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의 곡 「작은 연못」(김민기 작사ㆍ작곡, 양희은 2집 앨범 「양희은 고운 노래 모음 제2집」 수록)은 1972년 발표된 이래 교과서에 수록되고 지속해서 리메이크되는 등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40여 년간 우리 대중음악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작은 연못」의 문학적인 노랫말이 그림책으로 만들어져 독자들과 새롭게 만난다. 『위를 봐요!』 『벽』 등의 작품을 펴내며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 상을 두 차례 수상한 작가 정진호가 그림책 『작은 연못』의 그림을 맡았다. 70년대 시대 상황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해석되어 온 곡의 노랫말에 작가 정진호가 시각적 은유를 더해 오늘날의 어른과 어린이 모두에게 자유와 평화의 의미를 일깨운다.
신작 『작은 연못』의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작은 연못」은 70년대의 광장을 물들인 대표적인 우리 민중가요로 오랫동안 거리에서, 학교에서 불려 온 곡인데요. 40여 년간 자유와 평화, 반전의 상징으로 불려 온 곡의 노랫말을 재해석하는 작업에 부담이 있지는 않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작은 연못」이라는 곡을 잘 몰랐습니다. 이번 책 작업을 계기로 곡을 직접 찾아 들었는데 처음 듣는 곡인데도 멜로디가 친숙하더라고요. 오래 불려 온 노래인 만큼 제가 모르는 사이에 접했던 적이 있던 거겠지요. 곡에 대한 이해를 위해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많은 조사를 했습니다. 여러 뮤지션분들이 리메이크한 버전들을 듣고, 「작은 연못」의 팬분들이 남긴 해석을 찾아 읽어 보기도 했습니다. 조사를 하면서 노래가 탄생한 시대의 슬픔과 울분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지만 직접 겪지 않은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려니 굉장히 조심스러웠습니다. 작업이 쉽게 풀리지 않던 중에 노래를 듣고 노랫말 읽기를 되풀이하고 있는데, 문득 여러 방향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은 노랫말임에도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가 노래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생각에 이르러서야 당대의 시대 상황에서 생각의 범위를 넓혀 지금의 해석에 도달하게 되었죠. 곡이 태어나 불린 시기와 제가 태어나 자란 시기에 거리가 있지만, 오히려 그 거리감 덕분에 한 발 떨어져서 이 곡을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연못』은 꼬리의 꼬리를 무는 반전, 숨은 상징을 찾고 그 상징을 퍼즐 맞추듯이 대조하는 재미가 매력적인 그림책입니다. 이러한 연출이 이야기에 긴장을 더하는 동시에 지금 시대가 직면한 문제를 효과적으로 짚어 냈다는 느낌을 줍니다. 어떻게 지금과 같은 이야기를 구상하셨나요?
노래가 만들어진 시대의 과제가 아닌 우리가 오늘날 당면한 과제가 무엇인지를 고민했습니다. 자연스럽게 훼손된 생태계가 떠올랐고, 그 생각은 스스로를 죽이는 일인지도 모르고 서로 싸우는 「작은 연못」 속 붕어 두 마리와 자연을 오염시키는 인류가 닮았다는 발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노랫말 속 무대인 깊은 숲속의 연못을 지금 우리의 생활 현장으로 데려올 필요가 있었습니다. 독자분들이 이 이야기를 바로 우리 근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로 느끼시도록요. 그렇게 기본적인 해석의 뼈대가 섰습니다. 그림은 그 위에서 자연스럽게 풀려 갔습니다. 작은 연못은 대형 할인 마트의 수조가, 깊은 산은 첩첩의 건물이, 오솔길은 에스컬레이터가 되었습니다. 저는 좋은 그림책이란 진지한 태도로 책을 바라보는 분들께 조금씩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놓는 책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차분히 읽어 가는 독자분들께 발견의 즐거움을 선물처럼 내어 드리고 싶어서 반전과 숨은 상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썩어 가는 바다, 흐려져 가는 하늘을 보며” “지구가 유일한 연못임을” 생각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연못”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보시나요?
