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보존을 위한 지독한 몸부림의 결과다. 음반은 모순되는 두 자아, 두 세계가 충돌해 하나의 완전한 존재가 탄생하는 순간을 담았다. 스스로에 대한 회의와 부정 그리고 변화와 수용의 서사를 완벽하게 포착한 콘셉트 앨범이 바로
앨범의 유기성이 견고하다. 전작 「멍청이」의 화자를 화사로, 가녀린 심청이를 안혜진으로 치환해보자. 방어기제로 탄생한 화사의 자아는 자신을 영웅 취급(“You make me hero”)하는 나약한 안혜진을 안쓰럽게 여긴다. 생존을 위해 주도권을 쥔 화사의 자아는 앨범의 문을 여는 「Intro : Nobody else」에서도 철저히 타인을 배척하며 홀로 살아가고자 다짐한다. 텅 빈 공간감을 울리는 화사의 보컬은 높이 비상하며 마리아를 찾는다. 화사를 향한 안혜진의 응답이 바로 「WHY」. 여전히 '너'는 '나'에게 영웅이면서도 이제는 “너에게로 가는 내가 안 보”이냐며 먼저 손을 내민다. 「Intro」에 비해 훨씬 무거워진 「WHY」의 신스 베이스와 확장된 공간감, 비트는 해리된 두 자아의 접점을 그린다.
타이틀 곡 「Maria」는 그래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선점한다. 「Maria」는 마마무가 최근 유지해온 라틴 색의 옷을 입고 그룹이 아닌 화사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안혜진과 화사가 마주해 드디어 마리아라는 합의에 이르렀다. 완전해진 그는 「I'm bad too」에서 제법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틱톡에서 유행한 BENEE의 「Supalonely」처럼 발랄한 기타 연주와 DPR LIVE의 랩, 이와는 반대로 영 미적지근한 화사의 보컬이 냉소적이면서도 유쾌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화사는 타인의 존재를 받아들일 정도로 단단해졌다.
독단을 벗어나 결국 누군가와 공존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 화사는 괜찮다고 말한다. 안혜진은 화사에게서 살아갈 용기와 힘을 얻었고 화사는 안혜진에게서 의지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렇게 화사는 “떨어지는 비에서 탄생하는 새로운 꽃”(「LMM」)으로, 마리아로 다시 태어났다. 「Kidding」의 기괴하게 비틀린 전자음과 그의 창법은 언뜻 빌리 아일리시를 연상케 하나, 화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독기를 있는 힘껏 뿜어내며 마리아라는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는다. 여기에 「Intro」의 웅장한 엠비언트 사운드를 벗겨낸 어덜트 컨템포러리 「LMM」까지 더해 앨범은 서사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완벽한 기승전결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Maria」는 화사 자신과 더불어 세상의 모든 마리아를 품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화사는 자신을, 세상을 이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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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