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숙 “『소년을 읽다』, 작가의 말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하셨대요”
눈물을 줄줄 흘린 적이 있어요. 제가 소년원에서 수업할 당시 소년원에 근무하시던 선생님이 이 책을 읽으셨더라고요. 책을 읽고 감상을 남겨주셨는데, 그 아이들을 이렇게 기억하셨어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1.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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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공간은 쓰임새와 목적에 맞게 설계된다. 하지만 어떤 공간은 분명 존재하는데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도 한다. 물론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도. 소년원도 마찬가지 아닐까? 막연하게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이 갇혀 있는 곳이라고 여겼던 공간이 실제 어떤 곳이고 그곳에서 어떤 소년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알게 해주는 책이 나왔다. 바로 서현숙 작가의 『소년을 읽다』이다.

“철컹철컹, 무거운 철창을 대여섯 번 통과해서 교실에 도착했다. 교실이라고는 하지만, 학교 교실의 절반도 안 되는 크기이다. 4인용 좌식 테이블 서너 개, 소년원 직원용 책상, 스탠딩 형의 냉난방기, 주말 종교 집회를 위한 종교 기물들이 전부다. 미적인 것을 고려한 공간은 없다.”

건물의 구조나 생김새는 학교와 완벽하게 같지만 무거운 철창을 대여섯 번 통과해야 도착하는 교실엔 소년원 특유의 냉기가 흐른다. 이곳에서 저자는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씩 많게는 일곱 명 적게는 한 명의 소년과 일 년 동안 국어수업을 했다. 평범한 국어 교사가 책을 통해 소년들과 함께 나눈 ‘환대’의 경험은 우리에게 낯선 감동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우린 지금까지 그들을 모른 체하려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반성과 함께.



『소년을 읽다』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반응이 뜨거울 줄 예상하셨는지요?

축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이 책을 담담하게 쓴 편이어서 읽는 분들도 담담한 마음으로 읽으려니 했습니다. 세상에 작은 물음표 하나 던지면 된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어요. 의외로 많은 분들이 마음 아파하고 눈물 흘리셨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독자들의 감상을 읽어보고 나서야,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 어른들의 마음이 착하구나. 세상이 소년원에 있는 학생들의 구체적인 얼굴을 몰랐던 거구나. 소년들의 얼굴을 책으로 마주하고 나니 이렇게 마음 아파하는구나. 그러니까 이 책은 아름답거나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몰랐던 얼굴을 보여주는 책인 것이지요. 책 출간 후에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독서교육 사례를 공저로 출간한 적은 있지만(『독서 동아리 100개면 학교가 바뀐다』), 온전한 제 글로 책을 낸 것은 인생 최초의 사건이에요. 계획에도 없던 일이었고요. 책 읽은 분들이 인터넷에 감상 올려주는 것, 언론에서 기사로 다뤄주는 것, 여러 책방에 제 책이 새 책으로 입고되는 것, 이런 것들이 신기했어요. 그래서 3주 동안 인터넷 검색을 참 많이 했답니다.

『소년을 읽다』 표지에는 “다음에는 이런 곳이 아닌 곳에서 만나요”라는 문장이 쓰여 있습니다. 이 문장의 의미는 무엇인지요?

소년원의 학생들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범죄를 저질렀고, 이후 재판을 받고 소년원에 갇혀서 24시간 내내 통제와 지도를 받는 처지에 있습니다. 그래서였겠죠, 제가 만난 소년들은 마음에 날이 선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지난날 저질렀던 잘못을 후회하고, 소년원을 나가면 다시는 들어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앞으로는 제대로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아이들이 더 많았어요. 

작가들이 소년원에 왔을 때, 작가에게 쓰는 편지나 작가와의 만남 후기에 여러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쓴 말이 있었어요. “이런 곳에서 작가님을 뵙게 되어 면목이 없습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한 번은 한 학생이 저에게 건넨 편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선생님, 이런 곳에서 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이런 곳이 아닌 곳에서 만나요.” 

이 말에 담긴 마음을 느꼈어요. 재판 받고 소년원에 갇혀 있는 처지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마음, 떳떳하지 못하게 여기는 마음, 제대로 잘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아는 마음, 이런 곳에 갇혀서 인생을 보내면 안 되겠구나 생각하는 마음.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몰염치하지 않잖아요. 적어도 자기 삶을 바꾸어 나갈 마음의 싹이 있는 것 아닐까요. 

