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글쓰기의 쓸모』에서 손현은 이렇게 썼다. 이 단순한 한 문장이 와닿은 이유는 아마 글쓰기에 진심인 손현의 삶의 여정 때문일 것이다. 공장을 짓는 플랜트 엔지니어였던 그는 어느 날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한 번의 전환 이후 손현의 길은 단순했다. 지속가능한 글쓰기를 향해 나아가는 삶. 모터사이클로 177일 동안 유라시아를 횡단했고 그 기록을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로 묶었다.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 <매거진B>에서 에디터로 일하며 한 편의 콘텐츠가 독자에게 잘 전해지는 방법을 고민했다.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해온 그에게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는지’를 물을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단순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왜 글쓰기가 삶의 중심이 되었냐고, 글쓰기는 무엇을 바꾸었냐고.’
공장을 짓다가 글을 짓기 시작했다
『글쓰기의 쓸모』라니, ‘글쓰기’를 오랫동안 고민해온 손현 님에게 어울리는 제목 같아요.
담당 편집자님이 원고를 읽더니 이건 딱 ‘글쓰기의 쓸모’가 맞다고 했어요.(웃음) 한 사람의 삶에서 글쓰기가 어떤 쓸모가 있었는지를 다각도로 보여주니까요. 처음에는 ‘내가 글쓰기에 대해 써도 될까’ 하는 고민을 했어요. 저는 글쓰기 선생님도 아니고, 처음부터 직업적인 글쓰기를 해온 사람도 아니었으니까요. 건축과를 나와서 플랜트 엔지니어로 일하다 중간에 에디터로 전업을 한 케이스거든요. 그런데 편집자님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이 제 이야기를 궁금해할 거라고 하셨어요. 어떻게 한 사람이 글쓰기를 통해 직업을 바꾸고 인생 여정까지 바꾸었는지를요.
이번 책은 ‘글쓰기’로 한 사람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이야기이기도 하잖아요. 글쓰기의 세계에 들어간 계기가 궁금했어요.
책을 쓰면서 돌아보니 초등학생 때부터 뭔가를 꾸준히 쓰긴 했더라고요. 하나를 꾸준히 하니까 직업을 바꾸고 책까지 낼 수 있었던 거고요. 고등학교 때, 영화평론가와 건축가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했는데요. 국어선생님이 글만 써서는 밥 먹고 못 사니까 건축가를 하면서 글을 쓰라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제가 건축과를 갔죠.(웃음) 결국 글쓰기의 길로 왔지만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낮은 급여를 감내하면서까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공장을 짓는 일을 했는데 제조업이 상대적으로 고연봉 직군이잖아요. 근데 당장 돈을 조금 더 받는다고 해서 평생 하지 않을 일을 붙들고 있는 게 맞나 싶은 거예요. 저 자신을 서서히 끓고 있는 물 속의 개구리라고 생각했어요. 이러다 죽겠다 싶더라고요. 마침 주변 사람들이 제 글을 보고 좋다는 말을 해주던 시기였는데요. 그런 격려가 큰 힘이 되더라고요. 그럼 직업을 바꿔서 꾸준히 글을 써보자, 그럼 점점 커리어가 쌓일 거고 지금 고민도 해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손현 님을 떠올리면, 누구보다 다양한 글쓰기 환경을 경험한 사람이라는 인상이 있어요.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 <매거진B> 단행본 『JOBS』 시리즈를 거쳐, 지금은 토스의 콘텐츠 플랫폼 <토스피드>에서 콘텐츠 매니저로 일하고 있잖아요. 독자에게 콘텐츠를 전하는 손현 님만의 노하우가 있나요?
의외로 단순해요.(웃음) 독자가 흥미를 가질 수 있게 눈높이를 맞출 것. 그렇다고 너무 쉽게 풀지는 말 것. 금융 콘텐츠를 다루는 <토스피드>의 예를 들어 볼게요. 요즘 사람들은 경제 공부를 많이 해서 전문가 못지 않게 지식이 있거든요. 자연히 독자들은 점점 더 고급 콘텐츠를 원하기 때문에, 특별한 인사이트를 가진 필진을 섭외하는 게 중요하죠. 또, 에디터로서 저는 어려운 부분을 쉽게 풀어주고, 용어가 나오면 꼼꼼하게 주석을 달아요. 특히 금융 분야의 콘텐츠는 신뢰성이 중요해서 가급적 모든 출처는 공신력 있는 곳에서 인용하려고 하죠.
