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나답게 비우는 것에 대하여
시작은 책이었으나 끝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코너, 삼천포책방입니다.
글ㆍ사진 임나리
202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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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비우는 방법이 담긴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 잠 전도사 ‘단호박’이 선택한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디스 워튼의 삶을 겹쳐보게 되는 소설 『이선 프롬』을 준비했습니다. 

 

그냥의 선택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

이치다 노리코 저/황미숙 역 | 드렁큰에디터



저자 이치다 노리코는 프리랜서 에세이스트이자 매거진 기획자입니다.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을 읽은 후의 감상을 두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비우기’, 그리고 ‘나답게’.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면서 새롭게 생겨나고 갖게 된 것들도 있지만, 그보다는 비우고 덜어낸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고요. ‘나답게’ 되기 위해서 시점을 달리 한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저자가 젊을 때는 ‘이렇게 해야 돼’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오십 대에 접어들면서 ‘안 그래도 되지 않나?’라고 생각해보니 많은 것을 비우고 나에게 맞추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들을 일, 관계, 일상, 스타일이라는 네 가지 주제로 분류해놨어요. 그리고 각 장의 시작에는 김혼비 작가님, 신예희 작가님, 한수희 작가님, 이유미 작가님의 미니 에세이가 실려 있습니다. 아주 풍성한 책이에요. 하지만 술술 읽힙니다. 밀도가 높지 않아서 편안하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특히 ‘일’과 관련된 장에서 마음에 남는 이야기들이 많았어요. 이치다 노리코 저자도 많이 소심한 편이라고 하는데요. 이런 사람들이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최소한의 실수를 할 수 있을 때 시작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그러지 않으면 아예 손도 대지 않으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완벽하게 준비된 때라는 건 없고, 누구도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 일이 잘 될지 실패 할지를 빨리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빨리 시작하는 것뿐이고, 실패했다면 빨리 시작한 만큼 빨리 다른 일을 시도해볼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단호박의 선택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미예 저 | 팩토리나인




처음에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소개됐던 책이에요. 독자들의 정식 출간 요청이 있었고 종이책으로 출간되기 전에 전자책으로 나왔습니다. 전자책 출간으로 더 입소문이 나서 2020년 7월에 종이책이 나왔는데 계속 베스트셀러이고 총 12만 부 이상 판매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잠들어야만 입장할 수 있는 마을에 있는 백화점이에요. 이 마을은 대대로 사람들에게 꿈을 꾸는 데 도움이 되는 물품이나 잠을 잘 잘 수 있도록 하는 걸 파는 것으로 유명해졌어요. 점점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면서 큰 도시가 된 거죠.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그곳의 랜드마크로 있는 큰 상점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이야기의 주인공은 ‘페니’인데요. 페니는 자신이 그토록 들어가고 싶었던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1차 서류가 붙어서 면접을 앞두고 있어요. 그래서 처음 등장할 때 하는 일이 뭐냐 하면, 서점에 가서 면접 관련 책과 예상 문제집을 사들고 카페로 갑니다. 카페에서 문제집을 보는데 예시 문제가 이런 거예요. ‘다음 중 1999년도 올해의 꿈 시상식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그랑프리를 수상한 꿈과 그 제작자로 옳은 것을 고르시오.’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여기 나왔던 꿈 제작자들이 다 등장합니다. ‘알고 보니 이 제작자가 이런 걸 만드는 사람이었다더라’, ‘알고 보니 이 제작자는 누구와 연관이 있다더라’ 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예전에 나온 책이고 이미 베스트셀러이지만 꼭 소개하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가 몇 가지 있었어요. 일단은 꿈에 대해서 굉장히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묘사들이 있어요. 또 하나는, 앞에서 기출 문제 말씀드렸듯이, 한국 패치가 너무 잘 돼있어요. 너무나 한국적인 캐릭터들과 ‘한국인이라면 이렇게 생각하겠지’ 하는 것들이 많아요. 

작가는 원래 재료 공학을 공부하고 반도체 엔지니어로 일했어요. ‘사람이 왜 꿈을 꿀까, 인생의 1/3을 잠을 자면서 보내는데 왜 이런 식의 삶을 사는 걸까’라는 궁금증에서 이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하고요. 작가로서의 목표가 ‘쉽게 읽히고 장점이 뚜렷한 책을 꾸준히 만드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그 목표를 이 책을 통해 충분히 달성하신 것 같고요. 저는 웬만하면 다 재밌어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톨콩(김하나)의 선택 

『이선 프롬』

이디스 워튼 저/김욱동 역 | 민음사



이디스 워튼은 우리나라에서 인지도가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지만 고전에 많이 선정되는 작품을 쓴 유명한 작가이기는 합니다. 미국 작가이고요. 최근 몇 십 년 사이에 훨씬 더 재조명이 되고 각광을 받고 있는, 페미니즘의 흐름에서도 그렇고 요즘 더 각광을 받고 있는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디스 워튼은 1862년에 태어났어요. 뉴욕의 명망가인 존스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뉴욕에서도 막대한 부를 가진 집에서 태어난 딸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유럽 각지를 여행하면서 살았고요. 글 읽기와 쓰기를 좋아했는데, 당시에 뉴욕 사교계 명망가의 젊은 여성이 글을 쓴다는 건 조금 더러운 일이었어요. 잉크를 손에 묻혀가면서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천박한 일처럼, 그래서는 안 되는 일처럼 터부시되었던 거죠. 이디스 워튼의 엄마가 글을 못 쓰게 하려고 많이 말렸던 사람이었고요. 

이디스 워튼은 에드워드 워튼이라는 사람과 결혼을 했는데 이 결혼 생활이 너무 불행했습니다. 나중에는 남편이 외도를 하기도 하고 이디스 워튼도 결혼한 지 20여 년이 지났을 때 모튼 풀러튼이라는 남자와 불륜 관계를 시작합니다. 2년가량 만났는데 그 경험이 지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온 책이 『이선 프롬』이고요. 이디스 워튼이 에드워드 워튼과 이혼하기 전에, 자신의 사랑은 지나가고 간 뒤에 쓴 내용이에요. 내용을 말씀드리면 ‘이선 프롬’이라는 남자가 있습니다. 스물여덟 살이고 이 사람에게는 일곱 살 많은 ‘지나’라는 아내가 있어요.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라 이선 프롬의 부모님이 아플 때 먼 친척인 지나가 돌봐주러 왔다가 결혼을 하게 됐고, 이선 프롬은 가계를 살리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지나가 계속 짜증을 내고 이런 관계가 펼쳐지는데요. 이디스 워튼 본인의 생활이 남녀가 반전되어서 반영되었다고 충분히 볼 수가 있는 거죠. 

이선 프롬은 공대의 물리학 실험실에서 일하면서 공부했던 적이 있어요. 아버지가 중병에 걸리면서 빨리 학업을 접고 돌아와야 했지만 학업에 아주 흥미를 느꼈었어요.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 진리에 대한 탐구심을 늘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었고요. 그런데 그것을 이해해주는 젊은 여자 ‘매티’가 한 집에 살게 된 것입니다. 이디스 워튼 자신의 결혼 생활을 짐작하면서 읽으면, 당시는 여성의 글쓰기에 대해서 괄시하던 때였기 때문에, 이런 구도로 표현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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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