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의 의미
“8천 5백 원입니다.”
자그마한 체구에 단발머리를 질끈 묶은 점원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마스크 위 동그란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매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어디 아파요? 목소리가 안좋아 보이네요.”
카드를 건네던 김희정 씨가 점원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같은 건물 1층의 편의점을 자주 이용하는 김희정 씨에겐 단발머리 직원이 낯설지 않았다. 나이는 스물 네댓 살쯤, 일을 시작한 지는 두어 달 되었을 것이다. 이은주. 보라색 유니폼 가슴 명찰의 이름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질문에 점원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죄송합니다. 머리가 좀 아파서요.”
계산대 뒤편의 작은 플라스틱 수납장이 김희정 씨의 눈에 띄었다. 그 안엔 해열 진통제와 소화제, 종합 감기약, 파스와 밴드와 같은 간단한 상비약이 진열되어 있었다. 점원의 앳된 얼굴은 김희정 씨에게 옛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녀도 오래 전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고 편의점에서 일한 적도 있었다. 급성 편도염으로 고열이 났을 때도, 허리가 끊어질 듯한 생리통으로 몸을 가누기 어려운 날에도 해열제와 진통제를 먹고 아픈 걸 참아가며 출근하곤 했다. 아프면 한 번쯤 쉬어도 되었을 텐데, 누구도 그렇게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점원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태도로 말없이 영수증을 내밀고 이내 건너편의 양복 차림 중년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남자는 술을 거나하게 마신 듯 붉어진 얼굴로 비틀거리며 아이스크림 통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김희정 씨가 뒤돌아서 계산대를 떠나려 할 때 점원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저…… 고맙습니다.”
그녀가 답을 하기도 전에 점원의 시선은 다시 아이스크림 통 옆의 남자를 향했다. 찌푸린 표정에도 변화가 없었다. 지금은 통증보단 술 취한 손님의 존재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한밤의 편의점에선 자주 있는 일이겠지만, 취객을 상대하는 건 혹시 모를 골치아픈 일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불콰한 얼굴의 그가 노래를 흥얼거렸다. 김희정 씨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한동안 점원과 취객을 번갈아 보다 발길을 돌렸다.
다음 날 저녁이었다. 반딧불의원 출입문에 달린 부엉이 종이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단발머리를 묶은 앳된 얼굴이 조심스레 얼굴을 내밀었다. 김희정 씨가 인사를 건넸다.
“두통은 좀 어때요?”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1층 편의점의 직원이었다.
“많이 나아졌어요. 어젠 죄송했습니다.”
“죄송은. 별 말을 다하네요. 오늘은 어디가 불편해서 온 거예요?”
“두통 때문에요. 어제보단 낫긴 하지만 요즘 자주 아파서요. 병원 진료까지 받을 생각은 없었는데 어제 간호사님 만나고 한번 올라와 봐야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유니폼 보고 여기 병원에서 일하시는 거 알았거든요.”
“잘 왔어요. 진료실 들어가기 전에 먼저 접수부터 할까요?”
“두통은 몇 년 되었어요. 대학교 다닐 때부터인데, CT랑 MRI도 몇 번 찍어봤지만 이상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두통이 생기기 전엔 몸이 무거워지면서 소화가 안 돼요. 하도 여러 번 겪다 보니 이젠 그러면 곧 두통이 생기겠구나 하고 알죠. 두통이 심할 땐 속이 울렁거려 토하기도 하구요. 병원에선 편두통이라고 하던데, 편두통은 한쪽만 아픈 거 아닌가요? 저는 머리 전체가 지끈지끈 울리는데, 지금은 편두통이 맞는지도 모르겠어요.”
진료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의사와 앳된 얼굴의 환자, 이은주 씨가 마주앉아 있었다. 말을 하는 건 대부분 환자 쪽이었다. 마주잡은 손 끝에 시선을 고정하고 빠르게 말을 뱉어 내던 그녀가 문득 말을 멈추고 의사를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저만 너무 두서없이 떠들었죠.”
“아뇨. 환자가 자세히 이야기해주면 의사가 진단을 하기도 편해요. 편두통이라고 해서 꼭 한쪽 머리만 아프진 않아요. 증상에 대해 좀더 알려 주겠어요?”
“지끈지끈 하기도 하고, 욱신욱신 하기도 하고. 게보린이나 타이레놀 같은 진통제를 먹으면 좀 낫긴 한데, 심할 땐 그것도 잘 안 듣더라고요. 그럴 땐 그냥 창문 커튼 닫고 이불 뒤집어 쓰고 자요. 푹 자고 나면 좀 나아지거든요.”
“두통이 어떤 때 더 심해지나요?”
“학교 다닐 땐 생리할 때가 되면 두통이 더 심해졌어요. 생리통에다 두통까지 겹치면 상태가 최악이었죠. 지금은 생리할 때보다는 잠을 못 자거나 신경을 많이 쓸 때 심해지는 것 같아요. 예전엔 몇 달에 한 번 정도였는데 최근엔 일주일에 한두 번은 아파요. 두통이 너무 자주 생기니 걱정이 되기도 하네요.”
