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방송인, 작가, 크리에이터…… 2014년 SNL에서의 첫 등장 이후 유병재라는 이름 앞에 따라오는 타이틀은 변화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삶의 어떤 단계에서든, 메모를 멈추지 않고 묵묵히 글을 쓰는 ‘작가’로서의 그는 늘 같은 모습이다. 『블랙코미디』 이후 3년 만에 출간되는 신간 『말장난』에는 짧고 깊이 있는 삼행시 201편이 담겨 있다. 『말장난』의 편집자와 유병재가 나눈 인터뷰. 두 사람의 솔직한 이야기를 공개한다.
두 번째 책입니다. 첫 책을 쓸 때와는 다른, 특별한 집필 동기, 즐거움, 만족감 같은 것이 있었나요?
첫 책 블랙코미디는 진지한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가벼워졌다면 이번 책은 한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무겁게 마무리 했습니다. 방송에서 1회성으로 휘발되는 삼행시들을 모아보자는 단순한 생각으로 접근했는데 쓰다 보니 새로운 가능성도 엿보게 되었고 진짜 시인이라도 된 냥 꼴값 떠는 순간도 솔직히 아주 잠깐씩 찾아왔던 것 같아요.
왜 하필 삼행시의 형식을 빌렸나요? 삼행시의 특별한 재미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무언가를 만들 때 어떤 제한을 두는 방법을 즐겨합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안 되는 팬미팅이라던지 웃으면 안 되는 생일파티, 아니면 리액션을 금지한 마술쇼라던지. 굳이 한계를 설정해두고 거기 안에서 노는 게 재밌어요. 삼행시 역시 첫음절을 제한했을 때 나오게 되는 그 말장난 특유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 수록된 200편 가까운 ‘짧은 시’들을 읽어가며, 인간 유병재는 눈물이 되게 많은 사람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눈물과 웃음이 유병재의 글쓰기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부터 눈물이 많았고 그걸 극복하는 방법으로 웃음을 택했던 것 같아요. 지금에서는 슬픔이 너무 소중한 웃음의 소재입니다. 안 섞일 것 같은 여러 가지 감정과 웃음이 서로 맞닿아 있는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후회> <상담> <거울> <개인사업자> <인건비> <상처> <자기소개서>처럼 지금의 우리를 대변해준다고 생각되는 글들이 <실검> <상한가> <꾸안꾸>처럼 ‘천재적’ 기지가 빛나는 글들보다 좋았습니다. 이 책을 통틀어 유독 마음에 드는 글이 있다면요?
부끄럽지만 마음에 드는 글들이 좀 됩니다.
기를 쓰고 잊으려 / 억지로 잊지 않으려 도 좋았고
거울 거짓 두 표제어가 책 거터를 기준으로 거울처럼 비춰진 것도 좋았고
세금 내다 보니까 / 월세 내다 보니까 도 좋았구요
대학입학이 출발 / 이렇게 자라주었구나. 요 연작도 좋았고
편리한건 너 / 견디는 건 나. 요것도 아주 기가 막혔고
사직사유서의 끝글자 맞춤도 아주 참신했고 개인사업자도 아주 속시원했고 직책 이름 시리즈도 아주 재치가 넘쳤다고 할 수 있는데 말장난이라는 표제어로 연달아 다섯 번 끝맺음 말을 만든 것도 장난 아니었죠. 많이 부끄럽네요. 그 외에도 아주 기가막힌 글들 투성이입니다.
삼행시의 표제어를 선정한 기준은 무엇인가요? 삼행시를 쭉 읽으며, ‘가족’ ‘관계’ ‘직장’ ‘분노’ 등의 주제가 특히 돋보였는데요. 유병재에게 이런 주제들이 중요한 까닭이 있나요?
제 경험도 있지만 주변의 이야기들을 많이 녹였습니다. 이전의 책 농담집을 ‘코미디언’으로서 썼다면 이번 책은 스스로 ‘감정 대리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써봤어요. 그러다보니 주변에서 공감하실만한 단어들 위주로 수집하게 되었습니다.
