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내가 쓴 문장들이 나를 공격할 때 (G. 최진영 소설가)
어떻게 보면 제가 이미 살아봤지만 이해하지 못했던 시간이기도 하거든요. 그렇지만 다시 살 수는 없고. 그래서 그 시기에 대해서 계속 질문을 던져보는 것 같아요. ‘나는 왜 지금 이런 인간이 되었는가’에 대한 답도 거기서 자꾸 얻으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글ㆍ사진 임나리
202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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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과 무시는 인간의 꾸밈없는 몸짓이 결코 아니다.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기억과 망각은 기억해야 할 것과 잊어야 할 것으로 정치적으로 선택되며, 그렇게 하도록 뭔가에 의해 내몰린다.”

헨미 요가 쓴 『1★9★3★7 이쿠미나』라는 책에 등장하는 문장입니다. 안녕하세요, 소설 쓰는 황정은입니다. 저는 지난 주말에 남해로 출장을 갔다가 여수 이순신마리나에 들렀는데요. 거기서 어떤 마음의 모양을 보았습니다. 그 마음은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었고, 요트 선착장으로 실습 나왔다가 사망한 현장 실습생의 영정을 들여다보고, 그 앞에 꽃을 두는 사람을 향해 침을 뱉고 혼잣말처럼 욕을 건네는 성인의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으로 사망한 학생의 죽음을 향해 손을 모으고 애도의 글을 적는 마음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뭐라도 하겠다고 다짐하는 마음도 마음이고, 그 마음을 향해 그리고 그 죽음을 향해 굳이 침을 뱉는 마음도 마음이라서, 여러모로 마음이 부서지는 경험을 했는데요. 그때 제 가방 속에 책 두 권이, 은유 작가님을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과 최진영 작가님의 『일주일』이 들어있었습니다. 여수에서 제가 사는 동네까지 여덟 시간 걸려서 돌아왔는데 ‘바로 이틀 뒤면 이 책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람을 그 중에 어른들을 그리고 삶을 생각하는 제 마음의 모양을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오늘 방송에서는요, 참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는 어른들을 향해 골똘하게 묻는 청소년 화자들이 등장하는 소설을 함께 읽겠습니다.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인터뷰 – 최진영 소설가 편>

황정은 : 올해 여름에 신작 『일주일』을 발표하신 최진영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오늘은 단편집 『일주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볼 텐데요. 『일주일』에는 세 편의 단편이 실려 있고, 그 중 첫 번째 작품이 「일요일」이라는 단편입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은유 작가님이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읽고 썼다고 에세이에도 쓰셨는데요. ‘그 책을 바탕으로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다’라고 하셨는데,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최진영 : 제가 원래 은유 작가님의 책을 되게 좋아해요. 나오면 늘 찾아서 보곤 하는데, 이때도 은유 작가님이 책을 내셨다고 그래서 사서 봤죠. 저는 그런 책들이 있어요, 모든 문장들이 다 나를 가로막아 서서 읽을 수가 없는 책들이 있거든요. 그때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도 책을 쭉쭉 읽어갈 수가 없었어요. 모든 문장들이 다 나의 생각을 가로막아서. 그래서 책을 다 읽은 다음에, 그때 마감이 있어서 단편을 썼어야 됐는데, 다른 이야기를 생각을 못하겠더라고요. 이 책에서 받은 느낌, 화나는 지점이 많았고, 그런 걸 생각을 계속하다가 「일요일」이라는 작품을 쓰게 됐는데. 작가님도 아시겠지만 어떤 책을 읽고 그 책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는 게 너무너무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잖아요. 

황정은 : 그렇죠.

최진영 : 제가 뭔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도용할 수도 있고, 어쨌든 그 책 속의 인물이나 사건을 가져와서 쓴다는 게 약간 좀 어려운 일인데, 그래서 쓰기를 되게 주저하면서도 지금 당장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는 이것뿐인 것 같아서 썼었죠.

황정은 : 은유 작가님이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라는 책 자체가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읽어버리면 뭔가가 달라져요. 그래서 그 책에 실린 이야기들의 영향을 받아서 뭔가를 쓰거나 생각하거나 그 책에 대해서 뭔가를 말할 수밖에 없는, 그런 책인 것 같아요.

최진영 : 네, 맞아요. 

황정은 : 말씀 들으니까, 글 쓰는 사람의 자격 같은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쓸 수밖에 없다’라는 마음이 어떻게 보면 아주 강력한 글쓰기 동기가 될 수도 있지만, 그만큼 또 쓰는 사람을 괴롭히는 동력이기도 한 것 같거든요. 스트레스가 혹시 크지는 않았는지...

최진영 : 딱 그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이걸 안 쓰는 것보다 쓰는 게 나한테 낫다, 라고 느껴지는 지점이 있어요. 이 이야기를 쓰면 너무 어려울 것 같은데, 라고 미뤄뒀다가도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안 쓰려고 애쓰느니 쓰는 게 낫다, 나에게도 좋고’ 그렇게 딱 생각이 드는 순간은 잘 써보려고 노력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미뤄두기보다는 ‘그럼 잘 써보자.’

황정은 : 일주일은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로 출간이 됐는데요. 세 편의 단편을 한 권의 책으로 엮는 기획인데, 처음에 제안을 받고 ‘청소년이 주인공인 소설 세 편을 한 권의 책에 담고 싶었다’고 하셨어요. 근데 이 기획이 아니더라도, 최진영 작가님은 데뷔작부터 꾸준하게 청소년 화자로 소설을 쓰셨거든요. 이유를 혹시 들을 수 있을까요? 

