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록 “시인이 쓴 소에 대한 산문집 『그립소』”
『그립소』는 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소와 함께 자란 소년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소년은 소 덕분에 무사히 자라서 어른이 되었고, 소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과 미안함을 담은 글로 한 권의 책을 묶었습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1.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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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의 농사짓고 소 키우는 집에서 자란 시인 유병록의 소를 그리는 마음! 총 3부로 구성이 되어 있는 『그립소』“무엇보다도 우리집에는 소가 있었”기에 쓰일 수 있던 유병록 시인의 글이다. 집에 소가 있어, 그런 소와 함께 살 수가 있어, 소를 보고 소를 알기에 소와 한 호흡일 적 일들을 새록새록 떠올려 받아 적을 수 있던 유병록 시인만의 기록. “소와 함께 살았소” “소를 타고 왔소” “소가 그립소”라는 3부의 각 소제목만 보더라도 그 글의 전개 과정이 추측이 된다.



소에 대한 산문집입니다. 어쩌다 소를 가지고 쓰게 되셨나요? 다분히 흰 소의 해를 의식한 쓰기였을 것이 짐작되기는 합니다. 

맞습니다.(웃음) 『그립소』에 어린 시절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어서 그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저는 충북 옥천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중고등학교는 읍내에서 다녔습니다. 스무 살 이후로 서울과 그 부근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인이 되어 알게 된 사람들 중에는 시골 출신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자연스럽게 고향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착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은 제 이야기를 신기해하고 재밌어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은 사람 중에 한 명인 난다출판사 대표 김민정 시인이 소에 관한 산문집을 내자고 제안해왔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웃어넘겼는데 나중에 다시 연락이 와서 소의 해에 소에 관한 책을 내자고 제안했습니다. 처음에는 과연 책으로 묶을 정도로 쓸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 머뭇거렸지만, 어쩌면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살아가는 분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흰 소의 해인 올해가 지나기 전에 출간하기 위해서 일소처럼 부지런히 썼고 출판사에서도 부지런히 준비를 해서 다행히 소가 한참 일할 때인 여름에 책을 낼 수 있었습니다.

제목이 ‘그립소’입니다. 그러고 보면 ‘소’로 끝나게 말 만드는 일이 우리 일상에서는 흔히 있었는데요. 제목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소에 관해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고서 소와 함께한 추억을 하나씩 떠올렸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에 임시로라도 제목을 정해두면 좋겠다 싶어서 이리저리 궁리를 해보다가 ‘그립소’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조금 장난스러운 말이기도 했지만 제가 써나갈 글의 분위기와도 잘 맞겠다 싶었습니다. 소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내면서도 너무 무겁지 않은 느낌이어서 좋았습니다만, 그저 임시방편이었고 얼마쯤은 저 스스로에게 건네는 농담이었습니다. 그리 생각했던 이유는 난다출판사 대표인 김민정 시인 때문이었습니다. ‘난다’라는 출판사의 이름도 그러하거니와 그곳에서 멋진 제목을 책들이 연이어 출간되는 데 김민정 시인의 작명 센스가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원고를 다 쓰고 나서 ‘그립소’라는 임시 제목을 그대로 달아서 출판사에 보냈습니다. 잘 어울리는 제목을 지어주리라 기대하며 슬며시 밀어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뒤에 만나서 제목을 상의하는데, 김민정 시인이 책 제목을 ‘그립소’로 그대로 하면 어떻겠냐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리저리 고민을 해봐도 더 나은 제목을 찾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작명 센스의 덕을 보지 못했지만, 김민정 시인이 더 나은 제목을 찾기 어렵다고 한 만큼 충분히 잘 어울리는 제목을 달게 된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안간힘』에 이어 두번째 산문입니다. 그런데 시인이 써온 시와 그 결이 유사하게 흐르는 산문 같기도 한데요. 시인 유병록에게 산문이란 무엇인가요? 

오랫동안 주로 시를 쓰다보니, 다른 글을 쓸 때도 시를 쓸 때의 방식이나 습관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산문을 쓸 때도 간결하면서도 함축적으로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 감정을 폭발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그저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방식도 시를 쓸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시보다는 산문을 쓰는 일은 대체로 즐겁고 보람이 있습니다. 어깨의 힘을 풀고 가뿐한 마음으로 주변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마음으로 쓰다보니, 쓸 때도 즐겁고 쓰고 나면 개운한 마음이 듭니다. 시를 쓸 때는 제 자신의 마음 안쪽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 많은데, 산문을 쓸 때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좀더 이해할 수 있어서 좋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만으로도 얼마쯤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어서 또 좋습니다.



