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시집서점의 '겨움'과 '벅참'의 시간들 (G. 유희경 시인)
지금 제 옆에 구름과, 쭉 뻗은 나무들과, 밤과, 당신을 사랑하는 시인, 최근 시집서점 위트 앤 시니컬의 두툼한 모습들을 담은 산문집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을 출간하신 유희경 시인님 나오셨습니다.
글ㆍ사진 신연선
2021.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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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여태 남아 있고 손님은 여전히 없고 그러나 나는 씩씩해져버렸다. 서점의 씩씩함이란 내일 한번 더 해보는 것. 내일모레도 해보는 것. 찾아오는 사람에게 기꺼이 물을 덥혀 차를 내어주는 것. 대가보다 좋아하는 마음을 앞서 생각해보는 것. 수첩을 활짝 펴서 내일 해볼 일들을 적으면서 끝에 꿀생강대추차, 유자차, 청귤차라고 적는다. 적어놓고 탁, 소리 나게 수첩을 덮는다. 하루가 끝날 때나 들을 수 있는 소리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유희경 시인님의 산문집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알려진 대로 유희경 시인님은 혜화동에서 시집서점 위트 앤 시니컬을 운영하고 계시죠. 그리고 서점의 일을 생각합니다. 내일도, 모레도 해보는 것, 찾아오는 사람에게 기꺼이 물을 덥혀 차를 내어주는 것. 그 씩씩하고 단정한 서점지기의 마음이 묘한 안도감을 주는데요.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유희경 시인님을 모시고 서점지기의 일, 서점의 일, 그리고 서점지기로 사는 시인의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인터뷰 – 유희경 편>

오은: 지난 7월 1일이 위트 앤 시니컬 5주년이었어요. 지난 5년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어떤 시간이었을까요? 

유희경: 겨움과 벅참,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눈물겹기도 하고요. 정겨움도 있었고요. 가슴 벅찬 감동도 있었고, 벅차오르는 슬픔도 있었던 것 같아요. 감정들이 조금씩 오는 게 아니고 한꺼번에 밀려와서 큰 충격을 주더라고요.

오은: “매년 7월에 첫 날이 되면 그저 이마에 땀을 닦는 기분이 되는 것”이라고 책에도 쓰셨는데요. 그건 어떤 기분일까요?

유희경: 거창하게 말해서 사회적 실험이라고 저는 생각을 했어요.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고, 그들의 모임이라는 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늘 아슬아슬해요. 버텼다라는 생각이 늘 들고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떠오르죠. 

오은: 유희경 시인님 소개는 지난 36-1회 방송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고요. 오늘은 <김하나의 측면돌파> 시그니처 코너죠. ‘스피드퀴즈’로 진행하겠습니다. 질문을 들으시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대답을 해주시면 됩니다. 

유희경: 아, 이거 되게 긴장돼요.(웃음) 

오은: 둘 중 더 절박한 상황을 고른다면? 1) 주문한 책이 오지 않은 낭독회 30분 전 2) 채널예스 원고 마감 30분 전

유희경: 2번.(웃음)

오은: 더 기억에 남는 독자는? 1) 한 번에 많이 사는 큰손 2) 올 때마다 한 권씩 사는 단골

유희경: 2번. 

오은: 서점지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1) 고성능 음향기기 2) 흔들리지 않는 멘탈

유희경: (웃음) 2번. 

오은: 하루 중 더 좋아하는 시간은? 1) 서점 문을 열고 연필을 깎을 때 2) 서점 문을 닫고 캔맥주를 딸 때

유희경: 1번. 

오은: 위트 앤 시니컬의 서점지기로 산 지 5년. 나는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yes or no? 

유희경: (웃음) yes. 그나저나 이 문제 누가 낸 거예요? 나에 대해서 너무 잘 아는 사람인데, 오은 시인인가요?(웃음) 이런 질문을 처음 받아본 것 같아요. 

오은: 작가님과 저, 엄지혜 기자님 세 명이서 머리를 맞대고 질문을 짜봤어요. 서점지기로 살면서 성격이 어떻게 바뀌었나요? 

유희경: 저는 부정적이고, 관계에 있어 신뢰가 많이 없는 사람이었는데요. 그런 것이 많이 바뀌었어요. 낯가림도 많이 없어졌고요. 사람에 대한 좋은 면을 많이 보게 됐어요. 사람을 많이 좋아하게 됐고, 진심으로 다가가게 됐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오은: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할 텐데요. 먼저 시인님께서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이 어떤 책인지 직접 소개해주세요. 

