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미국인 싱어송라이터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음악에는 확고한 본바탕이 있다. 신경질적인 슈게이징 사운드로 날 선 감정을 표출했던
첫 트랙 'Paprika'부터 기존 노선과 선을 긋는다. 이전의 악 받친 보컬의 날카로움이 사라지고 우아한 곡조와 한껏 덩치를 키운 사운드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천천히 찾아온 제정신, 나는 큰 매듭을 푸는 꿈에서 깨어났다”(“Lucidity came slowly, I awoke from dreams of untying a great knot”)처럼 가사는 변화와 삶을 향한 긍정, 그리고 예술가로서 창작에 대한 기쁨을 중첩한다. 축제의 한 폭을 도려내 오선지에 그린 듯 활달한 마칭 밴드의 소용돌이에서 심박수를 기막히게 떨어트리는 중반부의 완급조절, 그 위로 케이트 부시가 떠오르는 생동감 넘치는 멜로디와 가창으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는 감행한 도전을 성취로 맞바꾸어 놓는 데에 성공한다.
이어지는 수록곡도 과감하다. 저마다 개성적인 기악 편성과 곳곳에 변칙을 부여하는 능력이 절정에 달했다. 둔중한 베이스와 감칠맛 나는 기타의 그루브로 첫 트랙의 신선함을 길게 끌고 가는 1980년대 신스팝 스타일 넘버 'Be sweet', 뜻밖의 발랄함을 발산하는 'Savage good boy'는 모두 예측을 깨부수는 곡들이다. 어쿠스틱한 'Kokomo, in'과 전자 피아노에 겹겹이 층을 낸 현악기로 담백함을 자아내는 'Tactics' 역시 적절한 타이밍에 쉬어가는 구간을 마련해 흐름을 단단히 유지한다. 특히, 로파이한 무드에 포근한 관악기 솔로를 휘몰아친 'Slide tacke'는 앨범의 백미.
전환에 전환을 거듭하는 진행에도 내면을 철저히 견지하기에 더 특별하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손길은 활발해졌을지언정 그 속 미셸 자우너의 어투는 여전히 싸늘하고, 아슬아슬하다. 1집
스펙트럼은 넓어졌고 감성은 깊어졌다. 특유의 담담한 감정 응시를 유지한 채 화려한 곡조를 보태니 더없이 탄탄하고 응집력 있다. 변화무쌍한 구성과 그에 자연스럽게 따라온 커리어 상의 변곡점으로 이전보다 적극적인 평단의 호응과 스포트라이트까지 챙긴 것은 덤이다. 여러모로 재패니즈 브렉퍼스트의 최고작. 아물지 않은 트라우마 속 꿈틀대는 음악적 열의와 야심이 일군 눈부신 자가 치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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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