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달, 이봄, 아르테의 마케터를 거친 뒤 잠시 숨을 고르던 정유선 대표가 세미콜론과 을유문화사의 협업 제안을 받고 ‘유선사’(이름은 전고운 영화감독이 지었다!)라는 독립 브랜드를 론칭한 건 올해 3월의 일이다. 의식하진 않았지만, 출판 마케터로 일한 지 딱 10년. 어쩌면 상징적인 통과의례 시기로 읽힐 만한 시점이었다. ‘어떤 회사를 가야 할까?’가 아닌 ‘이제 어떤 길을 가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유선사’로 완성되면서 정유선 대표의 마케팅 커리어가 다시 시작된 셈이다. “마케터란 결국 무엇인가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행동이 시작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한결같은 건, 젊은 독자를 타깃으로 한 마케팅에서 감도 높은 언어 센스와 추진력으로 최대치의 결과를 내던 일급 마케터의 애티튜드다.
베스트셀러보다 브랜딩
세미콜론, 을유문화사와는 SNS 및 온라인 마케팅, 이봄과는 도서 기획 및 마케팅 콘셉팅 위주의 일을 진행한다고 들었다.
현재는 인스타그램 위주의 마케팅을 맡고 있다. 매주 각 출판사 담당자와 일주일 분량의 인스타그램 콘셉트와 스케줄을 논의한다. 세미콜론은 팔로어 1700명에서 시작해 현재 4000명, 을유문화사는 7500명에서 시작해 현재 1만 명을 조금 넘는다. 개인적으로 SNS에서 중요시하는 건 ‘좋아요’도 있지만 ‘저장’ 숫자다. 이봄은 올해 4월부터 함께 기획한 책이 가을에 나올 예정이다.
브랜드 마케팅을 하면서 염두에 둔 전략이 있을까?
출판 마케팅을 하면서 늘 염두에 두는 게, 베스트셀러 못지않게 브랜딩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예전엔 어떻게 하면 책을 많이 팔까 고민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브랜딩해서 책을 많이 팔리게 할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SNS에 각각의 출판사에 맞는 컬러를 입히려는 건 그 때문이다. 세미콜론은 최대한 재미있게, 친근하게, 밝게, 을유문화사는 독자들의 지적이고 우아한 심리를 건드리게 하려고 한다.
SNS 활용에서 ‘made in 유선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포스팅 가이드라인이 있을까?
첫째, 팔로어 성향을 파악하고 대화하듯 말한다. 둘째, 기왕이면 예쁘게, 잘 모를 때는 내 눈에 먼저 예쁘게. 셋째, 재미있게, 자꾸 찾아와서 보고 싶게. 넷째, 시류 및 날씨에 맞춘 유동적인 업로드. 언제부턴가 ‘나’, ‘나라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직장인 기준으로 정유선의 심리 상태를 적용해 아침ㆍ점심ㆍ저녁으로 업로드 일정을 짰다. 아침에는 진취적, 점심은 밝고 유쾌하게, 저녁에는 감상적, 위로 등 톤이 다르다. 날씨도 마케팅에선 중요한 판단거리다. 독자들이 제일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좋고 나쁨을 떠나 스타벅스 벚꽃 에디션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마케터의 3요소
아르테에서 일할 때 론칭한 ‘책수집가’라는 북클럽이 꽤나 회자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팀원들과 회의를 거치면서 북클럽은 너무 거창하고 회원 관리도 힘드니 SNS에서 재밌게 할 수 있는 걸 찾다가 ‘북 컬렉터’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풀어보니 ‘책 수집가’인데, 발음이 입에 붙고 느낌이 좋았다. 예전부터 마케팅에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 네이밍이다. 당시 신간이 『고슴도치의 소원』이었는데, 서포터즈 이름을 첫 글자만 따서 ‘도치스’라고 지었다. 댓글이 1000개 가까이 붙었는데, 네이밍을 칭찬하는 내용이 정말 많았다.
마케터로서 보람과 애착을 느낀 책을 꼽는다면?
『곰탕』이다. 그 어렵다는 한국소설 시장에 등단도 하지 않은 신인, 내용도 알 수 없고 제목도 ‘곰탕’이니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은 후 마케터로서 확신이 섰다. 독자들이 한번 펼치면 뒷얘기를 궁금해할 거라 판단해 아예 2권짜리로 만들었다. 시작은 난항이었다. SNS에 비호감 리뷰가 올라오고 1권 판매부터 쉽지 않았다. 여기서 마케터가 굴하면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독자에게 책을 대변하는 첫 번째 주자가 마케터 아닌가. 자신감과 확신으로 무장하고 3주 동안 꾸준히 책 관련 포스팅을 했더니 호감 섞인 리뷰가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고. 결국 베스트셀러가 됐다.
요즘은 저자도 마케팅의 수단 중 하나다. 수많은 저자와 마케팅을 진행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저자는 누구일까?
굳이 꼽자면, 『잘돼가? 무엇이든』을 쓴 이경미 감독님. 『보통의 존재』를 쓴 이석원 작가님.
다른 출판사의 마케팅을 보면서 가장 탐났던 사례가 있을까?
민음사의 ‘워터프루프 북’은 정말 센세이셔널하다고 생각했다. 민음사에서 시도하는 특별판, 특히 컬래버 굿즈들은 다양한 분야에 관심 많은 사람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닌가 싶다.
10년 차 마케터로서 2020년 9월 출판 마케팅과 관련해 가장 효과적인 툴을 꼽는다면?
정말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마케팅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올해만 해도 코로나, 장마 등으로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독자들도 그때그때 기분과 상황이 변한다. 핵심은 하나다. 마케팅 대상인 책에 대해 콘텐츠가 마음을 건드렸거나 확신이 선다면 어떤 툴이든 상관없이 독자에게 주저함 없이 소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결과는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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