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한은 내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학생이었지만 나는 글쓰기 교사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의 거짓말을 수호하는 과목은 글쓰기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저 각자 몫의 삶만 산다면 신화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조지프 캠벨은 말했다. 우리는 자신과 세상을 죄다 이해하기가 벅차서 허구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좋은 거짓말에는 빛도 어둠도 풍부하게 담겨 있다. 그와 함께 지어낸 거짓말로 진실 쪽을 가리키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이슬아 작가님의 책 『부지런한 사랑』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 이슬아는 사실 20대 초반, 대학생 시절부터 글쓰기를 가르쳐 온 글쓰기 교사이기도 합니다. 이슬아 작가님은 제자들의 글을 보며 글쓰기의 힘을 생각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면서 제자들과 함께 성장해요. ‘부지런한 사랑’의 마음으로 말이죠.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는요. 이슬아 작가님과 함께 글쓰기 교사로 사는 기쁨과 좋은 어른, 좋은 작가가 되려는 노력에 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의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인터뷰 – 이슬아 편>
오은: 오랜만에 단독으로 찾아주셨어요. 여의도 스튜디오는 처음 오신 거잖아요. 어떠세요?
이슬아: 2018년에 처음 <오은의 옹기종기> 출연했을 때는 초면인데 너무 밀착된 채로(웃음), 후끈 후끈한 채로 모여서 녹음을 했잖아요. 사실 그때도 되게 좋았거든요. 지금은 조금 더 쾌적해진 느낌이네요.
오은: 10월에 글쓰기 교사로 지내며 쓴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 『부지런한 사랑』을 내셨죠. 저는 이 책을 읽고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지만 각자에게 필요한 사랑은 다 다르다. 그 다름을 정확히 짚어내는 책’이라고 메모장에 적어두었습니다. 제자들마다 특징과 장점이 다 다를 테니까 거기에는 개개의 사랑이 필요할 것 같고요. 이슬아 작가님은 그 사랑을 참 잘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슬아: 다른 사랑에 대해서는 저의 글쓰기 선생님한테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저의 선생님이신 ‘어딘’이 가끔은 연극인 같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어떤 학생들과 수업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태도와 다른 대사를 하시거든요. 텐션도 달라지시고요. 그걸 선택할 수 있다는 느낌, 연극인처럼 얼굴을 계속 바꿀 수 있다는 느낌이 있는데요. 저는 연기를 잘 못하지만(웃음) 선생님 같은 연극인이 꿈입니다.
오은: 제목처럼 실제로 부지런하게 책 마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슬아: 원래 책을 완성하려면 여러 사람이 부지런해야 하잖아요. 저의 편집자 님이 정말 일을 엄청 열심히 하시는 분이에요. 빨리 하시는 분이고요. 저도 정말 빨리 하고, 열심히 하는 편인데 그런 두 사람이 만나니 폭주기관차처럼 달리며 책을 만들게 되더라고요.(웃음) 함께 폭풍처럼 만들었던 기억입니다.
오은: 이제 이슬아 작가님 소개를 해드릴 차례인데요. 처음 출연하셨을 때 많은 이야기를 해드렸으니 혹시 이슬아 작가님의 소개가 궁금하신 청취자 분들은 <오은의 옹기종기> 18-1화를 참고하시면 좋겠고요. 오늘은 특별히 <김하나의 측면돌파>의 시그니처 코너입니다. ‘스피드퀴즈’를 진행해보려고 해요.
이슬아: 너무 긴장돼서 오은 시인님께 전화해서 여쭤봤잖아요.(웃음) 이거 많이 어렵냐고요.
오은: 캘리 작가님이 그냥 작가님께 노하우를 전수 받았다고 하는데요. 스피드퀴즈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망설이지 않고 빨리 답변하는 것이에요. 시작합니다. ‘솔직히 최근에는 물구나무 서기를 몇 번 빼먹었다. Yes or No?’
이슬아: Yes.
오은: ‘하루 중 가장 좋을 때는? 1) 마감 직후의 늦은 밤 2) 이른 아침의 체조 후’
이슬아: 1번!
