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터키 이스탄불을 다녀온 이후 여행을 쉬고 있다. 일 년 반 동안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뉴욕과 세렝게티, 아이슬란드, 조지아, 남극을 여행하려던 계획을 접었다. 일본 후쿠오카의 식당을 사진에 담으려 취재를 몇 번 다녀왔고 후속 취재를 해야 했지만 그 계획도 깨끗하게 접었다.
대신 강릉과 속초, 화천, 의성, 하동, 부산, 강진, 제천 등을 여행했다. 아내, 아이들과 함께 다녔다. 우리는 자작나무 숲을 트레킹했고, 바다에서 카약을 탔다. 서킷에서 레이싱카도 몰았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숙소에서 안개 가득한 아침을 맞았고, 아주 오래된 두부집에서 두부를 구워 먹기도 했다. 자유로를 끝까지 따라가면 철책선 앞에 조그마한 카페가 우두커니 서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지금은 제주도에서 한 달을 살아볼 생각을 하고 있다.
팬데믹 이전,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여행작가였다. 회사원이 회사에 가기 싫어하듯, 여행작가인 나는 여행 가는 것을 싫어했다. 삼각대를 세우고 카메라를 세팅하는 그 시간이 너무 지겨웠다. 그리고 팬데믹이 왔다. 내 여행은 조금씩 달라졌다. 팬데믹 속에서 나는 가족과 함께 느리게, 느긋하게 이 땅을 여행했다. 사람들과 떨어져 우리끼리 머물렀다. 나는 여행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가족과 여행을 하며 나는 앞으로 어떤 여행을 해야 할 것인지 희미하게나마 깨달아가고 있다.
팬데믹이 끝나면 뉴욕과 세렝게티, 아이슬란드, 조지아, 남극엘 가려 할 것이다. 하지만 굳이 안 가도 된다. 못 가도 그뿐이다. 그렇지만 가족과 함께 계획 중인 숲여행은 해보고 싶다. 이 땅의 오래된 중국집을 다 다녀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어쨌든 나의 여행은 조금 더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향할 것이다. 거기에 다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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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수(시인,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