유희경: ‘위트 앤 시니컬 독자들이 모아준 이야기를 시인 유희경이 받아 적고, 편집자 박선주가 만들고, 디자이너 최정윤이 디자인한, 달 출판사에서 펴낸 서점 이야기’ 정도로 소개를 하면 될 것 같아요. 

오은: 이 책을 만들기 위해서 힘써준 분들을 언급하시면서 마치 나는 그 뒤에 서서 그냥 받아 적기만 한 것이다, 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 같거든요. 

유희경: 사실 그래요. 많이는 아니지만 앞서 책을 좀 내봤는데요. 이번에는 감각이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내 책이 나오고 나면 일단 좀 어색하고 그래요. 때문에 저는 서점에서 제 책을 사는 일이 거의 없어요. 그런데 이 책은 몇 번 샀어요.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모종의 대표주자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 얘기, 저의 생각만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말하기 어렵거든요. 누군가에게 받은 영향, 누군가가 해줬던 이야기, 누군가랑 있었던 이야기들이 적혀 있는 것이어서요. 그래서 이 책 인세를 서점 월세로만 쓰겠다고 공언한 적도 있어요. 그런 마음으로 제가 책 소개를 이렇게 하는 거예요. 

오은: 말씀을 들어보니 이 책은 ‘유희경 산문집’이라는 말도 어울리지만 ‘위트 앤 시니컬 엮음’이라고 들어갔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시집 서점을 열자마자 책 제안을 받았다고 들었어요. 책이 5년까지 걸릴 거라고 예상을 하셨나요? 

유희경: 전혀 예상 못했고요. 못 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시도를 몇 번 했는데 도저히 안 써지는 거예요. 이유를 알 수 없었고, 나는 이런 글과는 어울리지 않는구나 생각했었는데요. 그만큼 이야기가 쌓일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채널예스>에 ‘유희경의 이달의 시집서점’이라는 코너로 칼럼 연재를 했잖아요. 연재를 하면서 자신감이 생겼거든요. 그러면서 5년이 걸릴 필요가 있었구나, 조금 더 빨랐으면 좋았겠지만 5년 동안 쌓인 게 이만큼이구나, 라고 생각을 했어요. 

오은: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그리고 약간 뜻밖이었던 부분 중 하나가 어린이 독자들을 서점에 오고 싶게 만들고 싶어하신다는 것이었어요. 동시집도 구비에 놓으시고, 그림책 큐레이션도 하시면서 어린이 독자들과 계속해서 소통을 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유희경: 어렸을 때 살던 동네 서점 사장님이 저희가 가서 무슨 책을 어떻게 훑어보든 그냥 내버려두는 분이셨거든요. 그 덕분에 제가 책을 좋아할 수 있었다고 생각을 하고요. 위트 앤 시니컬 역시 어린이들이 책을 좋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면 좋겠어요. 한편 저희 서점에 어린이들이 올라오면 동시집도 안 보고, 그림책도 안 봐요.(웃음) 올라오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건데 저는 조마조마하죠. 계단에서 떨어지면 제 책임이니까요. 보험도 늘어났는데요. 그 어린이가 다치면 보험이 무슨 소용이겠어요. 그래서 ‘어린이 여러분 계단에서 제발 뛰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몇 살 이하 어린이는 꼭 보호자 손을 잡고 올라가세요.’라고 붙여놨거든요. 그런데 어떤 어린이도 신경을 안 쓰더라고요. 이유를 생각하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알았어요. 제가 그 안내문을 어른 눈높이에 붙여놨더라고요. 그걸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는 문자체로, 어린이들이 볼 수 있는 높이에 붙였어야 했는데 말이에요. 

오은: 얼마 전이죠. 유튜브 <위트 앤 시니컬TV> 채널을 시작하셨잖아요. 코로나19 때문에 생성된 것이기도 한 것 같은데요. 온라인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느낀 이유가 있을까요? 

유희경: 거창한 목표는 시를 읽는 방법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는데요. 무엇보다 저 사람들을 서점에 가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도록 하고 싶었어요. 저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쓴 시집을 보고 싶고, 저들이 이야기하는 시집을 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말이에요. 그래서 어떤 소설가분이 저희 콘텐츠를 보고 ‘무해한 웃음을 준다’는 표현을 하셔서 되게 기뻤어요. 물론 시 자체는 진지하고 어려운 내용일지라도 읽어가는 방식에서 즐거움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위트 앤 시니컬이 할 일과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어요.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을 드릴게요.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영업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유희경: 엄청 고민을 했어요. 시집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배제했지만 자꾸 떠오르는 시집도 있었고요.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골랐어요. 소설 내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들이 결국은 어떤 일이다, 그게 사람의 생이고 삶이다, 라는 걸 말해주거든요. 레이먼드 카버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천재적인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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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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