“편두통을 일으키는 상황을 피하는 게 좋은데, 스트레스를 다 피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겠죠. 수면 패턴이 바뀌는 것도 두통을 일으킬 수 있으니 잠은 푹 자는 게 좋아요.”
말을 잇는 대신 이은주 씨는 진료실 창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어둠이 내린 거리엔 전신주와 얼기설기 얽힌 전선들 사이로 드문드문 불이 켜진 건물들이 보였다. 고시텔, 생맥주집, 미용실, 휴대폰 대리점, 생오겹살집과 구두 가게 간판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예전엔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간판으로 가득한 거리가 촌스럽다 생각했다. 눈이 아플만큼 선명한 굵은 원색 글씨와 보색 대비로 가득한 간판은 하나같이 못나 보였다. 거리를 메운 간판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건 편의점에서 야간 근무를 하면서부터였다. 출근길 거리의 익숙한 간판 불빛을 보면 마음이 놓였다. 때로 그 간판들이 저마다 아등바등 하루하루를 살아내려 애쓰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래서 낯익은 간판이 사라지면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죄송한데요. 제가 사는 곳이 반지하 원룸이에요. 월세가 싸거든요. 주변에 소음이 많아서 잠을 푹 자기 어려워요. 불안하기도 하고. 이사 온지 얼마 안되어서 설거지를 하는데 창문 밖에서 허리를 굽히고 있던 아저씨랑 눈이 마주친 거예요. 그 뒤론 창문을 거의 열지 않고 잠궈 두는데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요.”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창 밖에 있었다. 건너편 건물들 너머 멀리 재작년에 신축한 고층 아파트 단지의 실루엣이 보였다. 거리의 무질서한 풍경 뒤로 높고 반듯하게 늘어선 아파트들이 중세의 고성처럼 우아하고 위풍당당한 느낌을 주었다. 가지런히 배열된 아파트 창문은 바로 건너편 건물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보다 더 밝고 선명하게 반짝였다. 의사는 그녀가 시선을 내리며 짧은 한숨을 내뱉는 걸 알아챘다.
“창밖을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예전에 살던 고시원보단 훨씬 낫죠. 그땐 옆방 말소리가 다 들려서 혼자 사는데도 혼자 사는 것 같지가 않았어요. 수면 패턴 말씀하셨는데, 생각해보니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하면서 더 심해진 것 같아요. 일을 할 때는 낮밤이 바뀌니까요.”
“두통엔 좋지 않은 환경인데. 다른 일을 할 수는 없나요?”
“예전에는 마트에서 일했어요. 계산대에서 손님들 컴플레인을 하도 많이 받다 보니 죄송하다는 말이 버릇처럼 입에 붙어버렸지 뭐예요. 거기보단 편의점이 훨씬 나아요. 야간 근무는 따로 수당도 받을 수 있고, 폐기도 많이 먹을 수 있고요.”
의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그녀가 킥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유통기한이 막 지나 폐기해야 할 음식들요. 식비를 줄일 수 있거든요. 사실 저에겐 새벽 시간에 손님이 뜸해 시간이 좀 난다는 게 가장 좋아요. 공부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녀의 눈에 약간의 생기가 떠올랐다. 가라앉았던 목소리가 다시 밝아져 있었다.
“가끔 오는 두통이면 그때그때 약을 먹으면 되지만, 지금처럼 두통 횟수가 잦을 때는 평소에 두통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해주는 약을 먹는 게 좋아요.”
“두통 예방 약도 있나요? 신기하네요.”
“예방 약을 처방할게요. 효과가 나타나는 데는 시간이 걸리니, 3개월 이상은 꾸준히 먹어야 합니다. 중간에 두통이 생기면 먹을 약도 따로 처방할 겁니다. 타이레놀보다는 나을 거예요.”
이은주 씨가 반딧불의원을 다시 찾은 건 일주일 뒤 늦은 저녁이었다. 마침 대기실엔 기다리는 환자가 없었다. 앞선 환자의 진료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이은주 씨가 접수대를 정리하던 김희정 씨에게 다가갔다.
“진료 받기 전에 간호사님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의아한 표정을 짓는 김희정 씨에게 그녀가 말을 이었다.
“며칠 전에 가게에서 저에게 어디 아프냐고 물어봐 주신 것, 감사했어요. 제게 관심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지금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르실 거예요.”
