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 다음은 ‘구원’이었다. 『유괴의 날』에서 시니컬한 천재 소녀와 어리바리한 남자의 재기 발랄한 케미스트리를 선보였던 정해연 작가가 이번에는 보다 무겁고 진중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아이를 유괴당한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찾기 위해 다른 아이를 납치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읽고 나면 분노보다는 안타까움과 먹먹함이 먼저 떠오른다. 몰입력과 스릴, 그리고 감동까지 야무지게 챙긴 정해연 작가의 신작 『구원의 날』이다.
직접 소개하는 신작 『구원의 날』 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실종된 아들 선우를 찾기 위한 부부의 전쟁 같은 일상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다. 아이를 잃어버린 후, 자책과 좌절에 무너져가던 예원과 선준 부부는 선우를 본 적이 있다는 로운을 만난다. 유괴당한 아들을 둔 부부가 유괴범이 되어버린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엄마의 방치로 애정과 관심을 갈구하게 된 아이 로운이 그들에게 희망인지, 희망 고문인지 혼란스러워하며 함께 동행하는 이야기다.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켜봐주시면 좋겠다.
섬뜩한 스릴러 『지금 죽으러 갑니다』, 재기 발랄한 미스터리 『유괴의 날』, 압도적인 몰입감 『내가 죽였다』 등 다양한 색깔과 매력이 있는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이번 『구원의 날』 은 또 한 번 변신을 한 느낌이다. 『구원의 날』 을 쓰게 된 계기나 전환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매년 5월 5일 어린이날이 되면 더욱 마음 아픈 사람들이 있다. 바로 실종 아동의 가족들이다. 몇 년 전 실종아동찾기협회장님의 인터뷰를 접했다. 그분의 인터뷰에 따르면 실종 아동 가족의 70%가 가정이 해체되고 경제적 붕괴를 경험한다고 한다. 재산을 탕진할 때까지 아이를 찾는 일에 몰두하고서 폐인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 역시 20여 년 전 9살이던 외동딸을 잃어버렸다. 그분은 수억의 빚을 지면서 실종아동찾기협회를 운영했다. 내 아픔과 내 가족을 다독이고 내 아이만을 찾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그를 거리로 나가게 만든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분 말고도 많은 실종자의 부모들은 여러 활동에 참여하며 국민의 관심과 정부의 역할을 촉구한다. 나와 내 아이의 아픔을 다른 사람들만은, 다른 아이들만은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지 않을까, 감히 가늠해본다.
예원이 봉고 차 겉면에 실종 전단지와 포스터를 붙이고 다니는 장면은 1999년 2월 13일, 고등학생이던 혜희 양이 실종되었던 사연을 모티프로 했다. 『구원의 날』 은 모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국민의 관심과 정부의 지원, 수사 당국의 실종자 수색 및 관련 범죄 수사 전담 인력이 확충되기를, 실종 아동 부모의 상처를 어루만져줄 수 있는 나라와 우리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쓰게 됐다.
『구원의 날』 을 읽으며 몇 번이나 가슴이 찡했다. 특히 주인공에 몰입하게 되어서인지 마지막 장면에서는 눈물을 안 흘릴 수가 없었다. 그간 마지막에 씁쓸한 반전이 있는 작품이 많아서 이런 감동적인 결말이 오히려 새로웠는데, 처음부터 구상했나?
그간 씁쓸한 반전을 주었던 건 딱히 내가 그런 것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세상에는 완전한 해피엔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제도에 득과 실이 나뉘듯,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어도 그것으로 누군가는 이득을 취하고, 자신에게 맞는 방향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처음부터 결말에 고민이 많았다. 시놉시스 단계에서부터 많은 버전의 이야기를 만들었었다. 인터뷰에서 결말을 말할 수 없어 조심스러운데, 내가 결국 이 결말을 선택한 것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였기 때문이다. 용서와 인간으로서의 이해, 그것은 스스로를 구원하는 또 다른 도구라는 것이다.
