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자 한승훈의 '신화의 질문' 칼럼이 격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화를 새롭게 읽으며, 인류의 흥미진진한 질문과 만나 보세요. |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신화 이론 중에 “원시모권제 가설”이라는 것이 있다. 그 개략은 이렇다. 국가와 같은 권력 기구가 발생하기 이전의 초기 인류는 평등하고 협동적인 공동체를 이루고 살고 있었다. 그들은 폭력적이고 독선적인 남성 신보다는 여성 신격을 숭배했다. 사람들은 여신에게 사회의 유지와 재생산에 필수적인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였다. 저 유명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로 대표되는 유방과 성기가 강조된 신상들은 그 시대의 산물이다. 그러나 가부장제와 사유재산제가 확산되면서 사람들은 신을 남성으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왜냐면 현실에서 힘을 가진 것은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딱히 성별을 지정할 수 없는 아브라함계 종교(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유일신이 남성이 된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리투아니아 출신의 고고학자 마리야 김부타스(1921-1994)는 이런 가설을 발굴을 통해 입증하려 했다. 고(古) 유럽(Old Europe)과 쿠르간 가설(Kurgan hypothesis)은 김부타스가 유행시킨 두 가지 개념이다. 선사시대의 고 유럽은 “여신 문명”이었다. 이 시기의 유물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여신상, 그리고 여신을 상징하는 문양들이 풍부하게 발견된다. 여신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는 평화롭고, 여성을 존중하였으며, 경제적 평등을 지향했다. 그런데 이 행복한 세계에 흑해 연안의 스텝 지역인 쿠르간에서 출발한 침략자 집단이 도착하였다. 바로 그들이 오늘날 대부분의 유럽 언어의 조상언어인 PIE(Proto-Indo-European)를 사용하던 가부장적인 전사 집단이었다는 것이다. 발달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던 쿠르간 문화는 “어머니 여신”을 숭배하던 고 유럽의 평등주의 문화를 파괴하고 “아버지 신”을 중심으로 하는 권위주의적인 가부장제를 이식했다. 오늘날 전해지는 그리스-로마 신화, 북유럽 신화의 중심은 호전적인 남성신들이다. 여신들은 그 ‘아내’나 ‘딸’로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였으며, 그나마 그리스도교의 출현 이후에는 완전히 밀려나고 말았다.
1970년대 이후 인기를 끈 이 이론은 대안문화와 영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일부 2세대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에게 엄청난 자극과 영감을 주었다. 그리스도교 이전의 이교(Paganism) 문화에서 여신들을 발굴하고, 이교 문화의 전승자였던 ‘마녀’들에 대해 재평가하는 움직임도 일어났다. 이런 관점은 유럽 이외의 지역에도 적용되었다. 남편인 시바를 밟은 채, 자신이 베어 죽인 ‘남성’ 아수라들의 머리와 팔로 온몸을 장식한 인도의 여신 칼리는 이 운동의 강력한 아이콘이다. 한국의 경우, 민담과 무속 신화에 등장하는 마고할미, 선문대할망과 같은 여신들이 주목받았다. 오늘날까지도 이 운동은 “페미니스트 영성”, “여신 순례” 등의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여신 운동이 정말 해방을 가져오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여신을 숭배하는 종교문화가 그렇지 않은 문화보다 덜 가부장적이거나 덜 남성중심적인가? 대표적인 반례가 인도의 라즈푸트족이다. 이들은 힌두교 마하데비(여신) 전통의 열광적인 지지자들인데, 한편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가부장적인 집단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20세기 후반까지도 아내가 불 속으로 뛰어들어 죽은 남편의 시체와 함께 화장되는 “사티” 풍습이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여신에 대한 숭배와 여성에 대한 멸시가 동시에 나타나는 사례는 적지 않다. 사실 숭배는 혐오의 다른 측면이기도 하다. 숭배와 혐오는 모두 대상의 특정한 속성(이 경우에는 여성성)을 각각의 인간으로부터 분리, 강조해서, 결과적으로는 대상을 비인간화하기 때문이다. 숭고하고 자애로우며 아름다운 어머니 여신을 믿는 곳에서 현실의 여성은 그에 한창 못 미치는 비루한 존재로서 멸시받는다. 한편, 강력하고 무시무시하고 매력적인 전사 여신을 믿는 곳에서 여성은 두렵고 유혹적인 존재로서 억압당한다.
한편 아나키스트 인류학자인 피에르 클라스트르는 여신의 몰락과 남신의 지배라는 현상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 그에 의하면 신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수정’하려는 시도다. 이를테면 여성의 모성(母性)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기능이 아니라 아이를 낳을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는 사회적 지배권이다. 따라서 가부장제 사회는 신화를 통해 사회의 운명을 여성이 결정한다는 ‘현실’을 뒤집어서 남성이 사회를 지배한다는 ‘환상’을 심어주려 한다. 여성을 가정에 가두어 놓고 임신과 출산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신화 속 여신들이 ‘아내’나 ‘어머니’의 역할만을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여신 운동과 같은 실험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확인되지 않는 “좋았던 그때”로 돌아가려는 시도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적 질서를 만들려는 실천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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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훈(종교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