특히 이번 책에 어머니의 소에 관한 기록과 기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고향 옥천을 지키는 어머니와 어머니가 키우는 소, 들려주셨으면 하는 키워드가 크긴 하지만 넉넉히 듣고 싶습니다. 

『그립소』를 쓰면서 어린 시절을 자주 되돌아보았고 자연히 어머니와 함께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어머니는 늘 분주했습니다. 집안일과 농사일을 하느라 늘 힘겨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생각하면 늘 고생스러운 모습이 떠오르며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함께 들곤 했습니다. 그런데 기억이 흐릿한 부분을 확인하느라 자주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어머니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어머니가 자식들을 키우느라 늘 고생스럽게 농사를 지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다보니 아무래도 어머니는 훌륭한 커리어우먼이자 지독한 워커홀릭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농사일이 잘되고 외양간에서 송아지들이 쑥쑥 태어나서 무럭무럭 자라는 일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만약에 농사일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소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많이 괴로워했습니다. 농사짓고 소 키우는 일이 우리 가계에 큰 수입이다보니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집의 살림이 그래도 좀 나아졌을 때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텃밭에 심은 몇 포기 되지 않는 오이나 가지가 제대로 열리지 않아도 영 심기가 불편했습니다. 지금도 전화 통화를 할 때면 송아지가 태어났다든가 고추를 팔아서 얼마를 벌었다든가 올해는 초당옥수수를 처음 심었는데 아주 잘되었다는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습니다. 농사짓고 소 키우는 일에서는 도통 자랑을 멈추지 않습니다. 당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늘 자식들이 공부를 잘하거나 상을 받거나 하는 등 자랑할 만한 일이 생기면 축하를 해주면서도 늘 겸손하라는 주문을 잊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당신의 일에서는 그게 어려운 모양입니다.(웃음)

이번 책에서 내가 쓰고도 아 이건 정말 잘 쓰였다 하는 챕터가 있다면, 특히나 문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어머니에 관한 글 「신정숙 약전」을 쓸 때였습니다. 제 머릿속의 어머니는 현실의 모습처럼 쉬지 않고 분주하게 돌아다녔습니다. 논밭을 오가며 일하고 꽃밭을 일구고 여러 동물을 길렀습니다. 저는 가만히 어머니의 뒤를 따라가면서 그저 글로 옮길 뿐이었습니다. 글을 쓰고 나니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다만 어머니 곁에는 여전히 든든하고 근사한 소가 있다”라는 문장이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그 곁의 든든하고 근사한 소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좋았습니다. 특히 ‘근사하다’는 말이 정말 근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근사하다는 말을 쓴 기억이 없는데, 아마도 이번에 정말 근사하게 쓰려고 그동안 아껴둔 것이라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신정숙 약전」은 “어머니 신정숙씨는 4남매를 길렀는데 그중 한 명은 나다. 그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로 끝납니다. 글을 써서 좋은 이유 중 하나는 평소에 하지 못하는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는 점이겠습니다.

소 얘기라지만 시인의 성장기를 대변하는 스토리이기도 합니다. 82년생 유병록에게 마흔이란 무엇인가요? 

스무 살 무렵에 고향을 떠난 이후로 앞만 보고 달려온 느낌입니다.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일은 일부러라도 피했습니다. 추억이 제 발목을 잡는 듯한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 산문집을 쓰면서, 제가 돌아보지 않았지만 과거는 늘 언제나 제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해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덕분에 이 나이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마흔이 되면 ‘어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막상 마흔에 이르고 보니 어른이 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앞만 보고 달리는 게 아니라 옆과 뒤를 살피고, 자신만이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살피는 나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보면 얼마쯤은 어른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한 이들이 있습니다. 이 책을 혹독한 간결함을 다해 140자로 소개한다면? 

『그립소』는 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소와 함께 자란 소년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소년은 소 덕분에 무사히 자라서 어른이 되었고, 소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과 미안함을 담은 글로 한 권의 책을 묶었습니다.




*유병록

1982년 충북 옥천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농사짓고 소 키우는 집에서 여러 동물과 어울려서 자랐다. 읍내로 이사해서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고향과 소에게서 조금씩 멀어졌다.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경기도 일산에서 글을 쓰고 책 만드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 그동안 시집 『목숨이 두근거릴 때마다』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 산문집 『안간힘』을 냈다. 김준성문학상, 내일의 한국작가상을 받았다.



그립소
그립소
유병록 저 | 노석미 그림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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