소년원이라는 공간과 소년들에 대해 평소엔 생각해보지 않았을 독자들이 많았을 텐데요, 선생님도 마찬가지였을 거고요, 공간과 소년들에 대한 첫인상을 간단하게 말씀해주시겠어요?

제가 사는 지역에 소년원이 있었지만, 저는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게 된 소년원은 충격이었습니다. 일반적인 학교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았던 까닭이었어요. 구조나 공간 구성이 ‘학교’라고 생각하면 되어요. 기숙사를 갖춘 학교인 셈이지요. 실제로 소년원은 법무부 소속의 특수교육기관이어서, ‘????학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다는 점? 직원이 대여섯 개의 철창을 열어줘야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많이 긴장했었어요. 첫 수업 하러 가기 전날, 꿈을 꿀 정도였습니다. 험상궂은 학생들이 저를 째려보고, 책 읽어보라 했더니 싫다 하고, 제가 책을 펴고 책장을 계속 넘겨도 백지만 나오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어요. 막상 만나보니 학교에서 만날 법한 학생들이었습니다.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소년원 학생들의 인상이 어떠냐는 것은, 책을 읽으신 분들이 많이 질문하시는 것 중에 하나예요. 세상 사람들이 소년들의 얼굴을 안다면 아마 묻지 않겠죠. 우리는 소년들의 구체적인 얼굴을 몰랐던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소년을 읽다』에 대한 다양한 독자들의 반응을 접하셨을 텐데요, 작가님은 개인적으로 어떤 반응이 인상적이셨나요? 

눈물을 줄줄 흘린 적이 있어요. 제가 소년원에서 수업할 당시 소년원에 근무하시던 선생님이 이 책을 읽으셨더라고요. 책을 읽고 감상을 남겨주셨는데, 그 아이들을 이렇게 기억하셨어요. 

“그해 아이들은 달콤한 마카롱과 아기자기한 스티커만큼이나 그날의 읽을거리와 국어선생님과의 만남 자체를 기대하고 기뻐했다. 수업이 끝나면 예쁜 삽화가 그려진 책을 겨드랑이에 하나씩 끼고 내려와 수업 때 있었던 일들을 재잘거리기 바빴다. 아이들은 주인공에게 공감하고, 같이 울어주고, 대신 화를 내주며, 눈이 아닌 마음으로 글을 대하는 듯하였다. 자신의 낭독 실력이 탄로날까봐 두려워 움츠러들던 모습은 희미해지고, 서로 읽겠다며 나서는 모습에서 아이들이 국어선생님께 받는 친절과 안정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 감상을 읽는데 눈물이 줄줄 났어요. 당시에는 학생들로 인해 생긴 감정의 희로애락을 나눌 동료가 없어서 외로웠어요. 외로워서 수업 일기를 썼던 것 같아요. 그 시간을 함께했던 이에게 뒤늦게 이해받고 지지받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읽고 많이 울었습니다. 

어떤 독자분이 지인의 자녀가 소년원에 있어서, 이 책에 손이 가게 되었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이런 바람을 말씀하셨어요. 세상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소년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범죄를 저질렀지만 아직 고정화되지 않은 청소년이어서 변화 가능성이 있는 존재라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책이 되어 세상으로 나가면, 많은 이들의 목소리와 마음을 한데 모으는 일을 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재미있는 반응도 있었는데요. 이 독자분은 작가의 말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하셨대요. 그러다가 꼬북칩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에서 오열을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꼬북칩 부분이 그렇게 슬픈 대목은 아닌 것 같고 20쪽에 나오는데, 20쪽에서 벌써 오열을 하셨다고 해서 웃었습니다. 여름, 가을, 겨울까지 무사히 읽으셨을까. 걱정이 조금 되었어요.

책을 읽고 인상적인 문장을 쓰는 것 자체가 마음을 들키는 거라고 『소년을 읽다』에 나오는데요, 학교 청소년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셨는지요?

읽으면서 밑줄 그은 책을 누군가가 빌려달라고 할 때, 싫은 적 있으셨을 거예요. 밑줄을 많이 그은 책일수록 더 빌려주기 싫잖아요. 타인의 마음을 드러냈거나, 누구나 하는 일반적인 생각에 밑줄을 긋기보다 제 생각, 감정 상태와 통한다고 느껴질 때 밑줄을 긋게 마련이니까요. 마음에 남는 문장에 그은 밑줄은 늘 나의 마음을 들키는 좋은 방법인 것이지요. 

