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함께 산다. 그게 내 정체성이 된 지는 1년 반 정도다. 이름은 초배. 배우자와 6년 가까이 살다가 나와도 함께하게 되었다. 초배라는 이름의 뜻은 이곳에서 밝히기 어렵다. 나름의 복잡한 사연이 있고, 그 사연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호기심을 숨기지 못하고 다가오는 이들에게만 슬쩍 얘기해 준다. 초배의 사연을 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벅차곤 한다.
초배는 사회성이 없다. 길에서 다른 사람을 보면 거세게 짖고 달려든다. 다른 개를 만났다가는 동네에 난리가 난다. 줄을 힘주어 잡아도 초배를 컨트롤하기는 어렵다. 그 작은 체구를 끌고 필사적으로 달려 나가려 한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어야 할 산책은 거의 늘 곤혹스럽고 마음 한 구석에 씁쓸한 고민을 남긴다. 낭만적으로 간직하고 있던, 개와의 여유로운 산책이라는 환상은 부서진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일명 ‘세나개’를 즐겨 보던 때가 있었다. 그 프로그램에는 사람에게 골칫덩어리가 되어버린 개들이 나온다. 초배와 비교하면 훨씬 더 사람을 힘들게 하는 개들이다. 하지만 강아지 강 선생이 등장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거나 적어도 언젠가는 해결될 것처럼 보인다. 나도 프로그램을 보며 개와 함께하는 삶을 꿈꾸었다. 몰상식한 견주들을 흉보고, 문제를 멋지게 해결하는 상상을 하면서 달콤한 개와의 동거를 미래에 그려보았다.
초배와의 첫 만남을 잊지 못한다. 배우자의 집에 처음 갔을 때, 좋아하는 사람의 집에 방문한다는 설렘과 개를 만난다는 설렘이 합쳐져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초배는 자신의 집에 찾아오는 손님에 대해서만은 혼이 빠질 정도로 반겨준다. 연인과 개와 함께하는 시간은 말 그대로 행복했다.
하지만 산책을 나가보고서 나는 당혹감과 실망감을 숨기지 못했다. 초배는 줄로 나를 끌고 다른 사람과 개와 고양이를 연신 놀래고 다녔다. 용감함을 뽐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작은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겁을 먹은 건지 흥분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길을 걸으며 죄송하다는 말과 피하는 몸짓을 계속 내보여야 했다.
초배를 교정하려고 여러 시도를 해보았다. 세나개를 유튜브로 다시 보며 강아지 강 선생이 즐겨쓰는 전략을 펼쳤다. 간식으로 행동 유도하기. 하지만 아무리 많은 간식을 쏟아내도 그때만 잠깐이고 초배는 살이 쪘다. 재능 교류 플랫폼을 통해 훈련사를 붙여 보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마틱한 변화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훈련사는 이런 개 많이 봐서 잘 안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역시 같은 전략을 펼쳤다. 그저 간식 또 간식. 역시 별 변화는 없었고, 꾸준히 훈련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마음먹은 대로 쉽게 되는 것은 없다. 다른 존재는 특히 그렇다. 손쉬운 해결을 바라는 태도가 문제 아닐까? 아니, 애초에 인간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동물의 행동을 문제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닐까?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는 말이다.
초배와 모든 것을 함께한다. 집에서는 별 탈 없이 일상을 보내고, 산책을 나갈 때는 줄을 단단히 쥐거나 다른 사람과 동물을 최대한 피해 다닌다. 종종 아무도 없는 빌라 옥상에 올라가 공 찾기 놀이를 한다. 같이 여행도 다닌다. 지난 가을에는 의젓하게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다녀왔다. 며칠 전에는 차를 왕복 12시간 타고 강릉 바다를 보고 왔다. 물론 초배는 바다를 무서워했고 큰 소리로 몇 번 짖었다. 그래도 특별히 위험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최대한 조심조심하며 시간을 보냈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란 책이 있다. 읽지 않았고 제목의 의미만 흘려들었다. 사랑이 정확할 수 있을까? 정확함을 목표로 하는 것은 온당한가? 초배를 정확하게 사랑할 수는 없다. 그가 내는 소리와 몸짓의 의미를, 거기에 담긴 마음을 나는 기어코 알 수 없다. 그저 최대한 바라보고 귀 기울이고 맞춰가려 한다. 내 속을 시끄럽게 하는 ‘문제’들에 적응하고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게 지혜를 찾고자 한다. 안다고, 이해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걸 목표로 삼지도 않을 것이다. 모름의 상태를 애써 유지하고 싶다. 모든 동물, 모든 타자와의 관계가 그러하지 않을까? 정확이란 가치를 좇지 않는 사랑, 감히 간파하려고 하지 않는 사랑이다. 그것을 계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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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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