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 연민, 기대, 질투, 미움, 그리움, 후회. 사랑은 다양한 이름으로 모양으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중 어떤 것은 누군가에게는 절대 사랑이 아니고 누군가에게는 무엇보다 사랑이겠지요. 형태가 어떻든 대상이 누구든, 복잡하고 어렵고 어지러운 수많은 마음들 중에서도 사랑은 우리를 가장 강하게 사로잡는 감정일 겁니다. 아마도 언제까지고 없어지지 않을 거고요. 끝나도 끝나지 않을 사랑과, 그 안팎의 풍경들을 만나봅니다.
한강 저 | 문학동네
오래 기다린 한강 작가의 새 소설입니다. 칠십 년 전 제주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에 얽힌 가족의 이야기, 그 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담은 책이에요. 꾹꾹 눌러 읽게 되는 문장들이지만, 빠르게 책 속 장면과 인물들에 몰입하게 되어 순식간에 마지막 장에 달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여리고 약한 듯 보여도, 때로 휘청여도, 쉽게 무너지거나 쓰러지지 않고 단단하게 나아가는 인물들이 마음에 깊이 남고요, 그런 부분이 작품 전체에 흐르는 눈과 바람, 나무, 새 등의 이미지와도 잘 어우러져 특유의 분위기를 완성합니다. 여운이 긴 소설이에요.
내가 경험한 모든 것이 결정이 된다. 아무것도 더이상 아프지 않다. 정교한 형상을 펼친 눈송이들 같은 수백 수천의 순간들이 동시에 반짝인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모든 고통과 기쁨, 사무치는 슬픔과 사랑이 서로에게 섞이지 않은 채 고스란히, 동시에 거대한 성운처럼 하나의 덩어리로 빛나고 있다.
_『작별하지 않는다』 중에서
윤고은 저 | 현대문학
윤고은 작가가 『밤의 여행자들』로 영국 추리작가협회 대거상 번역추리소설 부문을 수상한 후 처음 발표한 장편소설입니다. 책은 화자가 사라진 친구의 흔적을 따르던 중 찾은 '안심결혼보험 약관집'을 둘러싼 이야기로, 이 의문의 책에 얽힌 사람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려요.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도 기어이 남는, 사라지지 않는 마음들을 헤아려보게 합니다. 재미있게 읽고 난 후에 계속 곱씹으면서 다른 발견을 하게 되는 책들이 있지요. 이 책이 그렇습니다. 자꾸 새로운 의미들을 떠올리게 돼요. 윤고은 작가만의 현실을 꿰뚫는 유머는 말할 것도 없고요.
누군가의 숨이 위협이 되는 시대, 마스크로 코와 입을 다 틀어막아야 하는 시대, 안경을 쓰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감염 위험이 적어진다는 통계가 읽히는 시대, 생일 촛불을 입김으로 불어서 끄는 것도 모험이 되는 시대, 거리두기의 시대에 나는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유예하지 못하고 의심하지도 못하고 그 위로 미끄러졌다. 그리고 책달 아래서 마치 지상 처음인 것처럼 키스했다.
_『도서관 런웨이』 중에서
우사미 린 저/이소담 역 | 창비
2021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입니다. 2020년에 최연소로 미시마 유키오상을 수상하기도 한 우사미 린은 아쿠타가와상 수상으로 일본 현지에서 다시 한번 화제의 중심에 선 신인 소설가라고 합니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사랑이 느껴지지요. 소설은 한 아이돌 팬의 일상을 그리지만 그것은 일부 사람들의 일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무언가에 애착하지 않고는 버티고 살아내기 힘든 모두의 심정을 비추니까요. '최애는 목숨이랑 직결'된다고 말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그 절실함은, 지금의 우리를 말하기 위한 가장 탁월한 선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애를 둘러싼 모든 것이 나를 불러 일깨운다. 포기하고 놓아버린 무언가, 평소에는 생활을 위해 내버려둔 무언가, 눌려 찌부러진 무언가를 최애가 끄집어낸다. 그래서 최애를 해석하고 최애를 알려고 했다. 그 존재를 생생하게 느낌으로써 나는 나 자신의 존재를 느끼려고 했다. 최애의 약동하는 영혼이 사랑스러웠다. 필사적으로 쫓으려고 춤추는 내 영혼이 사랑스러웠다. 외쳐, 외쳐, 최애가 온몸으로 말을 건다. 나는 외친다. 소용돌이치던 무언가가 갑자기 풀려나 주변 모든 것을 쓰러뜨리는 것처럼, 성가신 내 목숨의 무게를 통째로 짓뭉개려는 것처럼 외친다.
_『최애, 타오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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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욱(도서 PD)
책을 읽고 고르고 사고 팝니다. 아직은 ‘역시’ 보다는 ‘정말?’을 많이 듣고 싶은데 이번 생에는 글렀습니다. 그것대로의 좋은 점을 찾으며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