그동안의 작품들을 읽어보면 부모와 아이가 등장하는 소설이 많다. 『유괴의 날』 과 최근 출간된 『패키지』, 그리고 『구원의 날』 도. 가정 문제에 관심이 많으신 건지,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스릴러 작가가 된 이후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왜 스릴러인가’이다. 인간이 가장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순간은 자신의 인생이 뒤흔들리거나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라고 생각하는데, 그때마다 인간이 잘못된 선택을 하여 범죄가 발생하고, 그 범죄를 다룬 것이 스릴러라는 장르였다. 내가 그중에서도 가정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는 것은 같은 범죄라도 인간에게 가장 잔인한 형태의 상처를 남길 수 있는 것은 가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범죄를 막기 위한 가장 최초의 감시 집단 역시 가족이며, 용서하고 보듬을 수 있는 것 역시 가족이다. 흔히 ‘양날의 검’이라는 말을 쓴다. 나는 가족이 이 양날의 검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미 알고 있듯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에게는 불행한 가정사가 있는 경우가 꽤 있다. 그것처럼 가족은 세상과 누군가의 인생을 지옥으로 떨어트릴 범죄자들을 양산해내는 창구가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가장 불행한 방식으로 경고의 메시지를 담는 것이 나의 역할인 것 같다.
『유괴의 날』 에 이어 이번 신작의 제목은 『구원의 날』 이다. 다음 작품도 ‘어떤 날’이 될 거라는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의도한 바가 있는지 궁금하다.
유괴를 소재로 한 이야기를 세 편 써서 ‘유괴 3부작’이라고 나름 붙여볼 생각이었다. 그 2탄으로 이 작품을 쓴 것인데, 원래는 다른 제목을 붙였었다. 나는 제목을 짓는 일에 소질이 없는 편이라 편집자님과 상의하였는데, 편집자님께서 이 제목을 붙여주셔서, 내 나름의 프로젝트가 유괴를 소재로 한 ‘날 3부작’으로 바뀌었다. 두 작품 모두 ‘날’과 어울리는 이야기를 갖고 있어서 다행이긴 한데, 세 번째는 어떤 날을 해야 할지 조금 고민이 되기는 한다. (웃음)
지난 2년 동안 무려 5권의 단행본을 출간하고, 6권의 앤솔러지에 참여했다. 정말 작품을 많이, 빠르게 쓰시는 듯한데 노하우가 있는지?
2년 동안 몇 권을 냈다는 말로는 계산이 힘들 것 같다. 그동안 나온 작품들은 사실 출간된 시점보다 훨씬 이전에 쓰였다. 이번 『구원의 날』 역시 2017년도부터 썼고, 시놉만으로는 『유괴의 날』 보다 먼저였다. 집필하면서 내가 원하는 만큼 이야기가 풀리지 않거나 원고를 넘기더라도 출판사의 일정에 맞춰 출간이 늦어지기도 한다. 2020년은 그동안 한 계약들이 많이 맞물려 출간된 해였다. 그럼에도 1년에 장편 두 편 정도는 써내려고 하고 있다. 작가를 떠나서 내가 가진 가장 큰 재능은 성실함이다. 그냥 꾸준히 성실하게, 살고 있다.
차기작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준비 중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구원의 날』을 읽으실 독자들에게 한마디를 한다면.
원치 않는 능력을 가지게 된 남자가 옳고 그름의 아이러니에서 혼란을 겪는 이야기와 인간의 명예욕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어떤 녀석이 먼저 세상으로 나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유괴의 날』 과 『구원의 날』만큼이나 다른 분위기를 가진 작품이 될 것이다.
귀한 시간을 내서 제 책을 읽어주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과분한 행복인지 모르겠다.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재미를 드렸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가 글을 쓰는 수년 간의 유일한 목표다. 감사하다는 말은 진부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으나, 진부함에도 그것 이외에 적합한 말이 없는 것은 그것이 정답이기 때문일 거다. 진심으로 감사하고, 늘 노력하는 작가로 즐거움을 드리겠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이 찾아온다. 가끔일 수도 있고 자주일 수도 있다. 그럴 땐 아무도 날 이해해주지 않고, 혼자인 것만 같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어떨 때 힘이 생겨나는지, 어떤 것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이해하는 것은 바로 나다. 당신이 살아낸 모든 시간이 당신 스스로를 구원하기를 바란다.
*정해연 소심한 O형. 덩치 큰 겁쟁이. 호기심은 많지만 그 호기심이 식는 것도 빠르다. 사람의 저열한 속내나, 진심을 가장한 말 뒤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에 대해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2012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서 「백일청춘」으로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2016년 YES24 e-연재 공모전 ‘사건과 진실’에서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로 대상을 수상, 2018년 CJ E&M과 카카오페이지가 공동으로 주최한 추미스 공모전에서 「내가 죽였다」로 금상을 수상했다. 1981년에 태어나 오늘을 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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