별 것 아닌 말과 대수롭지 않은 행동도 어떤 순간, 어떤 이에겐 특별한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걸 김희정 씨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의도로 말을 건넨 건 아니었다. 그저 가끔 만나는 그녀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그게 마음을 조금 움직였을 뿐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임용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데, 혼자 살면서 좀 지쳤나 봐요. 작년엔 시험에 떨어졌거든요. 버는 돈은 월세 내기에도 빠듯해서 항상 쫓기듯이 사는 기분이에요. 그동안 모아 놓았던 돈도 계속 줄고 있어서,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불안하고 걱정이 돼요. 사실 혼자 살면서 몸도 좋지 않고 너무 힘들어서 다 그만두고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내려갈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김희정 씨는 어머니, 남동생과 함께 방 세 개짜리 임대 아파트로 이사하던 날을 떠올렸다. 그날의 이사란, 매달 가계부 지출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던 월세를 이제 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다. 스무 평이 조금 넘는 작은 집이었다. 하지만 그 전까지 줄곧 어머니와 같이 방을 쓰던 김희정 씨에게 자신만의 방이 있는 집은 처음이었다. 아파트로 이사한 첫 날 밤, 혼자 침대에 누워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간호사님이 오신 그날, 머리가 너무 아파서 카운터에 엎드려 있었어요. 손님이 들어와서 억지로 일어났는데 술이 잔뜩 취한 아저씨인 거예요. 몸이 힘든데 취한 손님 상대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더 아프더라구요. 근데 그 아저씨가 진통제를 달라고 해 계산을 하더니 저한테 도로 주시는 거예요. 아픈 것 같은데 이거 먹으라고. 그리고 힘 내라고. 아저씨가 나가고 나서 눈물이 쏟아지는데 멈추질 않아서 혼났어요. 그 아저씨는 술김에 하신 행동이고 잊어버리실 수도 있지만, 저한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 것 같아요.”
김희정 씨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항상 갓 지은 밥 냄새가 났다. 밥은 먹었니. 어머니는 매일 같은 질문을 했다. 나이 든 어머니는 오랫동안 가족을 책임져온 딸에게 새로 한 밥을 먹이는 것을 매일매일의 당연한 의무로 생각했다. 이사 오기 전에 살던 반지하 빌라에선 그 냄새가, 어머니의 똑같은 질문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모처럼 일을 쉬는 휴일에 일부러 집을 나와 카페에서 몇 시간씩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가끔은 월세방이라도 얻어서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가족이 함께 있지 않았다면 과연 그동안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삶을 지속하게 해주는 것이 커다란 신념이나 풍족한 물질은 아닐 것이다.
“바닥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느낌이었는데, 조금 더 버텨 보려고요. 의사 선생님이 처방해 주신 두통 예방 약도 열심히 먹고 있어요.”
진료실로 향하던 이은주 씨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참, 복도 간판에 불이 꺼져 있더라고요.”
“내 정신 좀 봐. 종종 까먹는다니까요. 복도가 컴컴해서 간판을 보고 오시는 분들이 많은데. 고마워요.”
김희정 씨가 바깥 복도를 확인하고 스위치를 올렸다. 흰 바탕에 반딧불의원 글씨가 있는, 어두운 복도의 벽에 붙은 작은 돌출 간판이 몇 번 깜빡이다가 환하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
편두통(偏頭痛, migrane)은 긴장성 두통과 더불어 가장 흔한 일차성 두통이다. 편(偏)이라는 한자가 들어간 이름 때문에 한쪽 머리가 아픈 두통을 흔히 편두통이라 부르지만, 의학적 진단명으로서의 편두통은 4-72시간 이내의 지속 시간, 일측성 또는 박동성을 띄는 중등도 강도 이상의 통증, 빛이나 소리로 통증이 심해지는 것 등을 특징으로 하는 두통을 말한다. 구역감이나 구토를 흔히 동반하고 일부 환자는 두통이 생기기 전에 시야의 번쩍임이나 따끔거리는 감각 등 다양한 전조 증상(aura)을 경험할 수도 있다. 자신이 편두통 환자이기도 했던 올리버 색스는 그의 첫 책인‘편두통’에서 마비, 감각 이상, 환각, 감정 변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나는 질병의 특징을 잘 묘사한 바 있다. 다른 원인에 의한 이차적인 두통이 아니고 두통 자체가 질환인 일차성 두통이므로, CT나 MRI 등의 영상 검사로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며 진단은 증상을 종합해 이루어진다. 일반적인 진통제로 가라앉지 않는 심한 편두통의 경우 트립탄(triptan) 제제 등 편두통에 특화된 전문 의약품을 복용한다. 두통의 횟수가 잦은 경우엔 예방 치료가 필요하다. 한국에서 1인 가구의 수는 빠르게 늘고 있다. 2019년 통계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30.2%가 1인 가구에 해당한다. 최근에는 독거 노인에 비해 관심을 덜 받아온 청년 1인 가구의 건강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왔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1인 가구는 흡연, 음주 등 생활 습관이 좋지 않으며 우울감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경제적으로 취약한 1인 가구의 경우 이러한 건강 위험 요인이 실제 건강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주거 빈곤에 처한 청년 1인 가구에 대한 한 연구*에서는 주거 빈곤이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원인으로 불안과 무기력함, 일상을 영위하고 건강을 챙기기 어려움, 의지할 수 있는 관계의 부재,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어려움 등을 꼽았다. * 김지선. 서울시 주거 빈곤 청년 1인 가구의 건강 문제와 대응 전략에 관한 질적 연구: 당사자의 건강 개념을 바탕으로. 석사 학위 논문.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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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원(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교수)
가정의학과 의사입니다. 만성 질환 예방과 건강 증진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환자를 만나고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에세이 <반딧불 의원>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