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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유희경 “당신의 자리에서 반 발짝 나아가는 책”

산문집 『반짝이는 밤의 낱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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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은 독자가 알고 있는 세계보다 반 발짝 앞선 것이라 생각해요. 이 산문집의 글들은 오롯이 저만의 것은 아니예요. 열린 이야기에 독자들이 들어가서 무언가를 발견하도록 하고 싶었죠. (2020.10.26)


한 사람을 통과한 시간은 어디로 갈까? 지난 10년간 유희경 시인의 마음에 찰랑거리던 낱말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됐다. 시집서점 ‘위트앤시니컬’의 책방지기이기도 한 그는 무수한 밤을 보내며 서점의 불을 밝히고 글을 썼다. 세계의 첫 밤처럼 또 하나의 밤이 밀려오는 동안, 시인의 마음에는 무엇이 남았을까? 아마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야기일 것이다. 이 글들은 같은 밤을 거쳐온 당신에게 시인이 건네는 편지이므로.

유희경은 시인이자 시집서점 ‘위트앤시니컬’의 책방지기다. 시집으로 『오늘 아침 단어』 『당신의 자리-나무로 자라는 방법』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이 있다. 그는 시를 쓰는 틈틈이 작은 글을 썼다. 『반짝이는 밤의 낱말들』은 그렇게 10년 동안 모은 글이다.



세계의 첫 밤, 당신에게

시집을 출간하면 마음앓이를 하신다고요. 이번 산문집은 어땠나요?

시집과는 다른 의미로 마음앓이를 했어요. 시는 한번 완성되면 손대지 않는데, 이번 산문집은 기존의 글을 많이 고쳤거든요. 독자에게 친절하게 다가가려고 애썼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생기고 반응이 궁금하기도 했죠. 신경이 쓰여서 두 번은 못 하겠다 했는데, 지금은 평온해졌어요.(웃음)

“이 책이 시와 산문, 소설과 에세이 중간쯤 놓였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처음에 어떤 책을 상상하셨어요?

세상에 없는 양식의 책이었으면 했어요. 저는 좋은 책은 독자가 알고 있는 세계보다 반 발짝 앞선 것이라 생각해요.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건 그렇지 않건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 더 나아가는 거죠. 읽었을 때, ‘나도 이거 알아’하고 공감하는 동시에,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거예요. 그러려면 작가인 저도 저만의 사적인 기록에서 한발 나와야 하는 거죠.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너무 개인적인 기록이 되지 않도록 시와 산문의 중간 지점을 찾으신 거군요.  

그렇죠. 가령 『월간 채널예스』에 연재했던 시집서점 칼럼은 ‘위트앤시니컬’을 운영하는 제 상황에 특화된 이야기지만, 이 산문집의 글들은 오롯이 저만의 것은 아니예요. 열린 이야기에 독자들이 들어가서 무언가를 발견하도록 하고 싶었죠.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시적인 요소를 덧붙여주는 것이었고요. 그래서 시도 산문도 아닌 그 무언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10년간 써 오신 글을 묶으셨어요. 꽤 긴 시간인데요.

오래 망설였죠. 그사이에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시집을 냈고 큰 수술을 했고 서점을 열기도 했어요. 그 과정에서 가치관이 변하다 보니 고칠 부분도 많은 거예요. 큰 수정이 4번 정도 있었어요. 주어를 전부 ‘나’로 바꾸기도 하고, 이야기를 더 쉽게 풀어 보기도 하면서요. 고치면서도 잘하는 짓일까 의심이 되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누가 한 번씩 흔들어요. 저번 원고가 낫지 않아 하고.(웃음)

수정 이전으로 돌아가신 적도 있나요?

아니요. 한번 결정하면 후회하지 않는 성격이에요. 문제가 생겨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가요.

10년 전의 자신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예전보다 무뎌졌죠. 원고를 다시 보면, 이렇게까지 예민할 일인가 싶은 것도 있어요. 물론 많이 알게 되어서 너그러워진 것이기도 하고요.



다시 조용한 밤의 시간으로

시 쓰기와 산문 쓰기는 어떻게 다른가요?

이번 산문집은 시 쓰기와 기본적인 태도는 같았어요. 물론 그 외의 산문들은 시와 생각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서 서로 방해될 때도 있어요. 연재 시기가 겹치기라도 하면 곤란했죠. 시를 쓰다 산문으로 가면, 이렇게 쉽게 나아가도 되나 싶고, 산문을 쓰다가 시로 가면 이렇게 멈추지 않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고. 같은 주제라도 산문은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분명하다면, 시는 설명을 달아서는 안 되거든요.

시와 산문에 ‘당신’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시는 것 같아요. 이번 산문집도 ‘당신에게’로 시작하죠.

정중하게 ‘너’를 대하고 싶었는데 그런 단어가 ‘당신’밖에 없었죠. 교정볼 때, 이 단어가 너무 반복되어서 ‘그대’로 바꿔볼까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제게 어울리는 단어는 ‘당신’이더라고요. 문득 부모님이 서로를 당신이라 불렀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두 분이 사이가 좋으셨는데, 자식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부르는 이름이 ‘당신’이었던 거죠.

주된 정서가 ‘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밤도 낮도 아닌, 저물 녘의 시간이요.

