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가 아니라 차라리 ‘노가다꾼’이라고 불러 달라는 한 청년이 있다. 그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한답시고 노가다 판에 호기롭게 뛰어들었다. 어느 새벽, 조심스레 인력사무소의 문을 두드린 그는 앞으로 맞닥뜨릴 새로운 세계를 직감했을까? ‘인생의 막장’이라고만 여겼을 뿐, 자신의 업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세계에서 그는 뜻밖의 경험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괴롭히던 고통을 조금씩 극복할 수 있었다. 피부를 타고 흐르는 땀은 무엇보다 정직하니까. 여기 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공사장 잡부로 일하다가 어엿한 목수가 되기까지, 한 청년이 현장에서 겪은 일들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중력을 이겨내고 압력과 싸우는 나날을 ‘청년’ 특유의 발칙함과 ‘목수’ 특유의 꼼꼼함으로 엮었다. 삶이 조금이라도 지루하다거나, 무언가 막힌 듯 가슴이 답답하다면, 현장을 생생하고 발랄하게 기록한 청년 목수의 이 책이 ‘바라시’(해체)해줄 것이다.
『노가다 칸타빌레』를 집필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기자였어요. 프리랜서 글쟁이이자 콘텐츠 기획자였던 시절도 있고요. 흔히 말하는 ‘먹물’이었죠. 책상에 앉아 서류 훑어보고, 교양인인 척하는 그런 사람, 알죠? 어울리는 사람도 대부분 비슷비슷한 사람이었고요.
그러다 ‘노가다 판’에 왔는데요. 세상에나! 가래침 턱턱 뱉고, 아무 데서나 담배 뻐끔뻐끔 피우고, 쌍욕과 드잡이가 아주 일상이더라고요. 정말이지 모든 게 신기하고 낯선 경험이었어요. 이런 이야기를 글로 옮기면 재밌겠다 싶었죠.
‘노가다꾼’에 대한 편견을 깨부수겠다, 뭐 이런 대단한 사명감보다는 글쟁이로서의 본능과 약간의 기자정신(?)이 남아있었던 거죠. 거기에 이런 생각도 좀 있었어요. ‘노가다꾼’ 가운데 과연 글쟁이가 있을까? 어쩌면 내가 최초일지도 모르겠는데? 그럼 좀 희소성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쓰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니 가볍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각 잡고 읽으라고 쓴 책, 결코 아니랍니다. 화장실에서, 출퇴근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애인 기다리며 잠깐잠깐 읽기 딱 좋으실 거예요.
건설노동 가운데 형틀목수 작업이 가장 어렵다고 하는데, 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노가다 판’에서는 형틀목수를 탑 오브 더 탑으로 여겨요. 항상 무거운 걸 날라야 하고, 위험하고, 기술 배우기도 어렵거든요. 일당도 상대적으로 높지 않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따분한 걸 못 참는 성격이어서요. 어릴 때부터 항상 들어온 잔소리가 “넌 어떻게 된 놈이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냐?”였어요. 그런 저에게 형틀목수라는 직업은 너무나 매력적으로 보였어요.
잡부 시절, 형틀목수가 일하는 걸 종종 지켜봤어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무언가를 분주하게 들고 나르고, 서로 소리를 지르는 모습들. 나도 저기에 섞여 같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죠. 재밌을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가 형틀목수 ‘오야지’에게 스카우트 제안을 받은 거예요. 마다하지 않고 덥석 그 손을 잡았죠!!
형틀목수로 정한 선택에는 후회가 없나요?