『말장난』 이라는 표제어에서 가벼움과 무거움을 오가는 유병재의 캐릭터가 엿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 단어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그렇게 봐주셨다니 너무 기쁩니다. 제가 이 책을 대하는 태도가 딱 그랬던 것 같아요. ‘에유 나 같은 게 무슨 시집이에요. 웃기지도 않어 증말.’ 그러면서도 일단 다음장 넘기면 이백편 정도 써져 있고. 무거워지고 젠체하려하는 나를 다잡는 의미가 컸던 것 같습니다.
어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나요?
댁에서 홈트 한번 하실 시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이니까 기왕에 사신 거 끝까지 읽어주실 분들이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글을 쓰고, 글을 생각하는 시간의 유병재는 어떤 사람인가요?
약간 좀 재수 없어지는 것 같아요. 워낙 친구도 말수도 없어놔서 구어체보단 문어체에 익숙해서 그런지 좀 신나 있는 모습이 영 꼴 뵈기 싫습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자기만의 노력이 있나요?
메모밖에 없는 것 같아요. 엄지 몇 번 움직이는 게 뭐 그렇게 귀찮다고 생각난 것들 못하고 까먹을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렇게 날려버린 글들 중에 진짜 세상을 뒤바꿀만한 것들도 있었는데..
이번에 펴낸 책에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문장의 여운이 짙습니다. 이 문장에서 시작하여 “사람을 살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위해서는?”이라는 질문을 받는다면요?
너무 쌩뚱 맞지 않나 싶어서 아직도 좀 부끄러운데 메이플스토리 확성기 아이템 같은 게 있어서 사람들한테 딱 한마디만 할 수 있다고 하면 그 말을 하고 싶습니다. 칼이든 말이든 글이든 서로 죽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살리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방법은 모르겠어요. 내가 그렇게 많은 거 바라는 게 아니거든요. 살리거나 뭐 잘 살게 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 서로 죽이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람 죽인 사람들이 다른 사람 죽인 다른 사람들 나무라는 꼴을 너무 많이 봤어요.
어떤 책들을 좋아하나요? 책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다면요? (서점: 서서 숨만 쉬어도 점점 기분 좋아져. 믿어봐)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라는 말을 맹신합니다. 기왕에 서점까지 갔으니 한번에 여러권 사오는 편인데 우선 독자로서 읽고 싶은 책들을 고른 뒤에 인스타에 올려서 보여주고 싶은 책을 골라서 함께 구매합니다.
『말장난』 을 통해 만난 독자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나요?
저는 기본적으로 만화를 좋아합니다. 저랑 비슷한 톤의 감정을 가진 책들도 좋아하고. 최근에 봤던 책은 네이선 파일 작가님의 <낯선 행성>은 귀여운 그림으로 방심 시켜놓고 생각해보게 만드는 게 아주.. 영악하고 너무 좋습니다. 황석희님의 번역도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듭니다. GAZEROSHIN 작가님의 <그리 대단치도 않은 것들을 사랑하려>는 제가 원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줘서 참 고마운 책이었습니다. 김정연 작가님의 <혼자를 기르는 법> - 너무 너무 좋아서 난 왜 이렇게 못 쓸까 우울해지게 만드는.. 이무기 작가님의 <곱게 자란 자식>은 일제강점기 이야기인데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과 연출력에 무릎을 치다 연골이 나갈 정도.. 닉 드르나소의 <사브리나>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꼰대 저격, 일침, 차마 하지 못한 말을 대신 해주는 사람…… 유병재를 둘러싼 키워드는 곧 당신이 ‘청춘의 표상’처럼 보이게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많은 것들이 변하니, 고민이 많을 것 같습니다. 청춘이라기에 나이를 먹어가고 있고, 전보다는 셀러브리티에 가까운 입지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이 지점에 대한 당신의 고민이 궁금합니다.
믹 폴리라는 프로레슬러가 있습니다. 요즘 많이 알려진 부캐, 기믹 개념의 조상격인 레슬러인데 기본적으로 기믹이 많습니다. 로얄럼블이라는 등퇴장식 매치에서는 한 경기에 세 가지 다른 기믹으로 등장하기도 했는데요. 팔년 전에 쓴 일기에 믹 폴리를 보고 배우자는 글이 써있더라구요. 대충 난 어차피 변해갈거니까 그거 받아들이자라는 말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잊혀질 권리가 없어진 시대에 사는 만큼 스스로 변화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난 어차피 변할 거에요.