기형도 시인이 ‘푸른 저녁’이라고 표현했죠. 밤이 찾아오기 직전, 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닌 시간. 모든 것이 파랗게 변하는 풍경에 대한 기억도 많고, 이 시간에는 하루가 끝났다는 안도감이 찾아오잖아요. 골목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밥 짓는 냄새… 이 모든 것들이 마음을 평온하게 하죠. 글을 쓰면서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서 이 시간을 자주 불러내는 것 같아요.

프롤로그에는 ‘세계의 첫 밤’이 에필로그에는 ‘새해의 밤’이 나와요. 

밤은 계속 반복되기 때문에 그런 장치를 했어요. 계속 똑같은 밤이 반복되지만, 그 시간들을 다르게 만드는 건 내 관점의 시간성이거든요. 제 시에서 반복되는 주제이기도 해요.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다양한 마음의 부침을 겪고는 결국 조용한 ‘적요’ 상태로 돌아오죠.

사실 고요한 마음이 되고 싶다는 바람에 가까워요.(웃음) 산문집의 ‘나’는 현실의 저와 완전히 같지 않고, ‘바라는 나’이기도 하고 ‘그때 그랬어야 했던 나’이기도 해요. 그런 태도가 보였으면 해서 “그땐 그랬어”하는 시제를 뒤에 깔아 두기도 했죠. 힘든 일이 있어도 지나가고 나면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지켜보면서 “너무 힘들어하지 마라” 다독이고 싶은 거죠.

우리가 경험하지 않았지만, 알고 있는 듯한 익숙한 감정을 ‘전생의 기억’이라 표현하셨어요. 

저는 새롭게 느끼는 감정도 완전히 낯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기쁨, 슬픔, 공포 등 기본적인 감정은 이미 우리가 이미 체험한 것이죠. 그렇다면 어떤 것을 두려워하고 무언가를 좋아하는 이 감정들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요? 매일 반복되는 밤을 거슬러 올라가면 ‘세계의 첫 밤’이 있듯이, 감정에도 근원이 있었겠죠. 현재의 내가 직접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 있었던 것을 ‘전생’이라 은유한 거예요. 이 전생은 ‘이전’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전(全)’ 생에 걸쳐서 배워야 하는 감정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해요. 너무 엄청난 것을 겪은 순간, 삶을 다 살아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고는 하잖아요.



시 읽는 사람들은 닮았어요

현재의 울음이 아니라, 지나간 울음을 쓰셨어요. “어디서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 소리, 가깝게 들리다가 이내 멀어지며 점점 사라져간다.”(「일기」) 

저는 눈물이 많은 사람은 아니에요. 그래서 뒤늦게 ‘그때 내가 울었던 거구나’ 알게 될 때가 있어요. 한바탕 울면서 해소한 뒤에 납득하고 화해하는 순간으로 볼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 해소의 순간마저 지나가 버리면 무엇이 남는 걸까요?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건지 다른 의미가 생긴 것인지 알 수 없죠. 제 시에 “낡고 흔한 울음”이라는 표현을 넣은 적이 있어요. 이 구절을 떠올렸다면, 그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 교정과 운동장 풍경도 등장하죠. 작가님은 어떤 소년이었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잘 삐치는 아이였어요.(웃음) 혼자 마음이 상해서 집에 가기도 하고, 친구들도 “희경이는 너무 잘 삐쳐”라고 말했죠. 어린 저에게는 마음에 일어나는 작은 소요도 중요한데 상대는 아니니까 ‘왜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 하고 원망했던 거죠. 지금은 예전에 비하면 강철 가슴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이해를 못 받는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거든요.

시니컬하기도 했나요?(웃음)

네, 마음을 다치지 않으려고 까칠했던 것 같아요. 어느 날 서점에 손님이 찾아와서 산문집에 사인을 받고는 저를 ‘오빠’라고 부르더라고요. 고등학교 때 같은 교회를 다녔대요. “오빠는 친절하고 시크한 사람이었어요.”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그렇게 까칠하고 시니컬했나 싶더라고요.(웃음)



시집서점 ‘위트앤시니컬’이 얼마 전 4주년을 맞이했어요. 처음 문을 열 때, 김소연 시인이 “이 공간에 온 누구도 소외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덕담을 하셨죠. 서점이 어떤 공동체가 되어가는 것 같나요?

처음에 기대했던 대로 느슨한 공동체가 되어가고 있어요. 서점에서 사람들은 시집을 매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교류하기도 해요. 행사에 모이는 사람들을 보면, 시를 읽는 독자들은 성향이 닮았어요. 적극적으로 끌어들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섞이죠.

서점을 운영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것이 있다면요?

손님들이 ‘위트앤시니컬’의 분위기를 누릴 기회를 더 만들고 싶죠. 서점이 신촌에 있을 때는 들어와 앉아서 충분히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었거든요. 지금의 ‘위트앤시니컬’은 책을 사면 빠져나가는 구조로 되어 있어요. 앉을 공간을 마련하는데도 아직은 쉽지 않아요. 앞으로 사람들이 편하게 시를 읽고 머무르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게 과제예요.




*유희경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에서 문예창작을,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극작을 전공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이 되었으며 시집으로 『오늘 아침 단어』 『당신의 자리-나무로 자라는 방법』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이 있다. 시를 쓰는 틈틈이 작은 글을 썼다. 『반짝이는 밤의 낱말들』은 그렇게 10년 동안 모은 글이다.



반짝이는 밤의 낱말들
반짝이는 밤의 낱말들
유희경 저
아침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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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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