최진영 : 저도 그것을 생각하고 쓰는 게 아니어서, 뒤늦게 이유를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나는 왜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화자로 내세워서 자꾸만 글을 쓰는 걸까. 첫째는 아마도 제 어떤 기질이나 성정, 생각 같은 게 청소년에 좀 가까운 것 같고요. 두 번째는 제가 지나온 나이잖아요. 노년기는 제가 아직 모르는 나이고, 청소년기는 뭔지도 모르고 지나왔고 아직도 그 시절을 이해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제가 한 번은 살아본, 그래서 계속 돌이켜 볼 수 있는 나이대여서 그때를 많이 쓰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점점 나이가 들수록 그들에겐 발언권이 없다는 걸 느끼는 거죠. 어른들은 얼마든지 발언권을 얻을 수 있어요. 먼저 말할 수 있는 존재들이고 명령하거나 지시하거나 훈계할 수 있는 존재들인데, 십대들은 발언권이 없어요. 그들은 무슨 얘기를 하면 어떤 식으로든 평가를 당하거든요. 애어른이 되든지 철부지가 되든지. 그래서 그들의 말을 그대로 들어주는 어른들이 별로 없다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의무가 있고 권리는 그다지 없는 것 같은 나이라는 생각도 들고. 또 제가 이미 한 번 살아봤기 때문에 계속 돌이켜 볼 수 있잖아요. 그래서 더 소설 화자로 많이 내세우는 것 같아요.

황정은 : 최진영 작가님의 소설에서 청소년 화자의 시선으로 노려보는 이야기들이, 많은 경우 어른들과 어른들이 강하게 연루된 그리고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최진영 작가님의 소설에 청소년 화자들이 등장하는 게 어떻게 보면 가장 정확한 시선을 갖추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은 째려봐야 되는데 어른 입장의 화자를 내세우게 되면 그렇게까지 가능하지가 않은 거예요. 왜냐하면 이 사람은 이미 연루된 사람이라서.

최진영 : 맞아요.

황정은 : 그래서 저는 작가님이 하고자 하는 어떤 이야기들, 특히 어른들의 형편없음을 말하는 이야기들에

청소년 화자가 정말 알맞은 시선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번 『일주일』에 실린 에세이에도 쓰셨지만, 작가 본인이 이미 성인이라서 거기서 오는 고민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최진영 : 네. 

황정은 : 정말 여기에 연루되고 싶지 않은데 성인이라서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이렇게 매서운 눈을 가진 청소년 화자로 소설을 쓸 때, 내가 만든 인물들이지만 그의 시선이나 질문에 상처를 받거나 변명을 하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없었는지 궁금해요.

최진영 : 상당히 많죠. 굉장히 경계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이십대 후반 삼십대 초반에는 ‘도대체 세상이 왜 이 따위인가’라는 질문을 자꾸 하는 사람이었다면, 어느 순간 나도 어른이라는 것을 깨닫고 어른이 아닌 척하는 게 너무나도 비겁한 짓이라는 것을 자각한 순간부터 ‘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면’ 하고 설명을 해야 되는 존재가 됐더라고요. 

황정은 : 작가 본인이요?

최진영 : 네. 근데 그 설명을 하면 너무 처참한 순간들이 있고, 설명하는 방식으로 뭔가를 강요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해를 요구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어느 지점부터는 ‘이 모양인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라는 질문에 더 집중을 하게 된 것 같은데요. 제가 쓰는 청소년 화자들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 작가님 말씀대로 저도 연루되어 있고 그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 안에서 굉장히 못된 짓도 많이 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내가 쓴 문장들이 나를 굉장히 공격할 때가 있어요. 

황정은 : 네. 세상에...

최진영 : 쓰면서 그냥 ‘내가 이런 문장을 썼으니까 좀 다르게 살아보자’라는 참회의 마음으로, (웃음) 사람은 변할 수 있는 존재니까, 이런 문장을 썼으니까 이제는 좀 다르게 살아보자,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어떻게 보면 제가 이미 살아봤지만 이해하지 못했던 시간이기도 하거든요. 그렇지만 다시 살 수는 없고. 그래서 그 시기에 대해서 계속 질문을 던져보는 것 같아요. ‘나는 왜 지금 이런 인간이 되었는가’에 대한 답도 거기서 자꾸 얻으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최진영

박범신, 공지영, 황현산 등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제15회 한겨레문학상에 당선된 작가. 1981년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서울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에 이사를 자주 다녀서 어딜 가도 내 집, 내 고향 같다. 소설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소설은 쓰고 싶었다. 낮엔 일하고 밤엔 글 쓰다가 200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등단 2년 후부터 낮엔 글 쓰고 밤엔 푹 잤다. 다음 생엔 적은 돈으로도 우주여행이 가능한 시대 혹은 행성에 태어나고 싶다. 은근히 열정적으로, 다음 생의 우주를 치밀하게 준비 중이다.

소설집 『팽이』, 『겨울방학』,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구의 증명』, 『해가 지는 곳으로』, 『이제야 언니에게』, 『내가 되는 꿈』, 『팽이』, 『겨울방학』 등을 썼다. 앤솔러지 『장래 희망은 함박눈』을 함께 썼다. 만해문학상, 백신애문학상, 신동엽문학상, 한겨레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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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저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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