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인생 만화는 무엇인가요? 한 작품만 고르고 싶지만 손가락이 열 개인 관계로 저는 한 열 작품 정도 세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중 하나가 시노하라 치에의 『하늘은 붉은 강가』입니다. 일단 그림체가 유리가면 체이고 제목은 요상한 번역투라서 일견 거부감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취향에 맞다면 정말 빠져들 수 밖에 없습니다.
시노하라 치에 글·그림 | 학산문화사
현세를 살고 있는 주인공이 기원전 14세기 고대 히타이트 제국으로 타임슬립해서 전쟁의 여신 이슈타르가 되어 역사를 운행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요즘 유행하는 이세계 전생물의 원조격인지도 모르겠어요. 요즘 만화들이 현세의 문물이나 지식을 바탕으로 이세계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전개라고 한다면, 『하늘은 붉은 강가』의 주인공은 ‘세계사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합니다. 이 친구가 바꿀 수 있는 역사가 많지 않아 더욱 비극적이고 좀 더 현실감이 있어요. 터키 국립 박물관과 협업하고 아나톨리아 역사 전문가들에게 감수받아서 고증도 잘 되어있어요.
서문다미 글·그림 | 학산문화사
무당 집안의 K-장녀 하루가 두 개의 달이 뜨는 사막의 땅으로 타임슬립하여 벌어지는 이세계 판타지, 연재 18주년에 빛나는 장수 한국 만화!
하라 야스히사 글·그림 | 대원
춘추전국시대를 통합한 진시황의 곁에는 무명의 소년, 신이 있었다. 그림체만 조금 버티면 휘몰아치는 스토리에 압도당하는 작품. '왕기 사랑해요!'
모리 카오루 글·그림 | 대원
중앙아시아 유목 정착민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과도 같은 세세한 묘사와 환상적인 일러스트.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좋아한다면, 혹은 유튜버 '빠니보틀'의 구독자라면 꼭 봐야할 만화.
그때부터 저는 알게된 것이예요. 제가 역사덕후(aka.역덕)이라는 사실을요. 제가 사학과로 진학하게 된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비슷한 장르의 만화들을 챙겨봤습니다. 서문다미 『루어』도 그런 느낌이구요, 하라 야스히사 『킹덤』, 모리 카오루 『신부 이야기』도 역덕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다 만난 작품이 골드키위새 작가님의 『메지나』입니다.
골드키위새 글·그림 | 문학동네
『메지나』는 배경을 실제 역사에서 따오지는 않았습니다. 가상의 고대국가이지만 어쩐지 여러 나라들이 연상되어 작가님께서 세계관 설정에 공을 들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유한 대제국과 유랑하는 소수민족 사이의 전쟁. 외형과 문화 차이에서 오는 갈등과 알력다툼. 역사의 수레바퀴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얽혀버린 원한과 사랑 그리고 복수의 이야기입니다.
현재와 과거 시점을 오가며 인물들의 행동 양태의 원인을 설득력있게 설명하고 섬세한 복선과 반전을 곳곳에 심어놓아 지략 대결을 보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주인공들 사이의 대결이기도 하고 작가와 독자의 대화이기도 합니다. 『우리집 새새끼』 작가님이신만큼 개그 실력도 출중하신데요, 비극적이고 애달픈 이야기가 너무 무거워지지 않도록 적당히 간을 치며 극을 이끌어 갑니다.
물 한잔 마시고 와야겠습니다. 지금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고 있거든요. 이런 명작인데도 불구하고 10년을 잠자고 있었습니다. 다음에서 연재 시작 후 모종의 이유로 레진코믹스로 연재처를 바꾸셨기 때문에 (저는 이 작품 때문에 난생처음으로 레진코믹스 결제를 했습니다) 완결된지 모르는 팬들도 많습니다. 그림체가 워낙 세련되셔서 10년 전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만큼 깔끔하게 단행본으로 편집되었습니다. 골키새 작가님 팬이라면, 역사·지략 만화 덕후시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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