많은 사람들이 유병재를 보고 좋아하고, 웃는데 정작 본인이 박장대소를 한다든지 하는 건 보지 못한 것 같아요. 자연인 유병재는 무엇을 좋아하나요? 무엇이 웃긴가요?
안 그래도 잘 못 웃는 게 평생 고민인데 그나마 고양이 동영상이나 프로레슬링 보면 좀 웃는 것 같습니다.
싸이월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직업인 유병재가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는 다음 영역은 어디인가요? 어떤 채널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싶나요?
요즘은 글 쓰는 게 재밌습니다. 어떤 플랫폼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글 쓰는 일을 좀 늘려가고 싶어요.
현실적인 문제가 사라진다면, 가장 해보고 싶은 시도는 무엇인가요?
올해 초에 미니멀, 무소유에 꽂혀서 기획했던 게 있습니다. 미니멀라이프를 선언하고 집안의 필요없는 물건들을 버리기 위해 황금 바퀴달린 최고급 쓰레기 상자를 산다던지 그 물건을 플리마켓으로 내다 판 수익금으로 백만원을 호가하는 법정스님의 무소유 초판 양장본을 구입한다는 간단한 촌극이었는데 플리마켓을 못 여는 상황이 되어서 대충 한두달 뒤에 상황 좋아지면 다시 해보자 했는데 이렇게 까지 일이 커질 거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뭐가 됐건 얼굴들 좀 뵙고 싶어요. 재밌는 것들 많이 기획해놓았는데.
두 권의 책을 쓰셨어요. 다음 책을 쓴다면 어떤 형태가 될지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소설이나 꽁트 같은 다른 분야의 집필도 염두에 두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소설 쓰고 있습니다. 쓰고 있다고 말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분량인데 일단 그래도 뭔가 계속 쓰고는 있습니다. 영상매체로 선보이게 될 것 같은 스케치 코미디 대본도 꾸준히 쓰고 있습니다.
표정과 멘트, 말투, 행동 모든 것을 총동원해 어떤 결과를 도출해내는, 영상 매체에 특화된 동적인 코미디 콘텐츠와 텍스트라는 정적인 콘텐츠. 두 영역으로 대중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두 영역의 콘텐츠를 동시에 만들어내는 데 유병재가 하는 고민이 궁금하다. 특히나 유튜브와 브라운관을 종횡무진하며 활발히 활동하는 중에 신간 집필을 생각한 계기가 궁금하다. 어떤 니즈가 있었나?
일 시작하고 한 십년 정도는 그래도 매년 뭔가 한두가지 새로운 일들을 벌였었던 것 같은데 유독 올 한해는 심심하게 보냈던 것 같았어요. 안정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초심자의 열정이 남아있는 상태라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은 유병재에게서 무엇을 원할까?
아유 그건 죽을 때까지 모를 것 같아요. 그냥 전 뭘 좋아하시는 지 모르니 이것 저것 준비해놓는 수밖에. 굳이 따지자면 쟤보다야 내가 낫지 하는 안정감?
그럼 유병재는 사람들에게서 무엇을 원하나? 어떤 사람으로 비추어지길 바라는지.
원앤온리까지는 아니어도 “쟤 같은 애 많지는 않았어.” 정도 소심히 바라봅니다.
*유병재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2011년 뮤직비디오 [니 여자친구]로 일약 ‘인터넷 스타’로 떠올랐다. 이어 2014년 케이블 방송 tvN [SNL 코리아]에서 작가와 연기자를 겸하며 대중에게 이름 석 자를 각인시켰다. 나아가 2015년과 2017년 MBC 예능 [무한도전]에 출연하며 지상파 채널에 본격적으로 입성했다. 2017년 8월, 스탠드업 코미디쇼 [블랙코미디]가 티켓 판매 1분만에 완판되며 화제를 모았고, 코미디 신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는 평을 받았다. 방송과 공연뿐만 아니라 평소 SNS를 통해 팬들과 소통해온 그는 자신의 신념이 담긴 해학적인 글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블랙코미디』 『말장난』 등을 펴냈다. |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