오은: ‘게을러지고 싶을 때 떠올리는 생각은? 1)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2) 이건 내가 사랑하는 일이야’
이슬아: 1번.
오은: 글을 써나가기가 너무 힘들 때 떠올리곤 하는 제2의 진로가 있다. Yes or No?’
이슬아: Yes.
오은: ‘내가 써놓고도 나의 글에 자주 감탄한다. Yes or No?’
이슬아: No.
오은: ‘출판사 대표로서 탐내고 있는 작가가 있다. Yes or No?’
이슬아: Yes, yes.
오은: ‘이슬아가 더 많이 하는 고민은? 1) 무엇을 할 것인가 2)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이슬아: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오은: ‘나는 나의 낭독을 자주 즐겨 듣는다. Yes or No?’
이슬아: No, never.(웃음)
오은: ‘10대 시절, ‘어딘’에게 글쓰기 수업을 듣지 않았더라면 완전히 다른 일을 했을 것이다. Yes or No?’
이슬아: No.
오은: ‘해볼까 말까 할 때는 해보는 이슬아. 그러다 크게 후회한 적이 있다. Yes or No?’
이슬아: Yes.
오은: ‘마감이 없다면 글을 쓸 자신이 없다. Yes or No?’
이슬아: 자신이 없다.
오은: ‘이슬아가 더 되고 싶은 것은? 1) 품이 넓은 글쓰기 교사 2)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한 작가’
이슬아: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한 작가.
오은: ‘<책읽아웃>에서 더 자주 듣는 코너는? 1) 오은의 옹기종기 2) 김하나의 측면돌파’
이슬아: 옹기종기!(웃음)
오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 나온 질문이 있어요. ‘내가 써놓고도 나의 글에 자주 감탄한다’에 그렇다고 답하실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아니라고 하셨어요.
이슬아: 감탄할 때도 있는데요. 빈도가 딱 열 번 중 한 번 정도인 것 같아요. 대체로는 자괴감도 들고 그래요. 그래서 다음 날 마감이 또 있는 것이 위안이 되곤 해요. <일간 이슬아> 연재를 할 때는 어제 못 써도 오늘 만회할 수 있잖아요.
오은: 책 이야기를 해볼게요. 『부지런한 사랑』에 대해 작가님께서 직접 소개해주시는 순서입니다.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은 글쓰기가 왜 부지런한 사랑인지 설득하는 책입니다. 주로 게으른 사랑을 했던 사람이 아이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어떻게 부지런히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쓴 책이에요.
오은: 책 곳곳에 애정이 많이 묻어 나고요. 초판 서명에는 ‘가장 오랫동안 작업한 책’이라고 적었어요. 어떤 이유로 이 책이 다른 책보다 더 큰 애착이 가는지 궁금했어요.
이슬아: 우선은 5-6년간 글쓰기 교사로 일하면서 오랫동안 쓴 글을 모은 것이라 그런데요. 『일간 이슬아 수필집』 같은 경우 2018년에 반년 쓴 글을 압축해서 모은 것이고, 그밖에도 길어야 1년 정도 쓴 글을 모은 책들이었잖아요. 이 책은 20대 중반부터 써온 것을 작업한 것이라 공이 많이 들어갔다고 느꼈어요. 저 말고 다른 사람이 굉장히 많이 등장하는 책이라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오은: 이 책에는 글방에서 만난 친구들의 글이 굉장히 많이 담겨 있습니다. 인용 동의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 같고요. 친구들이 자신의 글을 책에 싣는다고 할 때 선뜩 응하지 않았을 것도 같아요. 글방에서 친구들, 선생님과는 공유할 수 있겠지만 그 글을 일반 대중에게 선보인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잖아요. 실제로 어땠어요?
