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에세이스트] 1월 대상 - 엄마의 등을 품고 있는 스웨터
그 옷을 보면 언제나 엄마의 등이 떠올랐다. 조금씩 굽기 시작한 등, 새벽녘 밀린 설거지를 하는 등, 구부정한 자세로 붓글씨를 쓰는 등.
글ㆍ사진 김민하(나도, 에세이스트)
2021.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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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그 옷을 보면 언제나 엄마의 등이 떠올랐다. 조금씩 굽기 시작한 등, 새벽녘 밀린 설거지를 하는 등, 구부정한 자세로 붓글씨를 쓰는 등. 엄마의 등은 늘 그 옷 안에서 바빴다. 

겨울만 되면 엄마는 그 스웨터를 꺼내 입었다. 검은 바탕에 빨간 꽃무늬가 듬성듬성 있었다. 그 스웨터를 입고 집안일을 했다. 엄마는 늘 내게 그 옷을 입은 등을 보였다. 부엌에서도, 쭈그려 앉아 손빨래하는 화장실에서도, 붓을 잡은 그 뒷모습도 모두 등이었다. 유난히 추운 날은 옷에 달린 모자도 썼다. 그러면 굽기 시작한 등은 조금 더 넓어 보이긴 했다. 

내가 결혼을 하던 해에 우리 가족은, 1년만 살고 탈출하자며 옥탑방 월셋집으로 들어갔다. 가난의 벼랑 끝까지 내몰린 기분이었다. 2월 말이었다. 허름한 집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다. 봄은 멀게 느껴졌다. 3월 내내 엄마는 검고 붉은 그 스웨터를 입고 살았다. 그 스웨터를 입은 엄마는 어쩐지 추워 보였다.

5월 결혼식 며칠 전, 옷을 싸는 데 엄마가 그 스웨터를 가져가라고 준다.

“이것만큼 따뜻한 게 없어.”

싫었지만, 가져가서 버릴 생각으로 챙겨 넣었다. 신혼의 여름과 가을을 보내고 겨울이 왔다. 계절 옷 정리를 하다 엄마의 스웨터를 본 순간, 눈물이 쏟아지려 하는 걸 간신히 참았다. 엄마는 올해부터 겨울을 어찌 보낼까, 어떤 옷이 엄마의 온기를 지켜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입어 보았다. 엄마가 왜 겨울 내내 그 옷만 입었는지 알 것 같았다. 얇은 내의 하나 입고도 그 스웨터만 입으면 다른 것이 필요 없었다. 아, 이 옷에는 엄마가 있구나. 이 옷은 엄마의 따뜻함을 품고 계절을 지나왔구나. 그러나 이내 벗어 버렸다. 엄마의 등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추위를 잊어 보려 노력한 그 등, 세월과 중력을 어쩌지 못해 자꾸 굽기만 하는 그 등 역시 스웨터에 묻어 있었다. 나의 뒷모습이 그 등을 닮고 싶지는 않았다. 몸은 따뜻했지만 마음은 추워지는 기분이었다. 옷장 보이지 않는 구석에 걸어두고 그 겨울을 보냈다. 

그 후 네 번의 이사를 하고 아이를 셋을 낳고 여섯 번의 겨울을 지났다. 이사 때마다 그 스웨터를 쥐고 한참을 고민했다. 쓰레기봉투에 들어갔다 나오기만 몇 번이었다.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빨간 꽃무늬마다 엄마의 가사노동이 스며 있었다. 엄마의 40대와 50대 초반이 녹아 있었다. 그 옷을 버리는 것은, 엄마의 등을 부정하는 일처럼 다가왔다. 그렇게 엄마와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지금도 그 옷은 옷장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 

이제는 입을 일도 없다. 나에게는 그만큼 따뜻한 가정용 스웨터가 몇 개 있다. 디자인도 색상도 훨씬 세련된 것들이다. 새 스웨터를 꺼내 입을 때마다 엄마의 스웨터를 애써 무시한다. 그 스웨터는 빨지도 않고 몇 년을 지나 먼지 냄새도 난다. 그저 상징처럼 남아 있는 그 옷은, 버리기엔 아직은 미련과 회한이 내 안에 그득하다. 나는 엄마의 등을 보며 자랐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게 뒷모습만 보인 채 묵묵히 나와 동생을 키웠다. 식사 준비를 하고 걸레질을 하였으며 운동화를 빨았다. 그 역사가 스웨터에 남아 있어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지난겨울 셋째를 낳고 100일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엄마가 오랜만에 왔다. 내가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끓여주겠다고 옷장을 뒤적거리더니 그 옷을 꺼낸다.

 “아직 안 버리고 갖고 있네. 이거 입으면 다른 거 필요 없어.”

또다시 내게 등을 보이고 주방에 섰다. 어째 등이 좀 더 굽고 작아진 것만 같다. 우리 집은 그렇게 춥지 않아서 그 옷 안 입어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저 엄마의 등을 바라보기만 했다. 어쩌면 훗날 나는 엄마의 그 등을 그리워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의 온도와 냄새가 배어있는 그 옷은 영원히 버리지 못할 것만 같다. 


김민하 밤이 밝아 오면, 마음속 문장들을 꺼내어 엮습니다. 삶의 모토는 '텍스트 근본주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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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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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아

2021.01.09

자식은 엄마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옛말 처럼 그런것 같아요. 엄마의 지독하고 치열한 삶을 담고 싶지않아 발버둥쳐 보았지만 자식낳고 키우며 세월 지나고 나니 엄마를 닮아 있네요. 바짓가락 잡고 메달리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주방한켠에 서서 굶주린 배를 허겁지겁 채우는 나의 뒷모습이 엄마의 모습을 닮았고, 내가 850원짜리 삼각형 커피우유를 마실때에는 앞모습 조차도 엄마를 닮았어요. 글을 읽으며 눈물이 조금 났어요. 나에게 처음으로 문우라는 명칭을 붙여줬던 날을 기억해요.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김민하 님의 글이 대상이 되어서 참으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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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하(나도, 에세이스트)

일상의 널려있는 것들을 꿰어 글로 엮습니다. 삶의 모토는 '텍스트 근본주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