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주 실패하고, 실패했다고 여겨지지만 그것이 끝은 아닐 겁니다. 다들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일어서서 여기 있으니까요. 무리하지 않고 잠시 그대로 있어도 괜찮고요, 무엇보다 누군가의 ‘실패’라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의 이야기는 언제나 실패의 기록이면서 또 돌파의 역사일 겁니다. 여기,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편견을 물리고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실패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유원 저 | 한겨레출판
제2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입니다. 소설은 크게 세 사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돼요. 촉망받는 신인이었지만 이제는 중요한 순간마다 볼넷을 남발하는 것이 익숙해진 투수, 회사의 부조리를 묵인하고 사회의 틀에 적당히 자신을 맞추면서 그저 안정적인 생활이 이어지기를 바라게 된 증권회사 주임, ‘스포츠신문 최초 여자 편집장’을 꿈꾸며 특종을 위해 달리다가 의외의 걸림돌을 만나게 되는 기자. 밖에서 보면 하나같이 그럴듯한 이름표를 달고 있는 이들은 각자의 리그에서 치열하게 뛰고 있습니다. 우리가 더 유심히 보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 ‘불펜의 시간’이 아닌지, 소설은 묻는 듯합니다. 승리와 패배의 경계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어떤 기회도 놓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살았다. 하지만 이번 기회는 놓쳐보기로 했다. 비열해질 기회까지 잡을 필요는 없다고, 놓쳐도 되는 기회도 있다고 일부러 볼넷을 던지는 사람이 알려주었다.
_『불펜의 시간』 중에서
장류진 저 | 창비
‘직장인 3인방의 코인열차 탑승기'를 그린, 장류진 작가의 첫 장편입니다. 인사평가는 늘 ‘무난’을 넘지 못하고, 직장 스트레스는 달달한 디저트로 풀 수밖에 없고, 열악한 월세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을 위해 이사를 거듭합니다. 소설 속 이야기는 곳곳의 설정 하나까지 현실의 우리 모습을 닮아 더 큰 공감을 일으키는데요, ‘떡락’과 ‘떡상’의 풍파를 같이 겪는 세 사람은 책에서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요? 그들의 불안과 좌절, 환희의 순간들을 함께하며 어느새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끝내 개운해집니다.
“야! 니가 그럴 자격이 왜 없냐? 그럴 자격 있다. 누구든 좋은 걸, 더 좋은 걸 누릴 자격이 있어.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 없어. 너도, 나도, 우리 엄마도. 그건 다 마찬가지인 거야. 세상에 좋은 게, 더 좋은 게, 더 더 더 좋은 게 존재하는데, 그걸 알아버렸는데 어떡해?”
은상 언니가 야광봉을 쥔 한쪽 팔을 허공에 쭉 뻗고서는 내 귀에 대고 속닥였다.
“걱정 마. 우리 저기까지 갈 거잖아.”
노란 빛살을 내뿜는 야광봉의 끝이 밤하늘의 달을 가리키고 있었다. 반쪽은 캄캄한 어둠 속에 잠겨 있고 또다른 반쪽은 시원하게 빛나고 있는, 아주 정확한 반달이었다.
_『달까지 가자』 중에서
메이브 빈치 저/정연희 역 | 문학동네
아일랜드의 국민작가라 불리는 메이브 빈치의 소설입니다. 각자의 문제를 안고 호텔 스톤하우스를 찾은 사람들의 일주일을 그린, 또 다른 방식의 ‘돌파하는 이야기’라 하겠습니다. 타지에서 온 여행자와 사랑에 빠져 고향을 떠났다가 상처를 안고 돌아온 치키는 낡은 저택을 개조해 호텔을 시작하고, 말 못할 비밀과 감정을 품은 다양한 손님들이 이곳을 찾습니다. 멈추거나 도망치는 선택을 하게 된 사람들이 낯선 곳에서, 뜻밖의 순간에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작은 계기를 맞게 돼요. 특유의 온기로 마음을 풀어주는 책입니다.
말 그대로 낭만적인 감정이나 별빛이 마법처럼 뿌려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좀더 깊은 무엇이었다. 자신이 중요하다는 느낌, 혹은 기분좋은 평화의 느낌 같은.
_『그 겨울의 일주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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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욱(도서 PD)
책을 읽고 고르고 사고 팝니다. 아직은 ‘역시’ 보다는 ‘정말?’을 많이 듣고 싶은데 이번 생에는 글렀습니다. 그것대로의 좋은 점을 찾으며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