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너머의 세상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이 시를 그림책으로 만들고 싶은 건 내 욕심인가 싶은 생각도 여러 번 했고요. 그럼에도 끝까지 만들고자 했던 건 이 시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마음이었어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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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정 작가

권정생 선생님은 『강아지 똥』『몽실 언니』『랑랑별 때때롱』처럼 가장 낮은 곳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해 준 동화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권정생 선생님은 아이들을 위한 시와 동화 외에도 전쟁과 평화, 인권에 관한 강력한 주장을 담은 글을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했다. 이는권정생 선생님의 어린 시절 일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6·25 한국전쟁을 겪은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평화주의자이자 사상가로서의 권정생 선생님이 2000년에 발표한 시 ‘애국자가 없는 세상’에도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계란말이 버스』『난 그냥 나야』처럼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그려 온 그림 작가 김규정은 ‘애국자가 없는 세상’을 읽고 시가 남긴 울림을 그림책으로 담아냈다.



권정생 선생님 시에 그림을 그리는 것, 정말 의미 있는 작업이셨을 것 같은데요. 어떤 계기로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언젠가 꼭 한번 하고 싶었던 작업이었어요.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제가 만약 다른 나라에서 나고 자랐다면 이렇게까지 울림이 크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애국심, 민족주의, 국가주의’와 같은 말들은 낡은 가치로 여기니까요. 하지만 우린 다르잖아요. 식민지와 분단을 여전히 역사의 한 부분으로 가지고 있는 곳이기에 ‘애국’이라는 말은 우리 안에서 일종의 ‘단일 종교’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그렇게 커 왔으니까요. 스스로 파시즘을 경계한다고 하면서도 남이 우릴 함부로 넘보지 않으려면 강한 국방력을 가져야 하고, 남자라면 당연히 군대에 가야하고, 태극기를 보고 애국가를 들으면 가슴 한 구석에서 뜨거운 뭔가가 올라오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 와중에 이 시를 봤으니……. 지금까지 봐 오던 책장을 찢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이 시를 자본의 논리로 접근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 시를 처음 읽고 나서 든 마음이 조금씩 약해졌어요. 그 사람들의 말은 시는 좋지만 돈이 안 되는 책이 될 거란 식의 논리였죠. 아마 뒤돌아서서 저 사람 참 이상주의자라고 손가락질 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때 참 마음 아프고 안타까웠어요. 이 시를 그림책으로 만들고 싶은 건 내 욕심인가 싶은 생각도 여러 번 했고요. 그럼에도 끝까지 만들고자 했던 건 이 시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마음이었어요. 다음 세상을 살아갈 아이들에게는 그 너머의 새로운 세상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애국자가 없는 세상』 시를 처음 읽고,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나 구상이 궁금해요. 

예전 기억들이 많이 떠올랐어요. ‘나’라는 사람 또한 이 사회가 만든 피조물인데 ‘나는 어떤 사람이지? 어떻게 커 왔지?’ 하고 기억을 더듬어 봤어요. 그렇게 뒤돌아보니 하나의 인적자원으로 길러지기 위해 거대한 시스템 속에 있던 내가 보이더군요. 불쌍했어요. 그 옆에 친구들과 동생들도 보였고요. 소위 말하는 ‘국익’을 위해 내 한 몸 불사를 강력한 불쏘시개로 키워내는 게 우리 교육이 정한 목표잖아요. 그 인적자원들을 하나로 묶는 마스터키 같은 게 우리나라에서는 ‘애국’ 같아요.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장면이 있어요. 교과서를 펴면 첫 장에 전두환의 사진이 있었어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이 사람을 ‘대통령 각하’라고 불러야 한다며 꼭 ‘각하’라는 호칭을 넣어서 불러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그 호칭을 부르는 게 수치스럽게 느껴졌죠. 난 그 사람의 하인이나 노예가 아닌데 그 말을 쓰는 게 나를 꼭 그렇게 만드는 것 같았어요. 태극기와 함께 있던 그 사람의 얼굴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실제로 본격 작업에 들어갔을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셨을까요.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요? 

제 글이 아닌 다른 이의 글로 그림책을 만드는 건 처음이에요. 거기다 권정생 선생님의 시이다 보니 모든 게 다 신경쓰였어요. ‘그만 둘까?’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을 정도로 부담스러운 작업이었죠. ‘애국’이라는 말을 국가주의 혹은 전체주의라는 말로 바꿔서 표현하고자 했고, 그 표현 수단으로 카드섹션을 선택했어요. 하나의 장면을 펼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는 카드섹션은 단 한명의 일탈도 용납하지 않잖아요.