웹 매체 퍼블리에서 디지털 콘텐츠를 다루다가, <매거진 B>에서는 종이책 단행본을 만드셨어요.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디지털 콘텐츠를 다루면 늘 종이책에 대한 갈증이 생겨요. 웹 기사는 누군가에게 링크를 공유하는 게 다지만, 책은 물성이 있으니까 직접 줄 수 있잖아요. 이 책이라는 물건을 사람들이 어떻게 사게 되는지도 궁금했죠. 그때 마침 <매거진B> 편집장님이 단행본 프로젝트를 같이 하자고 제안해왔죠. 한 권의 책을 만들어 팔기까지 생각보다 더 많은 과정이 필요하더라고요. 편집, 디자인, 교정, 서점 영업, 홍보까지 그 모든 과정이 재밌었어요. 나중에는 서점 MD분이 제게 1인 출판사 사장 같다고 했어요.(웃음)
탄탄한 글쓰기의 비결
손현 님의 글은 늘 구성이 잘 짜여진 느낌이 들어요. 어떻게 개요를 짜고 글을 써나가는지 구체적인 과정이 궁금했어요.
기본적으로 메모를 많이 해요. 이동할 때 아이디어를 휴대폰 메모 앱에 틈틈이 남겨두거나, 노트에 연필로도 많이 기록해요. 이건 제가 쓰는 스토리보드 노트인데요. 영화감독이나 방송 작가들이 장면을 스케치하고 콘티를 짤 때 주로 쓰거든요. 건축과는 발표할 일이 많아서 PPT 구성을 잡을 때 이 노트를 쓰곤 했는데, 글을 쓸 때도 활용하고 있어요. 그렇게 메모가 쌓이면, 번호를 매겨서 순서를 재배열해봐요. 각각의 번호가 하나의 단락이 되는 거죠. 구성이 다 정해지면 구글 문서로 옮겨서 글로 풀고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잖아요. 에디터는 그 구슬들을 잘 꿰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평소 글감을 부지런하게 잘 쌓아두고 잘 꿰어서 다듬으면 긴 글도 잘 쓸 수 있어요.
초고를 쓸 때나 마지막으로 퇴고할 때도 출력해서 손으로 쓰는 스타일이라고요.
제가 좀 아날로그 인간이에요.(웃음) 키보드로 치면 속도가 빠르니까 아무래도 놓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손으로 쓰면 느린 대신에 생각하는 속도에 딱 맞춰지는 장점이 있어요.
글쓰기가 일상이겠네요. 지하철 안에서도 메모하고, 회사에서도 글을 쓰고요.
그렇죠.(웃음) 늘 머리가 그쪽으로 돌아가요. 써야할 아이템은 많은데 실천이 느려서 언제나 밀려 있죠. 회사 일이나 개인적인 글감을 To-do 리스트로 작성해두고, 이동하는 중에 어떻게 글로 풀어낼지 틈틈이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게 머리속의 생각을 한 편의 글로 풀어내고 나면 개운하더라고요.
호기심의 원천은 사람이에요.
그리고 콘텐츠는 한 사람이 가진 생각의 정수죠.
에디터로서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이 많은 것 같아요. 관심사를 빠르게 전환해가는 비결이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은 편이고, 호기심의 원천은 사람이에요. 모든 사람에게 다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콘텐츠는 한 사람이 가진 생각의 정수가 담겨있는 거잖아요. 그런 걸 편집할 때도 잘 흡수하려고 노력해요. 관심사가 생기면 그 전문 영역의 사람들을 팔로잉하고 글을 계속 찾아 봐요. 그러다 보면 그들이 접하는 콘텐츠도 알 수 있거든요. 그래서 늘 사람을 통해서 접근하려고 해요.
