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든 짧든 안정적인 포지션을 누리던 회사에서 퇴사를 결심하는 이들의 마음 상태를 말할 때면 떠오르는 영화 제목이 있다. 독일 감독 파스빈더가 만든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갤러리 클립 정성갑 대표가 오랜 에디터 생활을 마무리할 때 정서적 상황도 이랬다. 하지만 불안이 꼭 영혼만 잠식하는 건 아니었다. 그에겐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근력을 붙게 하고, 퍼스널한 브랜딩에 필요한 동력이 되기도 했다. 에디터 경험에서 얻은, 가장 잘 아는 콘텐츠, 가장 잘 아는 장소, 가장 잘 아는 작가들을 연결 짓는 공예 아트 갤러리를 떠올리고, 거기에 누구보다 작가와 작품에 대해 잘 전달할 수 있는 단 ‘한 점’만 전시하는 콘셉트를 떠올렸다. 그리고 곧장 저지르는 스타일답게 판을 펼쳤다.
지금 이 공간(을지로)은 한 점 갤러리와는 다른 공간인가요?
‘갤러리 클립 2.0’을 생각하고 준비한 공간이에요. 잡지를 만들면서 다음 호가 예상 가능하기 시작하면 끝이라는 경험을 했는데, 공간이나 콘셉트도 주기적인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디자이너 가구도 전시하고, 큰 그림도 걸고, 한 작가의 시리즈에서 10점 이내로 전시하는 건 어떨까 싶어요.
‘자신의 직업을 무엇으로 규정하는가’가 퍼스널 브랜딩의 시작이라고 하잖아요. 지금의 ‘직업’을 어떻게 규정하나요?
공예 부스터(booster)가 어떨까 싶네요.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디자이너, 공예가, 회화 작가가 정말 많아요. 대형 화랑에서 소개하는 에이스 작가들이 전부는 아니거든요. 그런 점에서 로컬 아티스트들의 ‘부스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브랜드를 명쾌하게 알리기 위해 정한 슬로건이 ‘좋은 것 하나씩!’인 것도 그래서예요. 한 점 갤러리와도 맥락이 연결되고, 제 정체성을 명료하게 전달해주니까요.
아무래도 가장 궁금한 건 브랜딩 방향을 정한 스타트 라인이 아닐까 싶은데요.
봉준호 감독이 그랬잖아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게 뭘까, 지금 가장 좋아하는 게 뭘까 부분에 돋보기를 들이댔더니, 글 쓰고, 말하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 보이더라고요. 그중 하나인 ‘토크’를 콘셉트로 잡고 ‘건축가의 집’이라는 프로그램을 갤러리 로얄과 함께 진행했어요. 에디터 시절 건축 관련 기사를 많이 쓰고 건축가를 많이 만난 게 큰 도움이 됐죠. 조병수·최욱 건축가 등 평소 만나기 힘든 건축가를 섭외하고 진행했는데, 모더레이터로 자리 잡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어요.
방금 언급한 현역 에디터 시절의 경험이 브랜드의 연착륙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했나요?
90%? 공간, 작가, 프로젝트 등 좋은 건 거의 경험해봤으니까요. 정말 큰 자산이 됐어요. 또 하나 감사하는 건 인스타그램이에요. 에디터 시절 훈련하는 것 중 하나가 시선을 끌 사진을 고르고 흐름에 맞는 컷을 고르는 일이거든요. 일종의 직업병인 셈인데, 인스타그램 같은 비주얼 플랫폼에 꼭 필요한 기능이더라고요. 글쓰기의 경우는, 모두가 짧게 쓰는 공간이지만 재밌고 정보가 있으면 길게 쓰더라도 읽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읽을 맛 나게, 곧장 올리지 않고 작가의 코멘트라도 꼭 추가해서 넣었어요. 나중에는 ‘눈 호강, 글 호강한다’는 댓글도 달리더라고요. 굳이 내 욕망을 숨길 필요가 있나 싶어서 진행한 건데, 브랜딩에 큰 도움이 됐어요.
브랜드를 지속하기 위한 네트워크 구축의 중요성을 절감한 때가 있나요?
작가와 맺는 네트워크, 인스타그램 팔로워로 맺는 불특정 네트워크가 있을 텐데, 구축보다 중요한 건 지속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상품이든, 행사든, 프로젝트든 내가 가진 양질의 아이디어와 콘텐츠를 세상에 꾸준히 내놓을 때 가능한 거고요.
사람 만나는 일이 즐겁다고 하셨잖아요. 네트워크를 만드는 노하우가 남다를 것 같아요.
평소 잔정을 잘 표현하고 챙기는 타입이에요. 스킨십도 좋아하고요. 에디터 시절, 카톡에 생일 알림이 뜨면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여지없이 선물 쿠폰을 쐈어요. 말도 많고, 전화하는 것 좋아하고, 신문에서라도 보이면 요란 떨며 문자 보내고, 절대 감정을 숨기지 않고 강가에 작은 디딤돌을 놓듯 사람들과 교감한 게 씨앗이 되더라고요. 그런 과정이 차곡차곡 쌓여야 큰 제안이나 부탁을 꺼낼 때 대화가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대접받는 에디터였다가 자기만의 독립 브랜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뭘까요?
마지막 커리어가 <디자인 프레스> 편집장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 였어요. 그전에 일한 멤버십 라이프스타일 잡지에서 대접받는 스케줄만 누리다 곧장 독립했다면 ‘현타’를 세게 맞았을 것 같거든요. <디자인 프레스> 초기에는 꽤 힘들었어요. 오프라인 콘텐츠만 하다가 디지털로 넘어간 셈인데, 기사마다 팔로워 숫자, UV, PV 등을 보고하는 페이퍼워크가 끝도 없었거든요. 반면 어떤 글과 사진을 올렸을 때 독자들이 반응하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대응하는 훈련을 하게 됐어요. 불특정 다수와 디지털 커넥션을 하면서 전달력과 워딩을 하드 트레이닝한 셈이죠. 생각지도 못한 경험이 요즘 시대에 맞는 가장 큰 자산이 됐어요.
갤러리 클립 이전과 갤러리 클립 2.0 오픈을 앞둔 현재까지 정성갑이라는 브랜드 내부에 일어난 변화가 있다면요?
시작은 다 미미해요. 처음 ‘좋은 것 하나씩!’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었을 때만 해도 이 빈약한 상상력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하지만 잘하는 일, 잘하고 싶은 일을 지속하면서 상상력을 더하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많아졌어요. 나중에는 ‘좋은 것 하나씩!’에서 집도 팔고 싶어요. 크리에이터들의 집, 작가들의 집. 그런 집을 내놨을 때, 이 공간에서 작가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같은 스토리 소개를 잘할 자신이 있거든요. 경험이 쌓이면서 아이디어가 붙고 상상력이 커지는 걸 보면, 분명 브랜딩은 나를 강하게 해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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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