학교에서 독서 활동으로 학생들에게 마음에 남는 문장을 적도록 하는 일은 굉장히 일반적인 일이에요. 인상 깊은 문장을 말하고 왜 인상 깊은지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책대화(독서토론)도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말문을 열고, 대화를 이어나가기에 좋은 방법이어서 널리 사용하는 방법이에요. 학교가 아닌 독서 모임(독서동아리)에서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소년원 학생들이 쓴 ‘인상적인 문장’이 유독 강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상대적인 것이라 생각해요. 먼저, ‘특수한 상황’이 있어요. 소년들은 범죄를 저질러 재판을 받았고, 그 벌로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 갇혀 있어요. 자신을 긍정하는 마음을 가지기 힘들고, 타인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존중과는 거리가 멀 겁니다. 생활환경도 아쉬운 것이 대부분일 거예요. 사회에 나가면 이 기간이 ‘낙인’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크고요. 이런 특수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남긴 인상 깊은 문장은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강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 독후 활동이 단순해서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학교의 학생들은 인상 깊은 문장, 이것 하나만 남기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인상 깊은 구절을 적고 왜 인상 깊은지 이유를 적어요. 이 외에도 연관되어 떠오르는 사람이나 사회의 현상 등 여러 가지를 쓰고 말하게 되어요. 그러니까 인상 깊은 문장은 다른 많은 활동 속에 묻히는 것 같아요. 강렬함이 희석된다고나 할까. 소년원의 학생들은 독서 후 기록에 부담을 느껴서 심리적으로 책을 거부할까봐, 인상 깊은 문장 하나만 적어보게 했어요. 하나여서 더 강렬할 수 있었고, 마음을 저릿하게 했던 듯합니다. 



『소년을 읽다』를 읽으실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이 책은 드라마틱한 감동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수시로 바뀌어서, 인물 이야기의 단절도 많은 책이에요. 한계도 뚜렷하죠. 제가 학생들과 생활을 같이 한 사람이 아니라, 1주 1회 수업만 한 사람이라서 수업 장면만을 다루고 있거든요. 그저 수업의 일상을 다룬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는 분들도 알아차리셨을 겁니다. 

그럼에도 독자들이 마음 아파하고 눈물 흘리셨다고 해요. 또 사회적으로 의미를 부여해준 언론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이 이야기는 사회의 어른들이 몰랐던 이야기구나. 소년원의 청소년들은 ‘범죄자’라는 추상적인 얼굴만 가지고 있던 거죠. 그런데 이 소년·소녀들이 이런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었구나. 내 이웃의 청소년들처럼 재미난 소설을 읽으면 깔깔거리고, 작가를 만나면 궁금한 것을 물어보느라고 수다쟁이가 되고, 시를 외울 때는 틀릴까봐 긴장하는 눈빛이 되는구나. 소년원 학생들의 구체적인 얼굴을 알려준 것이 제 책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구체적인 삶의 맥락과 개별적인 얼굴을 알게 되면, 단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기지 않을까요? 잘못에 대한 처벌은 물론 필요하지만, 그 ‘이전’과 ‘너머’를 생각하게 되는 사회의 어른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이후에는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게 될까.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보살펴주어야, 이 아이들이 따뜻하고 밝은 길에서 몸도 마음도 건강한 이웃으로 살아가게 될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기대이자 바람입니다.




*서현숙

인생의 절반을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살고 있다. 알고 보면 뼛속 깊이 재미주의자. 공무원 사회에서 지루한 얼굴로 살 뻔했는데, 가슴 설레는 재미난 일을 만났다. “이 책, 같이 읽을래?”라는 말로 아이들을 책의 세계로 이끄는 일이다. 덕분에 직업이 삶이고 삶이 직업인 시절을 즐기고 있다. 2019년 우연히 소년원에서 국어 수업을 하게 되었고, 소년원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었다. ‘2020 청소년 책의 해’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며 ‘책 읽는 소년원’을 꾸려나갔다. 지은 책으로 『독서동아리 100개면 학교가 바뀐다』(공저)가 있다.



소년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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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숙 저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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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