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온 책 『스토너 초판본』, 펼치면 4m가 되는 그림책 『비가 올까 봐』, 잘 팔리는 책들의 비밀을 찾아 나선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를 준비했습니다.
톨콩(김하나)의 선택
존 윌리엄스 저/김승욱 역 | 알에이치코리아(RHK)
표지를 보면 뭔가 범상치 않죠. 1965년에 『스토너』가 처음 나왔을 때의 디자인으로 그대로 만든 특별판이에요. 새로 나온 거죠. 그 전의 『스토너』 표지에는 연필 같은 걸로 그려진 남성 얼굴이 있었고 얼굴의 반쪽은 책이 쌓여있는 걸로 표현됐었는데, 그 표지도 아주 강렬하고 인상이 남았었는데요. 저는 책을 다 읽은 다음에 초판본 표지를 보니까 ‘책의 내용과 아주 닿아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토너』는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의 이름입니다. 처음 소설이 시작하면 윌리엄 스토너가 죽었어요. 이 사람의 생애에 대한 간략한 코멘트로 시작해요. 스토너는 대학 교수였는데 빛나는 성취를 이루었거나 대단한 업적을 세운 사람이 아니고, 끝까지 정교수가 되지 못하고 은퇴했고, 학생들이 우러르고 마음속 깊이 간직하리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없어요. 그냥 학생들의 기억에 묻혀가겠죠. 그렇게 시작을 하고, 다시 스토너의 생애를 훑고, 맨 마지막에 스토너가 눈을 감는 걸로 이야기는 끝이에요.
스토너는 농가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엄마아빠는 대지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농사를 짓는, 그 삶에 대해서 의문을 갖지 않고 살아가는 부부였고요. 그들이 스토너를 멀리 떨어져 있는 대학에 보내기로 합니다. 대학에 가게 되면 새로운 농사 기술 같은 걸 습득해서 소출을 높이고 더 나은 방식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스토너는 대학에 가서 토양환경 같은 것들을 공부합니다. 아주 바쁘고 육체적으로 힘들고, 그렇지만 해야 하는 일이니까 묵묵히 해나가고 있었죠.
그러던 대학교 2학년이었어요. 모두가 들어야 하는 영문학 수업을 들었습니다. 스토너는 이 수업을 들으면서 외워야 될 것도 많고 모르는 세계도 너무 많아서 공부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영문학에 대해서 관심이나 소양도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수업 시간에 셰익스피어 소네트를 읽습니다. 교수가 시를 읽고 나서 학생들에게 ‘이 소네트의 의미가 뭐지?’라고 물어봐요. 스토너는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교수는) 책을 보지 않은 채 시를 읊고 다시 한 번 스토너에게 말을 걸어요. ‘셰익스피어가 30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자네에게 말을 걸고 있네. 스토너 군, 그의 목소리가 들리나?’ 스토너는 자신이 한참 동안 숨을 멈추고 있었음을 깨달았고 허파에서 숨이 빠져나가는 것을 인식하고 그리고 강의실 안을 둘러보는데, 그런 장면이 약간 붕 떠있는 것처럼 묘사가 되어 있어요. 결국 ‘이 소네트의 의미는...’이라고 말은 하고 싶지만 뭔가 눈이 흐릿하게 변하면서 말을 끝마칠 수가 없게 돼요.
바로 이 장면이, 제가 지금 약간 격앙되어서 이 부분을 읽었기 때문에 더 드라마틱하게 들렸을 수는 있지만, 책으로 읽으면 이렇지는 않아요. 그런데 이 사람에게 뭔가 큰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감지할 수가 있죠. 지금까지 스토너는 흙에서 자라난 사람처럼 내내 농군으로서 일을 하고 더 나은 농사를 짓기 위해서 공부를 하다가, 농사와 전혀 상관없는 오랜 세월 자기가 쓰고 있는 언어로 만들었던 문장들 그리고 그것이 담고 있는 세계에 접속하게 되고, 이로 인해서 거대한 사랑이 시작되는 거죠.
그냥의 선택
김지현 글그림 | 달그림
오랜만에 그림책을 가지고 왔어요. 그림책을 읽을 때는 항상 시각적인 즐거움이 있지만, 이 책은 특히나 그랬습니다. 판화로 된 그림책인데요. 병풍 제본으로 되어 있어요. 마치 아코디언처럼 책장이 접혀 있어서, 넘기면서 보도록 되어 있는데요. 책을 펼치면 무려 4m의 그림이 나옵니다. 우리가 흔히 책을 보는 방식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책장을 넘겨가면서 끝장까지 읽으면 이야기의 전반부가 끝나요. 그리고 다시 한 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책장을 펼치면서 읽으면 이야기의 후반부가 나와요.
