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인문학을 벗어날 경계 너머의 사유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인문학이란 대체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인문학의 역사와 사유, 방법과 전망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 의식은 인문학의 발판 위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글ㆍ사진 이경록(문학동네 인문팀 편집자)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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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인문학’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인문서를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든다는데 TV와 SNS에서는 인문학과 관련된 콘텐츠가 꾸준히 늘어나고, 곳곳에서 오프라인 강연과 모임이 열리고, 각 지자체에나 사설 사업장 등에서 인문학 연구자들을 초빙해 문학이나 신화, 역사와 사상, 예술에 대한 강연을 듣는가 하면, CEO나 공무원을 위해 전문적으로 기획된 인문학 수업과정이 대학 곳곳에 개설되기도 하는 요즘입니다. 

이 정도면 가히 ‘인문학의 전성시대’라 불러도 좋을 듯싶은데요, 이 책의 저자 최진석은 이러한 현상들에서 오히려 인문학의 위기를 진단합니다. 지난 세기의 끝 무렵 ‘인문학’의 위기를 개탄하며 빈궁과 소외가 인문학의 본래 운명이 아니냐고 스스로 위로하던 시절과 비교한다면 최근 인문학의 대중화는 정말 고무적인 일이기도 할 텐데, 도대체 어떤 점이 문제라는 것일까요? 

저자는 현재의 인문학을 ‘진작 유효기간이 지난 쿠폰’에 비유합니다. 인간적 가치를 위해 인간 밖의 모든 것을 지옥으로 몰아넣는 인문학, 문화를 창달한답시고 권력의 시종이 된 인문학에 장래를 걸 이유는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인문학을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혜, 혹은 복잡한 현대사회의 문제들을 단번에 해결해줄 마법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인문학’이라고 불리는 학문은 1980년대 중반을 지나며 ‘창안된’ 개념에 가깝습니다. 문학과 역사, 철학을 기반으로 삼는 학문적 전통으로서의 인문학은 분명 그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문학과 예술, 과학기술과 인공지능, 페미니즘까지 아우르는 인식과 성찰의 전 영역을 인문학이라 부르는 풍조는 비교적 최근에 생겨났다는 것이지요. 외연의 확대는 정말 반가운 일이지만, 미디어의 발달과 시대의 변화로 인해 책이라는 매체를 물적 토대로 삼았던 인문학이 TV와 인터넷, SNS 등으로 흩어지며 그 실체가 흐려지고 점점 파편화되는 이때, 도대체 인문학이란 과연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계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변화가 중요하다”는 마르크스의 언명조차 소비자를 유인하는 광고문구가 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인문학의 가능성을 묻는 것은 지금-여기 우리에게 가장 간절한 질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인문학이란 대체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인문학의 역사와 사유, 방법과 전망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 의식은 인문학의 발판 위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학문의 성채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인식과 통찰에 충실하고, 외적인 유행을 추종하지 않으면서도 부단히 외부와의 교섭력을 잃지 않아야 하는 불가능성의 인문학. 지금 우리는 이를 직시하고 성찰해야 할 시간에 놓여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할까? 남성, 여성, LGBTQ…… 무수한 젠더정체성은 어떤 방식으로 주체화되어야 할까? 근대적 휴머니즘을 넘어선 인간-기계는 어떤 모습일까? 예술과 노동의 행복한 일치는 가능할까?

『불가능성의 인문학』은 흥미로운 주제들을 통해 기존 인문학 경계 너머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사유합니다. 이 책과 함께라면, 이 성찰의 시간들이 그리 어렵고 지루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불가능성의 인문학
불가능성의 인문학
최진석 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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