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자마자 고무나무 두 그루를 들였다. ‘그루’라고 표현하기에는 아직 작은 애들이지만. 사실 삼십 년 인생을 살면서 식물 키우기에 재능을 보인 적은 없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절망적인 수준에 가깝지. 이 말을 하면 측근들은 그래, 나도 식물 잘 못 길러 끄덕끄덕하다가도 ‘나는 선인장까지 죽여 봤어’ 하면 저런, 하며 심각한 얼굴이 된다.
그런 내가 식물을 무려 두 그루나 들이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집 근처 식물원 식물판매소에서 명절 맞이 원 플러스 원 행사를 한 거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원 플러스 원 하는 건 봤지만, 식물을 하나 더 끼워주는 건 처음 봤다. 후다닥 달려가서 커피를 테이크아웃 하듯 고무나무 한 세트를 골랐다. 딱히 올릴 곳도 없으면서 바닥에 쭈그려 앉아 인증샷도 찍었다. 그래, 이제 나도 반려식물을 기르는 사람이 된 거야!
그렇게 식물과의 동거가 시작됐다. 1일 차의 소감. ‘어머, 나 알고 보니 식물 사랑한다…’ 나는 이미 모르는 사이에 고무나무와 사랑에 빠져 있었다. 퇴근하고 돌아와 파릇파릇한 잎을 보면, 기분이 금방 좋아졌다. 그런데, 보람도 잠시, 고무나무는 점점 슬프게 변해갔다. 큰 잎을 뚝뚝 떨어뜨리더니 그나마 있는 잎도 추욱 처졌다. ‘하하… 가을이 왔으니까. 너희도 잎을 떨어뜨리는구나. 그래, 자연스러운 흐름이지.’하며 애써 외면하다가, 어느 날 정신 차려보니 제일 큰 잎 하나만 남기고 앙상해져 있었다. 으악!
눈물을 쏟으며 종이가방에 고무나무를 넣고 식물원에 달려갔다. “선생님, 제가 이 친구들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살아날 수 있을까요?” 차분한 성격의 직원분은 말했다. “네… 그래도 가지를 보니까 아직 희망이 있는 거 같아요….” 아니, 선생님. 나름 애정을 쏟았는데 도대체 뭐가 문젠가요?
흙이 너무 말라 있네요. 고무나무들은 직사광선에 두면 오히려 싫어해요.
-헉, 저는 일부러 햇빛을 찾아서 놔주고 과습할까봐 물도 적게 줬는데요.
내가 알지도 못하면서 정반대로 식물을 다루고 있었던 거다. 나름 잘해주려고 그랬던 건데... 물이 화분 밖으로 배수되지 않는 건 작은 화분에 분갈이를 해서 뿌리가 꽉 차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바로 큰 화분을 사서 옮겨 심고, 기존의 작은 화분에는 다른 식물을 사서 데려왔다. 올 때 팔이 너무 아파서 내려놓으려다 뻑!하고 부딪쳐서 화분 하나에 미세한 금이 가긴 했지만, 그렇게 응급조치를 받고 고무나무들은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오자마자 물을 흠뻑 줬다. 다시 예전처럼 파릇파릇해지기를 바라면서.
‘잘 해주려고 그랬어,라는 말은 변명이야. 상대가 좋아하는 걸 해줘야지.’ 문득 연애가 서툴던 시절을 떠올렸다. 상대가 좋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걸 해주면 되겠지 하는 단순한 생각에, 상대는 좋아하지 않는 걸 마구 해줬던 기억.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상대에게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여준다든가, 단 걸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 맛있는 디저트를 먹인다든가 하는. 근데 그건 상대가 좋아하는 게 아니었는걸. 그러면 애정이 전해지지 않는 게 당연하지. 상대가 뭘 좋아하는지 잘 살펴야지. 물도 충분히 주고, 너무 강한 햇빛보다 선선한 그늘에, 애정의 거리를 잘 가늠하면서. 그렇게 눈물겨운 깨달음을 얻으며 고무나무와의 동거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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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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