최고의 글쓰기 자극제는 일상
이번 책 프롤로그가 아주 사적인 이야기로 시작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일화를 쓰셨죠. 제가 아는 손현 님은 감상적인 글쓰기를 지양하는 사람인데.(웃음)
제가 언제 글쓰기의 필요성을 체감했는지 떠올려봤어요. 그러니까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최근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고인의 약력을 세 줄 정도로 써야 했거든요. 그때 한 사람의 인생을 세 줄로 기록하는 일에 대해 생각했어요. 그 기록은 오래 남겠죠. 글쓰기가 왜 중요한지를 강하게 체감한 계기였어요.
첫 책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에서 “불안하기 때문에 나는 기록한다”고 쓰셨어요. 여전히 ‘불안’이 글쓰기의 동력인가요?
맞아요. 팔목에 오래 전에 새긴 타투가 있는데요. “dust, rust, ash”, 그러니까 우리 모두 죽으면 먼지가 되거나 녹이 슬거나 재가 된다는 뜻이에요. 그러니 살아 있을 때 즐겁게 잘 지내자는 거죠.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잖아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죽으면 다 끝인 거고요. 그럼 죽음 뒤에 뭐가 남지 생각해보면, 저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기록하게 돼요. 뇌과학 책을 봤는데 어떤 정보를 장기 기억의 영역으로 보내려면 결국 에피소드로 연결 지어서 직접 글을 써봐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근본적으로 모든 게 다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있어서, 꾸준히 무언가를 써온 게 아닐까 싶어요.
죽음 뒤에 뭐가 남지 생각해보면, 저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기록하게 돼요.
결혼과 육아가 글쓰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요.
결혼을 하고부터 정말 상상 이상의 자극을 받아요. 콘텐츠의 재료가 무궁무진한 거예요.(웃음) 아내랑 다퉜으면 다툰 걸 가지고 쓸 수도 있고. 내가 뭘 잘못했는지 반성의 차원에서 쓸 수 있잖아요. 이 부분은 억울한데 하는 식으로 풀어내기도 하고요. 아내랑 일상적인 대화를 하다가도 “이 말 재밌는데?” 싶은 말은 기록해 두고, “나중에 인용해도 돼?” 하면서 물어보기도 해요.
육아도 제게는 엄청난 변화였어요. 요즘은 부모로서 “나는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까? 이 아이를 위해서 내가 뭘 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돼요. 아이가 뭔가를 바라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내가 강요할 순 없잖아요. 글 쓸 때도 그런 걸 다 염두에 두고 쓰게 되더라고요. 또 다른 변화는 내가 쓴 글을, 기록이 남아 있다면 십 몇 년 뒤에 아이가 찾아서 읽어볼 텐데 그때 부끄러운 글이 되면 안 될 텐데 새로운 고민이 생기죠.
마침 최근에 ‘딸 바보’ 아빠가 되셨잖아요.(웃음) 확실히 육아도 좋은 자극이 될 것 같아요.
맞아요. 제 지인 중에서도 자녀와 짧게 나눈 대화를 가끔 페이스북에 올리는 분들이 있는데 그 대화들이 생각보다 철학적이더라고요. 나이가 어리다고 얕잡아 보면 절대 안 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오히려 더 낯선 눈으로 뭔가를 보고, 우리 눈에 당연한 것들이 아이 눈에는 당연하지 않으니까요. 이 주제로도 글을 계속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지는데요.
현재 <토스피드>는 개편을 앞두고 있어요. 토스 브랜드를 알리면서도, 요즘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콘텐츠를 기획 중이에요. 다들 집이나 커리어에 고민이 많으니까 하반기에는 주거 문화나 커리어를 다뤄볼까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다음 책도 준비하고 있는데요. 이번엔 ‘기획’에 대한 이야기가 될 거예요. 아, 물론 『글쓰기의 쓸모』 홍보도 해야겠죠. 남의 것을 열심히 알리다 보니 막상 제 책은 계속 밀리네요.(웃음)
◈Writer's Playlist
1. Luke Howard, Lior, Shards - Future Coda
2. CL - Wish You Were Here
3. Queen - Seaside Rendezvous
4. Martin Phipps - Queen vs PM
5. Jos Slovick - I Am a Poor Wayfaring Stranger (from 1917)
◈좋아하는 글쓰기 장소
망원역 근처 앤트러사이트 서교점(@anthracite_coffee_roasters),
상왕십리역 근처 레벨커피바(@level_coffeebar),
혜화역 근처 카페 블루룸(@_blue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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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김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