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 다시 마주한 시간
걸을 때마다 삐그덕 거리는 나무판 소리, 밤새 합창하듯 울어대던 개구리 소리. 칠흑 같은 하늘에 콕콕 박혀 있던 셀 수 없이 많은 별들.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놀러 가던 시골집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 개의 풍경들. 그때의 순수하고 풋풋했던 내 모습까지 함께 떠오르게 하는 아련한 몇 개의 풍경들.
연극 <미래의 여름>은 그 옛날, 기억 저편 너머에 자리 잡고 있던 어린 시절 청량한 여름밤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소박한 소극장 무대 위에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하게 자리 잡은 무대 세트 또한, 그때 그 여름밤의 아련한 감성을 더욱 자극한다.
이야기는 작품의 주인공인 미래가 성인이 되어 지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20년도 더 지난 옛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성인 미래의 이야기를 따라 관객들은 20년 전, 미래가 고모와 함께 마지막으로 보냈던 어느 해 여름으로 잠시 여행을 떠난다.
궁금한 것도 많고, 말도 많고, 어딘가 조금 맹랑한 초등학교 4학년 미래.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미래의 수많은 질문을 다소 귀찮게 여기는 부모님으로 인해, 여름 방학마다 고모가 살고 있는 시골집으로 강제(?) 휴가를 떠나지만, 미래는 마냥 좋고 신나기만 하다. 고모와 미래는 둘도 없는 단짝 친구이기 때문. 미래의 고모 동아는 결혼도 하지 않고 시골집에 혼자 사는,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의 대상인 ‘노처녀’다. 하지만 미래에게 고모 동아는 이상한 것도 손가락질할 것도 전혀 없는, 함께 만화책도 읽어주고, 라디오에 나오는 노래도 알려주고, 계곡에서 멋지게 물 수제비도 해주는, 미래의 단 하나뿐인 어른 친구이다.
<미래의 여름>은 주인공 미래와 고모인 동아, 두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간다. 두 사람이 함께 보낸 여름날이, 소박하지만 얼마나 소중했는지, 소소하지만 얼마나 평온하고 아름다웠는지를, 극 초반부에 섬세하게 그려나간다. 그 과정을 통해 관객들 또한, 기억 저편에 웅크리고 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미소 가득한 얼굴로 작품에 함께 빠져든다. 하지만 동네 바보 석우와, 동아의 친구이자 석우의 형인 찬우가 등장하면서, 이 아련했던 이야기는 다소 구태의연하고, 신파적이며, 개연성을 상실한 그저 그런 이야기들로 변질된다.
왜, 여성 캐릭터들은 남성 캐릭터에 의해 버림받고, 상처 입는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지는지, 지금, 2020년 현재에도 그러한 수동적인 존재로 그려진 여성 캐릭터, 동아를 통해 작품이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당차고 멋지던 두 여성 사이 이어지던 끈끈하고 멋진 우정과 진심이 담긴 이야기들은 왜 한순간에 증발해 버렸는지, 여러 가지 의문을 남긴 채 <미래의 여름>은 앞서 열심히 쌓아 올린 단단한 서사를 뒷부분까지 일관성 있게 이어가지 못한다.
미래의 대사처럼 가끔 어른들은 아이들이 모르는, 아이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을 안고 살아간다. 20여년이 흘러 이제는 동아의 나이와 비슷해진 현재의 미래는 뒤늦게나마, 그때 그 시절 고모의 마음을 이해하려 해보지만, 그러한 행동 또한 충분한 개연성을 가지지는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여름날, 어렴풋하게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 <미래의 여름>은 8월 16일까지 나온시어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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