이슬아: 게다가 아이 입장에서도 3-4년 전에 쓴 글이기 때문에요. 그건 지나간 자신이잖아요. 저도 3-4년 전에 쓴 글이 되게 부끄럽거든요. 더구나 아이는 예를 들어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었다면 정말 많이 변했을 텐데 3-4년 만에 제가 다시 연락해서 네가 2015년에 쓴 글을 책에 인용해도 되느냐고 물었을 때 충분히 싫을 수 있겠죠. 그래서 인용 동의를 구하는 데 아주 공을 많이 들였어요. 첫 번째로는 어디부터 어디까지 인용할 것인지 정확히 이야기를 했고요. 둘째로는 이 글을 네가 몇 살 때 쓴 글이라고 명시하겠다고 말했어요. 세 번째로는 내가 어떤 맥락에서 너의 문장을 모셔오고 싶은지, 왜 모셔오고 싶은지를 자세히 얘기했죠. 그런 설득 메시지를 아이에게 보내고, 아이의 보호자 분들에게도 보냈어요. 결과적으로는 전원 승낙을 받았습니다.
오은: 이슬아 작가님이 글쓰기 교사로서 가장 멋진 점이라면 칭찬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무엇이 좋은지 구체적으로 밝혀서 글 쓰는 사람에게 용기를 주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이슬아 작가님은 제자들을 통해 많이 배웠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이슬아: 물론이에요. 일단 좋은 문장들이 수업에서 너무 많이 나와요.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고 느끼는 순간이 되게 많았고요. 아이들 앞에서 뭔가 말하고 떠들 때 ‘모르는 내용인데 떠들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가 있어요. 내가 무엇을 알고 말하는지, 모르고 말하는지를 알게 된 것이 컸죠.
오은: 그래서 ‘어린 스승들’이라는 말도 하셨는데요. 책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좋은 글이어서 나는 읽다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나의 일간 연재글 한 편보다도 함량이 높아 보였다. 이런 글을 읽으면 정신을 ‘똑띠’ 차리게 된다. 마음 속으로 자신에게 외쳤다. ‘이슬아 너 인마, 분발해야 돼, 인마!’(161쪽)” 저는 사실 작가님의 글을 읽을 때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이슬아: 성인보다 주로 청소년, 어린이들과 수업을 많이 하는데요. 그 시기의 인간들은 진짜 멋진 점이 바로 변한다는 거예요. 제가 이번 주에 뭐라고 얘기를 하면 다음 주에 변하거든요. 그 점이 너무 멋져요. 그래서 아주 조심스러워지죠. 저의 피드백이 곧바로 반영된다는 게 멋지고도 저를 긴장하게 하는 점이에요. 조심하게 돼요.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을 드릴게요. 먼저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영업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슬아: 홍은전 작가님의 『그냥, 사람』입니다. 저는 홍은전 작가님의 칼럼을 무조건 찾아 읽어요. 너무 중요한 글을 너무 잘 쓰시는 분이고요. 동시대의 칼럼 쓰시는 분 중 최상위권에 있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사람』에는 아주 다양한 이슈들이 아름답고도 아주 예리한 칼 같은 언어로 쓰여 있어요. 이 책을 읽는 데에는 약간의 마음의 체력이 필요해요. 한 챕터를 읽으면 여운이 커서 마음을 들여가며 읽어야 하거든요. 아마 <책읽아웃> 청취자 분들이라면 기꺼이 이 힘들고도 아름다운 독서에 동참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오은: 두 번째 질문, 『부지런한 사랑』이 한 권 있다면 누구에게 선물하고 싶으세요?
이슬아: 고민이 너무 많이 되는데요. 이 책이 딱 한 권 있다면 엄마한테 주고 싶어요.(웃음) 저희 엄마 복희 씨는 걸어 다니는 부지런한 사랑이기 때문이에요. 제가 별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 순간에도 잘 안 꺾이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냥 차분하게 나인 느낌? 그것은 엄마랑 사랑 많이 해서 그런 거란 생각을 해요. 제가 엄마한테 준 사랑도 엄마를 그렇게 만들었을 거예요. 아무튼 『부지런한 사랑』은 복희 씨의 딸이 아니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책이기도 하고, 복희 씨는 부지런한 사랑이 뭔지 너무 잘 아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런 엄마 복희 씨에게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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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시인)
2002년 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너랑 나랑 노랑』 『유에서 유』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등을 썼으며, 현재 강남대학교 한영문화콘텐츠학과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키치
2020.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