같이 일했던 형님 가운데 40년 가까이 형틀목수 일만 하신 형님이 있어요. 진짜 베테랑 목수죠. 그 형님이 언젠가 농담 반으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40년을 했는데도 적성에 안 맞는다고요. 너도 더 늦기 전에 빨리 다른 일 알아보라고요. 자신도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다른 일 알아볼까 한다고요.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형틀목수 일이라는 게 그래요. 솔직히 말해, 진짜 힘들어요. 이제 좀 적응할 법도 한데, 아침에 일어나면 어김없이 삭신이 쑤셔요. 뿌리는 파스가 일상이에요. 아주 가끔 ‘무슨 부귀영화를 누르겠다고 이러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렇지만, 정말 재밌어요. 아침마다 손목은 ‘욱신욱신’ 하지만, 그런 한편으로 심장도 ‘두근두근’ 해요. 오늘은 또 얼마나 재미난 일이 벌어질까 기대하는 거죠. 그리고, 후회했으면 벌써 그만뒀을 거예요.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기에도 모자란 인생, 하기 싫은 일까지 하면서 살지는 말자는 주의거든요.
구인구직 광고도 딱히 없는 건설노동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가 추천해 드리고 싶은 방법은 인력사무소에 나가는 거예요. 새벽 5시 30분까지 인력소로 나가시면 됩니다. 가실 때 주민등록증과 안전화 꼭 챙기세요. 그렇게 잡부로 한동안 일 해보세요. 말하자면 인턴 과정을 한 번 거쳐보는 거죠. ‘노가다’ 일이 과연 나랑 맞는지, 내가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자신에게 물어보는 시간이에요.
인력사무소를 추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여러 공정을 두루두루 둘러보고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노가다’ 일도 천차만별이거든요. 평생 잡부할 거 아니면 결국 기술을 배워야 하는데, 어떤 기술이 나에게 어울릴지 이 현장 저 현장 다니면서 고민해보세요.
이때 한 가지 염두에 둘 점은 ‘열심히’ 해야 한다는 점일 것 같아요. ‘노가다 판’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회를 형성하는 곳이라, 열심히 하다 보면 자연스레 기회가 찾아와요.
저도 딱 그 코스를 밟았어요. 인력사무소에서 잡부로 일하다가 하청 직영 잡부가 됐고, 거기서 열심히 하다 보니 형틀목수 ‘오야지’ 눈에 들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죠.
도저히 인력사무소 나갈 용기가 안 난다고 하시면 주변에서 찾아보세요. 친구의 아빠, 아빠의 친구, 사돈의 팔촌, 팔촌의 사돈, 친구의 선배, 선배의 친구 가운데 분명 한두 명쯤은 ‘노가다꾼’이 있을 거예요. 아니면 원청이나 하청 직원이라도 한 명쯤은 분명 있을 거예요.
참고로, ‘노가다 판’에서는 사람 들고나는 일이 아주 빈번해요. 일용직 노동자이기 때문이에요. 아주 쉽게 팀을 옮기고, 아주 흔하게 현장을 옮기죠.
바꿔 말하면 한 자리 만드는 게 우습다는 거예요. 형틀목수팀에 15명 있으나, 16명 있으나 큰 차이 안 나거든요. 그러니 주변을 수소문해서 ‘노가다꾼’을 찾은 뒤, 기술 배우고 싶다고 말씀해보세요. 나이가 좀 젊다면 모셔 갈 지도 몰라요! ‘노가다 판’에서 젊은 사람은 아주 귀한 인력이거든요. 하하하.
건설노동자의 자격 조건이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몸 쓰는 직업이라, 자격 조건이 까다롭진 않아요. 딱 하나, 자격증이 필요하긴 해요. ‘건설업 기초안전보건교육 이수증’이라는 건데요. 건설 현장에서 일하려면 예외 없이 취득해야 해요. 근데,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시험 같은 게 없거든요. 전문교육기관에서 4시간만 교육받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이수증 발급해줘요.
