쪽)

서장의 표현대로 이어질 내용에서는 상처가 곳곳에서 등장한다. '어릴 때는 어른들이 편의점에나 가라 하고, 청년이 되어서는 돈이 모자라 스스로 편의점을 찾아가야'(27쪽) 하는, 5천 원으로 열량만 좇아다니는 편의점 식사 풍경. 한 달에 3천 원 낼 돈이 없어 경로당 발길을 끊고 믹스 커피 한 봉지로 밥을 떼우며 폐지를 줍는 노인들. 도시보다 농촌의 노인들의 밥상이 더욱 외롭고 부실하다. 자국민이 기피하는 힘든 농사 일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떠맡는다.

대한민국 자영업 풍경에도 이곳저곳이 상처다.

자영업의 상징이 된 외식 자영업은 혹독하기 이를 데 없다. 자영업이 비대해진 산업의 구도를 바꾸기보다는, 자영업의 영세성과 비전문성 때문에 발전하지 못한다는 진단을 내리고 프랜차이즈 산업을 육성해 온 후과이다. 골목식당 주인에게 기술 수련을 하라며 호통을 치는 유명 외식 사업가가, 기술이 없이도 식당을 차릴 수 있다며 부추기는 프랜차이즈 업체의 오너인 세상이다. 골목에서 성실하게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척에 동일 업종의 프랜차이즈 식당이 들어오는 일은 얼마나 황당한 분열인가. 자신과 가족들의 몸을 갉아 생의 구멍을 메우는 자영업자의 고통을 당장 덜어낼 비책은 없다. 다만, 장사도 힘든데 넘쳐 나는 식당 솔루션 예능을 보면서 자기 탓까지 하며 기운을 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도 게으르지 않았다.  _(68쪽)

한편 저자는 책 속 많은 지면을 10대 노동자들의 외롭고 서글픈 식사 풍경으로 채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죽음이다.

기름때 묻은 공구와 함께 발견된 구의역 김 군의 숟가락은 인간의 식사란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깨끗하게 닦인 수저로, 자리에 앉아 여유 있게 먹는 밥을 인간의 식사라 한다면, 김 군은 안전문 수리를 하면서 제대로 식사를 한 적이 몇 번이나 될까. 당시 정치인들도 달려와 추모의 말을 보태며 정치적 해결을 약속했다. 하지만 2년 뒤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씨의 유품에 또 컵라면이 있었다.   _(133쪽)

농민, 농촌, 자영업, 외국인 노동자, 맛집 예능, 학교 급식, 새벽배송, 노동 환경 등등 한 끼의 밥 안에는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의 땀과 노력, 서글픔과 회한, 복잡한 사회 구조가 서려 있다. 먹어야 살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재화에 대한 대가를 화폐로 지불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인간이다. 우리는 먹거리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격에 대한 물음 만큼 본질적인 질문도 없는 듯하다.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은 어쩌면 소비자에게 밥값은 제대로 지불했느냐, 생산자에게는 밥값을 제대로 받았느냐를 묻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소비자 물가 품목에는 농수축산물과 식음료, 그리고 공공요금과 각종 서비스 요금이 들어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만만한 게 농산물이다.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그토록 낮다며 '동네 바보' 취급하다가 왜 명절 때만 되면 17대 1의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온 '일진'이 되어 있을까? 아무리 올라 봐라. 배춧값이 무섭나? 애들 학원비가 무섭지. 돼지고기 값이 무섭나? 2년 만에 오른 전세비 6천만 원이 나는 제일 무섭다.  _(168쪽)

글을 끝맺으려는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니 월급과 쌀값과 마찬가지로 (거의) 안 오른 걸 하나 더 발견했다. 바로 책값. 혹자는 예전에는 1만 원 이하 책도 있었다고 하지만, 그 예전이라 하는 시기는 상당히 오래 전인 듯하고 대체로 정가 15,000원에서 책값은 몇 년째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2021년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의 책값은 15,000원이고 7년 전에 출간된 『대한민국 치킨전』은 14,000원이었다.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정은정 저
한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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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 모아 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