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면 날마다 오는 코미디가 아니에요. 이번 추석 연휴 극장가의 한국 영화는 코미디가 강세다. 감동 서사를 지향하는 <담보>는 성동일과 김희원 콤비의 코믹 연기를 포함하고 있고, 형사물을 표방하는 <국제수사>는 좌충우돌하는 시골 촌구석 형사들의 코미디가 중요한 정서로 작용한다. 그리고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은 처음부터 끝까지 코미디로 밀어붙여 ‘죽여줘? 웃겨줘?’ 관객들이 웃지 않으면 입장료를 그대로 돌려줄 태세다.
영화는 제목처럼 죽지 않는 인간들이 밤을 배경으로 소동을 벌인다. 죽지 않으면 그게 인간인가? 아니다.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에서는 ‘언브레이커블’이라고 불린다. 브루스 윌리스가 무쇠 팔, 무쇠 다리로 나오는 <언브레이커블>(2000)이 있지 않았나? 그것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 이 영화의 죽지 않는 인간들은 외계 생명체다. 터미네이터처럼 벌거벗은 남자의 몸을 하고 지구의 개천에 슝~ 하고 떨어져 인간들 속에 섞여 살고 있다.
인간과 구별되지 않는 언브레이커블은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야심한 밤에 무인 주유소를 찾아 주유기를 입에 대고 휘발유를 주입해 ‘만땅’으로 배 속을 채운다. 그걸 목격한 이가 미스터리 연구소 소장 닥터 장(양동근)이다. 닥터 장이 그 사실을 일러바치는 이는 소희(이정현)다. 소희는 남편 만길(김성오)이 외로운 밤이면 밤마다 사라지자 이게 무슨 일이냐고 닥터 장을 찾았다가 남편이 언브레이커블이라는 사실을 알고 크게 놀라… 지는 않는다.
조금 놀라는 대신 일을 꾸민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써는 고교 동창 세라(서영희)를 불러 함께 남편 만길을, 아니 이놈의 언브레이커블을 전기 충격으로 졸도 시켜 사지를 절단해 산에 묻으려고 하는데, 별안간 또 한 명의 고교 동창 양선(이미도)이 찾아와 내 사랑 어디 있냐고, 소희는 네 사랑이 누구냐고, 양선은 닥터 장이라고, 그에 소희는 도대체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이냐고 ‘소희둥절’ 하다가 언브레이커블의 역공을 받고 쫓기는 신세가 된다.
도대체 줄거리의 논리는 어디다 엿(?) 바꿔 먹었는지, 우측 깜빡이를 켜고 운전대를 좌측으로 돌려 예상 밖으로 놀래키는 정서가 <죽지 않는 인간의 밤>을 연출한 신정원 표 코미디의 백미다. 신정원 감독은 공포물인 줄 알았는데 실은 코미디였던 <시실리 2km>(2004)와 크리처물인 줄 알았는데 결국, 코미디였던 <차우>(2009)와 한국형 슈퍼히어로물인 줄 알았는데 역시나! 코미디였던 <점쟁이들>(2012)로 팬들의 마니악한 지지를 받고 있다.
늘 주어진 장르의 길을 의도적으로 엇나가 코미디로 방향을 트는 신정원 감독의 개성은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에서도 여전하다. 외계인이라고 하는데 휘발유 마시는 정도만 제외하면 어디가 외계인인 줄 알 수 없는 죽지 않는 인간을 외계인이라 퉁치고, 이 외계인들이 지구를 정복하러 왔다는데 한국이 다 뭐야, 서울은커녕 여의도의 밤섬 하나도 차지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오합지졸의 병력으로 밀어붙이는 기세가 우스워 말 그대로 웃게 되는 것이다.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신정원의 모난 코미디의 재능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도 크게 터질 듯 키득키득 이상으로 터지지 않는 이 영화의 웃음 포인트에 대해서는 작정하고 웃으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해 드는 일종의 배신감이 있다. 취향을 타는 코미디의 특성상 신정원 감독의 개성을 더 살리는 쪽으로 더욱더 심하게 마구잡이로 나갔어도 괜찮았을 텐데 적정선에서 멈춘 느낌이다.
이왕 외계인이라고 설정한 거 예상 못 한 방식으로 정체를 과장했으면 좋았을 텐데 안전한 방식으로 머뭇거린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은 신정원과 장항준의 각본에 세 명의 작가가 다시 손을 본 각색으로 크레딧이 표기되어 있다. 모난 개성을 벼린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붙어 뭉툭하게 갈아버렸다고 할까. 신정원 장르의 관객에 핀셋 맞춤하기 보다 추석 연휴의 평균치 관객을 상정한 결과가 어떻게 흥행으로 돌아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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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