가장 첫 페이지를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줄 지어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어요. 맨 뒤에 우산으로 얼굴을 폭 가린 채 걸어가고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가 오지 않아도 언제 올지 모르니까 우산을 써야 해”라는 첫 문장이 나옵니다. 다른 사람들은 우산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걸로 봐서 화창한 날씨인 것 같습니다. 한 장을 더 넘기면, 공원 같이 보이는 곳에서 사람들이 한가로운 시간을 보냅니다. 앞장에 나왔던 그 한 사람만 여전히 얼굴을 가리고 우산을 쓴 채 걸어갑니다. 그리고 두 번째 문장이 나옵니다. “갑자기 비가 올지도 모르잖아.” 다음 장에는 “정말 비가 오면 어쩌지?”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앞에서는 ‘비가 올지도 모르니까 항상 우산을 쓰고 다녀야 해’라고 했으면서 진짜 비가 올까 봐 걱정을 해요.
그런데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한 장을 더 넘기면 비가 점점 많이 내리고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비를 맞고 있는 개도 있고요. 지금까지 우산 속에 얼굴을 가리고 있던 인물이 우산을 옆으로 기울이면서 얼굴의 윤곽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비를 맞고 있는 개 앞에 멈춰서 있는 모습입니다. 이어지는 장면을 보면 바람이 불면서 우산이 꺾이고 뒤집어지는 상황이에요. 주인공의 우산도 홀랑 뒤집어졌는데, 그 우산을 비 맞는 강아지에게 씌워주고 자신은 비를 맞으면서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뒤에 이 둘은 어떻게 됐을까요?
단호박의 선택
한승혜 저 | 바틀비
‘잘 팔리는 책들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고요. 표지 위쪽에는 “베스트셀러 읽어요? 말아요?”라고 쓰여 있습니다. 저자가 베스트셀러를 읽고 서평을 남긴 책입니다. 한승혜 저자는 <서울신문>과 <오마이뉴스> 등에 여성과 육아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베스트셀러’와 ‘베스트셀러 현상’이 조금 다른 것 같다고 이야기해요. 일반 독자는 베스트셀러 도서 자체에 관심을 둔다는 거예요. ‘이 책이 요즘 많이 팔린대, 나도 읽어볼까?’ 하고 읽게 되는데, 비평가나 기자나 출판계 관계자들은 ‘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지?’ 하면서 현상을 분석하려 한다는 거죠. 결국은 그 현상을 분석하는 데 그치고 베스트셀러를 안 읽어요. 실제로 출판계에서는 베스트셀러를 더 안 읽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베스트셀러가 사회를 비추는 청사진이나 뢴트겐 광선 같은 게 아니라 ‘저 출판사는 저렇게 마케팅을 했네, 우리도 비슷하게 해보자’라는 마케팅 전략 수립에 필요한 소재로만 사용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비평가들은 대개 양서를 소개하는 걸 목표로 하잖아요. 베스트셀러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이건 정말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은데’ 싶은 책을 주로 비평하게 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베스트셀러를 비평하는 사람은 없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모두가 베스트셀러를 읽고, 베스트셀러가 잘 팔리고, 베스트셀러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작 베스트셀러에 대한 비평은 없어요. 저자가 그거에 문제의식을 느낀 거죠. ‘왜 사람들이 베스트셀러에 대해서 이야기를 안 하는 거야? 나라도 비평을 해봐야겠다’ 하고 작정하고 베스트셀러를 독파하고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1부부터 5부까지 나누어져 있는데요. 1부에서는 자기계발서를 읽어나가기 시작하고요. 2부에서는 힐링서를 읽고, 3부에서는 소설을 읽고, 4부에서는 책을 내기만 하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요. 5부는 인문서나 사회를 바꿔나가는 종류의 베스트셀러 이야기를 합니다.
베스트셀러를 맥주에 대한 취향에 비유한 부분이 있는데, 이 책을 굉장히 잘 설명해주는 내용이라고 생각돼요.
“누구나 자신만의 취향을 가질 수 있지만 그 취향이라는 것은 결국 다양한 경험이 바탕이 된 뒤에야 제대로 구축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과거의 나는 말로는 맥주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맥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셈이다. 맥주와 관련하여 아무런 취향도 갖지 못했던, 말하자면 맥주 초보였던 것. 물론 이렇게 말해도 여전히 맥주에 대해 잘 모른다. 이전보다 약간 나아졌을 뿐. 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베스트셀러를 주로 읽는 사람은 독서 초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기는 하되 자신만의 특별한 취향에 의거하여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서점에 갔다가 뭘 사야 할지 몰라 거기 전시된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보고 고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맥주를 사러 갔다가 수십 가지 제품 사이에서 뭘 골라야 할지 몰라 방황하다 결국 어디선가 들어본 유명한 순서로 택하곤 했던 과거의 나처럼 말이다.”
저자가 베스트셀러를 읽는 독자에 대해서 초보라고 비난한다거나 일반화시키지는 않았습니다. 베스트셀러를 읽는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경험이 부족해서 혹은 경험이 없어서 혹은 경험이 다른 사람들과 달라서 베스트셀러를 선택할 수 있다, 따라서 경험을 더 많이 쌓으면 쌓을수록 자신의 독서 취향도 더 넓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