‘기후 변화’라는 말이 나온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그 말이 어느새 ‘기후 위기’로 바뀌어 있습니다. 몇몇 전문가분들은 이 위기를 되돌리기에 이미 늦었다는 대답을 내어놓으실 정도로 지금의 지구는 심각한 상태에 이르러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환경 문제를 나와는 먼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대기, 수질, 기후 등을 통해 생태계의 위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데도요. 제가 환경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놓을 수는 없습니다만 현재의 위기를 우리 자신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는 우리가 스스로 만들었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는 의식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번 작품에서 작가님이 가장 신경 쓰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작품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작은 연못」의 노랫말만큼이나 은유적인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책은 크게 작은 연못 속 붕어의 모습을 그린 전반부와 연못의 정체가 대형 할인 마트의 수조임이 밝혀진 이후를 그린 후반부로 나뉩니다. 후반부 그림에는 의도적으로 전반부의 구성 요소를 재활용했습니다. 이런 방식을 대표적으로 사용한 장면이 바로 자동차들이 노란 대교를 건너는 장면입니다. 대교를 이루는 노란 선의 교차 무늬는 수조 속 붕어를 건져 올린 노란 뜰채의 무늬와 비슷하게 연출한 것입니다. 뜰채로 붕어를 건지는 우리들은 인류가 자연을 소유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자연 안에서는 우리들도 노란 뜰채에 담긴 물고기나 다름없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모든 장면이 무채색과 네 가지 색(빨강, 파랑, 노랑, 초록)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작가님의 데뷔작인 『위를 봐요!』부터 지금까지의 작품들을 두루 살펴보면 공통으로 색조가 제한되어 있는데요. 최소한의 팔레트로 화면을 구성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색을 제한적으로 쓰는 이유는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색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위를 봐요!』의 경우, 주인공인 수지의 심경 변화를 표현하기 위해 마지막에만 색을 사용했습니다. 『작은 연못』도 이와 마찬가지로 사용된 모든 색에 의미와 상징을 담았습니다. 붉은색은 생명과 사랑의 이미지와 함께 등장하고, 푸른색은 생명의 터전을 상징해요. 노란색은 자연을 가두고 제한하는 요소와, 무채색은 환경을 오염시키는 요소와 함께 등장합니다. 이처럼 몇몇 색에 의미를 덧입혀 독자분들이 이야기를 해석해 나가는 재미를 느끼시기를 바랐습니다.
계획 중인 다음 작품이나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그림책은 한 편의 시로 비유될 만큼 한 장면, 글 한 줄, 단어 하나까지 신중히 고르고 골라 만드는 작업입니다. 그림책이 가지는 섬세함의 미학을 좋아하기에 그림책 작업을 꾸준히 해 왔는데요. 지금은 조금 다른 방식의 작업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그래픽노블처럼 장면을 잘게 쪼개어 여러 소컷이 나열되는 방식으로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아마 그래픽노블과 그림책의 중간에 있는 결과물이 나올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약력을 보면 어린 시절에 접한 이야기가 작가님께 큰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보내야만 했던 작가님의 유년을 위로해 준 이야기는 어떤 작품이었을지 궁금합니다.
병원에서 주로 읽었던 그림책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그림책으로 만든 시리즈였습니다. 병원에 비치되어 있던 책이라 다른 선택지가 없었죠. 그 속에서도 숨은 의미를 찾는 그림책의 재미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조금 더 커서는 로알드 달 작가의 작품들에 빠졌고, 청소년 시기에는 발터 뫼어스 작가의 책을 즐겨 읽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를 위로해 준 이야기는 대서사시나 장대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일상에 작은 비일상을 더한 판타지였던 것 같아요. 일상 속의 작은 판타지는 나도 겪을 법한 일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설레게 하고, 책을 덮은 뒤에 이어지는 현실을 새롭게 보게 해 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 정진호 종일 병원에서 보낸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벗 삼아 자랐다. 이야기가 담긴 집을 꿈꾸며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지금은 책 속에 집을 짓고 있다. 쓰고 그린 책으로 『위를 봐요!』 『벽』 『별과 나』 『3초 다이빙』 『나랑 놀자!』가, 그린 책으로 『노란 장화』 『투명 나무』 『루루 사냥꾼』 등이 있다. 2015년, 2018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 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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