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스타그램에는 부부싸움 이야기가 없는 걸까? 나만 속이 좁아서 이렇게 힘든 걸까? 남편의 이불 뒤척이는 소리가 싫은 건 나뿐일까? 데이트가 피곤해 결혼했더니, 결혼이 더 피곤할 줄이야. 분명 행복한데, 자꾸만 서럽다. 가슴이 답답해 거액의 심장 초음파 검사까지 받았지만 “살쪄서 그렇다”라는 답변만 듣고 온 어느 날.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아 깜빡이는 커서에 살풀이하듯 마음을 담아냈다. 택배 박스 뜯다가 가출하고, 바지락 된장찌개 때문에 폭풍 오열한 날들. 너무나 사소해 어디 가서 말도 못 했던 이야기들. 12평 아파트에서 열심히도 지지고 볶은 순간들…. 그런 순간을 담아낸 에세이 『데이트가 피곤해 결혼했더니』가 출간됐다.
결혼 앞에서는 행복도 슬픔도 분노도 즐거움도 모두 곱절이 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이 만만치 않은 신혼생활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일지도 모른다. 신혼인, 예비 신혼인, 신혼 졸업자는 물론, 데이트가 지겨워진 커플, 결혼을 망설이는 사람들, 혹은 결혼에 뜻은 없지만 모호한 관계 속에서 외로워하는 이들 모두에게 담백한 위로가 되어줄 에세이다.
첫 책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독자 여러분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10년 가까이 영화 담당 기자로 일하며 보고, 듣고, 쓰고 지내다가 최근에는 프리랜서로 이런저런 글들을 만지작거리며 지내고 있습니다. 늘 인터뷰어 역할만 하다가 인터뷰이가 되니까 정말 어색하네요. (웃음)
책을 쓰시게 된 계기가 인상적입니다. “뭐라도 쓰지 않으면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갈 것 같다”라고 하셨는데요. 결혼 후 생긴 두근거림 때문에 심장 초음파까지 받으셨다고요.
책에 쓴 그대로예요. 분명 행복한데 왠지 모르게 자꾸만 속이 쓰리고, 남편이 사랑스럽다가도 불현듯 세상 그 누구보다 미워졌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감정 때문인지 가슴 답답증이 심해져서 유명하다는 심장 내과를 찾아가 정밀 검진을 받았을 정도예요. 신혼 초를 떠올리면 답답했던 기억이 가장 커요. 잠들기 전 친정집이 그리워 남편 몰래 울기도 많이 울었고요. 정리되지 않은 엉킨 감정을 글로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쓰면서도 제 안에 이렇게나 많은 마음이 있는지 몰랐어요. 글을 쓰기 전엔 생각도 못 했던 키워드들이 쏟아졌죠. 그제야 알았어요. 아, 내가 이것 때문에 힘들었구나. 아, 우리가 이런 것 때문에 싸웠던 거구나. 신기하게도 책 한 권을 다 쓰고 나니 가슴 답답증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어요.
데이트 비용부터 청첩장 돌리기, 친정엄마를 향한 복잡한 마음, 시가에서의 미묘한 명절 분위기 등 솔직한 에피소드들이 눈에 띄었어요. “극적인 사건이 아닌 사소한 불평등에 당황스러웠다”라는 대목은 결혼하신 분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만한 문장이 아닐까 싶은데요.
솔직한 글이 꼭 좋은 글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같은 맥락으로 모든 글이 꼭 솔직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때로는 구체성을 지닌 글들이 위안을 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뜬구름 잡거나 에둘러 말하는 것이 아닌, 작가 본인의 생생한 언어와 인생이 그 자체로 마음에 닿을 때가 있다고 봐요. 『데이트가 피곤해 결혼했더니』는 꼭 그렇게 쓰고 싶었어요. ‘아니 그래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다는 거야?’, ‘대체 남편의 뭐 때문에 서운했다는 거야?’라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 글이요. 결혼하고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주변에서 들어본 적 없는 사소한 불평등, 사소한 다툼, 사소한 외로움이었어요. 진짜 나만 이런 건가 싶어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다들 한 번씩은 겪은 일이더라고요.
독자들이 제가 쓴 모든 문장에 공감하진 않더라도, 그들 마음에 정확히 가닿는 글을 쓰고 싶었어요. 정문정 작가님이 인터뷰에서 “에세이는 작가의 인생을 팔아 쓰는 직업”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에 많이 공감했어요. 저의 개별적인 경험으로 써 내려간 이 책이 누군가에게 ‘이런 일도 있구나’,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하고 잠시나마 한숨 돌릴 수 있게 했다면 어느 정도 목표는 이루었다고 봐요.
