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저만 불안한가요?”
“아닙니다. 의사인 저도 불안을 느낍니다.”
불안, 초조, 두려움 그리고 최근의 코로나블루까지. 불안이란 꼭 인생의 변곡점이 아니어도 살면서 누구나 겪는 한 번 이상은 겪는 감정이지만, 유독 요즘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 나왔다. 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불안한 것이 당연합니다』가 바로 그것. 이 책은 불안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제로 다스리는 데도 도움을 준다.
이 책이 ‘불안’을 다룬 첫 책은 아닙니다. 특별히 지금 이 시기에 불안에 대한 책을 내게 되신 이유가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불안 수준이 높은 편이지만, 2020년은 특히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건강에 대한 염려, 사회 경제적 걱정 등이 그 이유일 텐데요, 이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죠.
저는 정신건강의학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사실 불안은 인간의 기본 감정 중 하나인데요, 저 개인적으로는 약 5년 전 안식년 해외 연수 시절에 40대 중반에 제 인생을 돌아보며 반성을 하고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는데, 불안을 크게 느낀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 요즘처럼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져 제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때부터 학문적 관점에서 불안을 달래줄 상위단의 사고의 틀을 준비하고 있었고요.
그러던 중 5년이 지난, 올 해 COVID-19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진료실 안팎에서 불안을 느끼는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짧게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길게는 인생의 2막에 대한 본격적 준비를 위해서, 그동안 저와 진료실에서 만난 분들과 운동 선수들과의 상담, 고민, 위로의 말들을 일반 독자분들을 위해 정리하게 된 것입니다.
다른 정신건강의학 전문가의 책들과 달리 니체를 자주, 또 알기 쉽게 언급하신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특별히 니체에 주목하신 이유가 있는지요?
사실 저는 프로이트를 특히 좋아합니다. 니체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 프로이트와 니체가 많은 사상적, 심리 이론적 영향을 주고 받았다고 들었습니다만, 과거에 접했던 니체는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40대가 되어, 저의 경험과 프로이트의 이론으로 다시 접근한 니체의 철학은 진실성과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갖고 있어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니체 철학이 지금껏 인간 대다수가 경험하지 못한 (그래서 불안한) 100세 시대에 걸맞는 삶을 추구할 수 있는 방향성을 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었죠.
불안장애나 공황장애라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불안 때문에 잠 들지 못하고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고요. 특히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이런 사람들에게 간단히 조언해주신다면요?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가장 흔한 어려움 중 하나는 잠들 때 집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복잡한 생각과 감정으로 인해 고요한 나 자신에 대해 집중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며 산만해지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자고 싶을 때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충고를 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생각을 하지 말라는 주문보다 어려운 일은 없으니까요. 대신 단순한 생각 한두 개를 하라고 이야기하죠. 마치 양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세다 보면 잠이 드는 것처럼요.
평소 극도의 불안을 안고 사는 운동선수들을 많이 상담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이런 분들의 경험, 그리고 선생님의 조언이 보통의 일반인에게도 많이 도움이 될까요?
우리가 텔레비전이나 경기장에서 보는 스타 스포츠 선수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기에 똑같은 일에 힘들어하고, 똑같이 불안해합니다. 다만 그들이 가진 특정 운동 영역에서의 수행 능력(performance)이 우리와 다른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들 역시 이런 정도의 수행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심한 불안이 동반된다고 보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이 불안을 다스릴 때 저와 같이 고민하며 나누었던 이야기는 분명 우리 일반인들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프로야구팀 KT위즈를 심리닥터를 겸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KT의 활약이 돋보였는데요, 심리닥터 입장에서 선수들에게 어떤 말을 많이 해주셨을까요?
2020년 시즌 제가 선수들과 가장 많이 반복적으로 했던 말이 ‘하던 대로 하자’였습니다. 자신이 연습한 대로 능력만큼만 발휘하고 그것이 어느 정도 되는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렇게 발휘를 했는데, 성적이 안 좋으면 기량을 더 향상시키고, 향상시킨 만큼 또 발휘를 해보자 이렇게 작전을 세웠습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말도 자칫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보다 더 무리해서 하자’라는 말로 오인될 수 있기에,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만큼만 하자. 있는 그대로만 보여주자’고 말한 것이었죠.
올해 코로나19 여파로 많은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지만, 특히 지금 수능을 치른 수험생과 학부모님들이 많이 불안하고 초조할 것 같습니다.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KT위즈 선수들에게 했던 말과 비슷한 말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만큼만 결과를 얻게 된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를 많이, 효과적으로 했는데 성적이 안 나올 확률도 낮고, 공부를 안 했는데 성적이 잘 나올 확률도 낮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그 두 경우를 걱정합니다. 왜냐하면 확률이 낮기 때문에 그것이 일어날 미래는 불투명하기 때문에, 그것을 기다릴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바로 불안인 것이죠. 우리가 한 만큼의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가장 확률 높은 결과를 기다리는 것인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논리적인 접근입니다. 그러면 불안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새 2021년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사회경제적으로 우울한 예측이 대다수인데요, 그래서 더 불안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끝으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서로 간의 관계를 단절하고, 개인의 동선을 줄이고, 현재에만 갇혀 있어야 한다는 상황은 당연히 암울하고 답답합니다. 하지만 지금 서 있다는 것은 미래에는 움직인다는 상대적인 증거이기도 합니다. 새해에 해돋이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있죠. 포스트 코로나는 현재 코로나가 진행되어 파생되는 부정적 결과의 끝이 아니라 암울한 코로나가 끝나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희망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불안을 잘 이용하면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것처럼요.
*한덕현 중앙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경기 결과에 따라 선수와 같이 울고 웃는 스포츠 정신의학 전문의. 국제스포츠정신의학회 정회원으로 불모지나 다름없는 국내 스포츠 정신의학 분야를 개척했다. 프로야구단 현대유니콘스 스포츠 심리 자문을 시작으로, LG트윈스를 거쳐 2020년 현재 KT위즈의 스포츠 심리 닥터를 맡고 있다. 야구뿐 아니라, 축구, 농구, 골프, 게임 분야의 프로 스포츠 선수들에게 심리 자문 및 상담을 하고 있다. 2014년 소치올림픽, 2018년 평창올림픽 빙상 과학훈련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18년 IOC 주최 세계 스포츠 의학 심포지엄에 초청되어 엘리트 운동선수들의 정신건강에 대하여 토론 및 공동 연구에 참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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