그림에는 곰과 늑대가 등장해 서로 마주보며 긴장감을 유발하고 갈등을 보여주는데요. 많은 동물 중에 곰과 늑대를 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다비드 칼리와 세르주블로크가 만든 그림책 『적』을 좋아해요. 세르주블로크의 단순하지만 위트 있는 그림과 다비브 칼리의 간결하지만 본질을 통찰하는 글은 늘 두 사람의 협업을 기대하게 만들죠. 아무튼 그 책에는 서로가 적인 두 병사가 나와요. 그들은 상대방을 사람이 아닌 괴물일거라 생각해요. 그렇게 교육받아 왔기 때문이에요. 제가 어릴 때 보던 만화 가운데 반공 만화들이 적지 않게 있었어요. 그 속에 등장하는 병사들은 늑대나 곰으로 묘사됐죠. 아마 그 기억이 이번 책에서 두 나라를 늑대와 곰의 나라로 설정하는 데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작업하면서 계속 시를 읽으셨을 것 같아요. 시를 읽을수록 든 생각이나 인상 깊었던 구절이 있었을까요.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를 자주 떠올렸어요. 제가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극중에 비행정 수리를 위해 밀라노에 들린 주인공이 극장에서 무성영화를 보는 장면이 있어요. 그때 옛 동료인 페라린이 찾아와 ‘낭만으로 비행하던 시대는 끝났다’며 지금은 국가를 스폰서 삼아 비행해야 한다고 말해요. 그러면서 주인공에게 다시 공군으로 돌아오길 제안해요. 그러자 주인공 포르코는 ‘애국 따위 인간들 끼리나 하라’며 거절하죠. 주인공이 전쟁을 겪은 뒤 왜 인간이 아닌 돼지가 되길 선택했는지를 말하는 이 장면이 시 ‘애국자가 없는 세상’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_권정생의 시 '애국자가 없는 세상' 중에서


『계란말이 버스』처럼 작가님만의 그림책을 기다리는 독자 분들도 계실 텐데요. 차기작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지금 생각하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계란말이 버스』에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어요. 대부분의 창작자들이 그러하겠지만 자본의 크기에 따라 열정과 노력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늘 그 결과의 피드백에 목이 말라요. 그런 점에서 『계란말이 버스』 를 내고 난 뒤에 긴 터널 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았죠. 불쑥 불쑥 찾아오는 무기력감은 좀처럼 새로운 작업을 할 수 없게 만들었고요. 그럼에도 그 긴 터널에서 조금씩 빠져나올 힘을 준건 저희 아이였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책이 된 『난 그냥 나야』도 그렇게 나올 수 있었고요. 

어느 강연에서 누군가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냐고 물었던 적이 있어요.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도 너무 많잖아요. 그이들이 낸 창작물을 보고 있으면 내가 너무 작아지는 것 같은 느낌을 곧잘 받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제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 세상을 향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예요. 그때 전 ‘작가란 세상을 향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 한다’고 말했어요. 그 말에 여전히 동의 하지만 지금은 한 가지 더 붙이고 싶어요. 그 한 가지는 자신의 작업을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한 사람이 꼭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음 책을 이어가는데 영감을 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저는 아직도 터널 속에 있지만 예전만큼 두렵지는 않네요. 아마 조만간 터널 속에서 발견한 무언가를 들고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애국자가 없는 세상』을 읽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 부탁드립니다. 

(일정 나이가 넘는 분들은 다 기억하시겠지만) 어린 시절 저녁이 되면 사이렌이 울리는 시간이 있었어요. 장을 보고 오던 엄마도, 밖에서 일을 하던 아빠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형·누나들도,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던 나도 늘 같은 시간 사이렌이 울리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국기가 내려가는 방향을 향해 가슴에 손을 올렸죠. 가끔 국기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을 땐 대충 방향을 짐작하거나 주변의 눈치를 살펴 비슷한 방향으로 서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곤 했어요. ‘그 우스꽝스러운 시절로 부터 우린 얼마나 달라졌나? 사이렌이 사라진 자리엔 무엇이 들어와 있나?’ 계속 물어야 해요. 그것이 한때 아이였던 우리가 지금의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니까요. 권정생 선생님도 그렇게 계속 물어주길 바라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권정생 (글)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광복 직후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경북 안동 일직면에서 마을 교회 종지기로 일했고, 빌뱅이 언덕 작은 흙집에 살면서 『몽실 언니』를 썼다. 가난 때문에 얻은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인세를 어린이들에게 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200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굴곡 많은 역사를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보듬는 진솔한 이야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69년 단편동화 「강아지똥」으로 기독교아동문학상을 받았고, 1973년 「무명 저고리와 엄마」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사과나무 밭 달님』, 『바닷가 아이들』, 『점득이네』, 『하느님의 눈물』, 『밥데기 죽데기』,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 『몽실 언니』, 『먹구렁이 기차』, 『깜둥 바가지 아줌마』 등 많은 어린이책과, 소설 『한티재 하늘』,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등을 펴냈다.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홈페이지(http://www.kcfc.or.kr)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김규정 (그림)

바다 곁에 살다 산 아래에서 아내와 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떠올라 두근거릴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 『밀양 큰할매』, 『무지개 욕심 괴물』, 『쏘옥 뿌직』, 『뛰지 마!』, 『레드맨 우리가 도와줄게!』, 『털이 좋아』, 『계란말이 버스』 등이 있습니다.



애국자가 없는 세상
애국자가 없는 세상
권정생 글 | 김규정 그림
개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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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롱

2021.11.15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다 ^^ 권정생 선생님의 마음이 잘 와닿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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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