그중에는 털어놓기 힘든 것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쓰시면서 원칙 같은 것이 있었을까요.
솔직하게 쓰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저만의 일이었다면 어렵지 않았을 텐데 가족, 남편, 시가에 관해서도 써야 하는 글이기에 여러 번 머리를 쥐어뜯으며 썼어요. (웃음) 원칙이 있었다면, ‘누구 흉보는 글을 쓰지는 말자’였어요. 제가 책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남편이나 시가가 누군가에게 평가받게 되는 건 싫었어요. 책에도 썼지만 다른 사람에게 남편 검증, 시가 검증을 받을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펜을 쥔 저로서는 빠져나갈 구멍이 있잖아요. 독자와 일대일로 소통하는 것은 저이니까요. 독자들이 이해한다면 아무래도 저를 이해하기 쉽겠죠. 최대한 솔직하게 쓰려 노력했지만 아주 조금의 양보를 해서 써야 한다면 제가 양보하는 쪽을 택했어요. 그렇다고 없는 것을 있다고 쓰거나 각색을 해서 쓴 것은 아니지만, 단어 하나, 조사 하나라도 신중히 쓰려고 노력했어요.
배우 고아성과 홍지영 감독이 추천사를 써주셨어요. 두 분과는 어떤 인연이 있으신가요.
두 분 모두 이 책에 많은 영향을 끼친 분들이에요. 먼저, 고아성 배우는 몇 년 전 인터뷰에서 매일 일기를 쓴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이상하게도 마음에 많이 남았어요. 하루에도 몇 개씩 기사 마감을 하지만, 이 글이 온전한 내 글이라 할 수 있는 건가. 하루하루를 그저 흘려보내고 있는 건 아닌가. 책을 쓰는 것이 어릴 적부터 막연한 꿈이었지만, 구체화된 것은 그날의 인터뷰 이후였던 것 같아요. 고아성 배우의 그때 그 말이 없었더라면 아마 이 책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차분하고 똑똑한 배우인데, 추천사도 멋지게 써줘서 감탄했어요. 홍지영 감독님은 제가 인터뷰를 빙자한 연애 상담을 했던 분이에요. (웃음) 감독님의 영화들이 저의 인생 기점마다 꽤 중요한 해답이나 위안을 주곤 했는데, 감독님과의 인터뷰도 늘 그랬어요. 조곤조곤하고 단단한 언니에게 고민 상담하는 느낌이었달까요. 책에 감독님의 영화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그날은 남편과 저의 연애사에서 하이라이트와 같은 순간이었어요. 두 분께 책이 나오면 꼭 선물로 드리고 싶었는데, 추천사까지 써주셔서 신인 작가로서 정말 감사했죠. 추천사 받고 울었던 기억이 나요.
『데이트가 피곤해 결혼했더니』를 어떤 독자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모든 분들? (웃음) 아무래도 신혼부부거나 결혼을 앞두신 분들, 신혼을 막 지나오신 분들은 무릎을 치며 공감하실 부분이 많을 거예요. 하지만 결혼을 고민 중이신 분들, 비혼이신 분들에게도 꼭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저는 주변에 책 소개를 할 때 “신혼을 소재로 썼지만 어찌할 바 몰랐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해요. 정말 그런 마음으로 썼거든요. 데이트가 너무 피곤해 괴로웠던 일상, 대화가 안 통하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해도 괜찮은 건지 고민스러웠던 순간, 결혼이라는 걸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도무지 몰랐던 20대. 그리고, 어린 시절의 경험이 결혼 생활에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들이닥칠 땐 어찌해야 하는 건지. 어찌할 바 몰랐던 시간에 대해 차분히 써 내려간 책이에요. 독자 여러분들의 상황과 시기에 따라 각각 다른 문장들에 공감하실 거로 생각해요.
작가로서의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요.
다음 책의 초고를 끝냈고요, 가을께 나올 예정이에요. 『데이트가 피곤해 결혼했더니』만큼이나 솔직한 책이 될 것 같아요. 유부녀가 이런 글을 써도 되나? 하는 꼭지들도 있었고요. (웃음) 그다음 책도 계속해서 쓰고 싶어요. 음악 에세이, 결혼한 여성으로서의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고민 중이에요.
*김수정 10년 가까이 영화 담당 기자로 글을 쓰다가 지금은 프리랜서 예능 홍보인, 칼럼니스트로 고군분투 중이다. 유희열과 공유를 좋아하는 만큼 남편의 얇은 입매와 통통한 팔뚝을 사랑한다. 결혼을 통해 마음의 키가 1mm 정도 컸다고 자기최면을 걸며 오늘도 예측 불가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다. 인스타그램 @tellmebouli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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