자격증이 필요한 공정도 있긴 해요. 토목 공사에서는 굴삭기, 지게차, 크레인, 덤프트럭 등 주로 중장비를 활용하는데요. 그쪽에서 일해볼 생각이면 관련 자격증이 필수예요.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건강한 몸과 적극적인 마음가짐만 있으면 된답니다. 간혹, 사설 학원에서 형틀이나 철근 등에 관해 이론 수업과 실습 과정을 거쳐 오시는 분도 있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큰 도움 안 됩니다! 현장에서도(대체로 옛날 사고를 하는 분들이 많다 보니) 그런 걸 별로 인정해주지 않아요. 기술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익히는 게 가장 빠르더라고요. 제가 ‘노가다 판’ 와서 느낀 점이에요.
다만, 각오는 하셔야 해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힘들 거예요. 처음 한두 달은 끙끙 앓다가 잠들 수도 있다는 거!
본인을 '글 쓰는 노가다꾼'으로 규정하셨는데,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면서 건설노동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실 계획인가요?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이런 말을 했다죠.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 저도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서요. 예술의 전당 같은 데 가서 공연 보고 리뷰 기사 쓰던 문화예술 잡지 기자 시절, 제가 ‘노가다꾼’이 되고, 심지어 『노가다 칸타빌레』라는 책까지 내게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어요.(웃음)
여전히 철부지라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고 싶어요. 그러니 언제까지 ‘글 쓰는 노가다꾼’으로 살게 될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한 가지는 분명 말씀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어떤 직업을 갖든 책 읽고, 글 쓰는 일은 계속할 거예요.
물론, 목수 일도 여전히 재밌어요.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많고요. 아마 한동안은 지금처럼 ‘글 쓰는 노가다꾼’으로 살지 않을까 싶어요. 이왕 망치 잡은 거, 끝은 봐야죠. 하하.
다음 책 계획이 있나요?
‘노가다 판’을 3년쯤 겪어 보니, 여기도 별반 다르지 않더라고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아저씨’들의 평범한 밥벌이 현장인 거죠. 그러니 당연한 얘기지만 이곳에도 보편타당한 진리 같은 게 있어요.
이를테면 저는 왼손잡이 목수인데요. 왼손잡이 목수로서 약간의 부당함과 많은 불편을 겪다 보니, 자연스레 사회적 약자들을 생각하게 됐어요. 태생적으로 갖게 된 어떤 차이 때문에 겪어야 하는 수많은 차별에 관해서 말이죠.
또, ‘노가다 판’의 대다수가 아버지, 혹은 삼촌뻘이거든요.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소위 말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살아온 시절을 알 수 있었고, 비로소 우리 아빠의 삶을 이해하게 됐어요.
그런가 하면 ‘노가다 용어’ 가운데 ‘오사마리’라는 말이 있어요. 수습, 안정이라는 뜻의 일본어 おさまり[오싸마리]에서 파생한 말이에요. 현장에서는 ‘마무리 짓다’ 정도의 의미로 써요. 작업반장이 지시할 때 “여기 확실하게 오사마리 짓고 나오세요. OO 씨 믿고, 저는 이 작업장에서 손 텁니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죠. 저는 ‘오사마리’라는 낱말을 통해 책임지는 삶에 관해 고민하게 됐어요.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요즘은 그런 이야기를 수집하고, 글로 옮기고 있어요. 다음 책을 또 낼 수 있다면 그런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 해요. ‘노가다 판’에서 만난 보편타당한 이야기요. 『노가다 칸타빌레』를 엮어주신 시대의창 출판사에서 또 기회를 주면 얼마나 좋을까요?(협박, 맞습니다.^^)
*송주홍 글 쓰는 노가다꾼. 낮에는 집을 짓고, 밤에는 글을 짓는다. 책을 읽으며 힘든 시간을 견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글로 세상을 위로하고 싶었다. 글쟁이로 살게 된 이유다. 대전과 서울에서 기자로 일했다. 그 뒤로도 출판과 홍보 관련 일을 하며 살았다. 서른둘, 모든 걸 정리하고 노가다 판에 왔다. 머리나 식힐 요량이었던 노가다 판에서 삶을 배우는 중이다. 함께 쓴 책으로 『우리가 아는 시간의 풍경』(2016)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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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최
2022.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