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로 살고 있다. 일단 광고와 TV프로를 만드는 방송작가이고, 기성 출판사와 책을 낸 출간작가인 동시에, 내 책을 직접 제작해 내놓는 독립출판인이기도 하다. 낮에는 제작사에서 글을 쓰고, 어떤 저녁에는 출판사에 줄 글을 쓰고, 또 다른 저녁에는 내가 직접 내놓을 독립출판물용 글을 쓴다. 최소 3인의 다른 작가들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10년째.
회사를 그만둔 후 방송작가 교육기관을 거쳐, 방송원고를 쓰는 사람이 되었다. 방송원고라는 것은 오묘한 것이, 분명 나의 글인데 책상에 앉는 순간부터 모두의 평가를 염두에 둬야 한다. 나의 코어는 정말 좁고 고집스러운데, 그런 내가 글을 시작하자마자 수많은 제작진과 의사결정권자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 평균치에 맞춘 글을, 그러면서도 프리랜서로서 앞으로도 연명할 수 있도록 내 색깔을 적절히 담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의 취향에 맞는 나의 것’을 매주 만들어낸다는 것은 갑자기 더워진 날 아침 남의 눈에 튀지 않는 수준에서 날씨에 맞는 옷을 골라 입는 것만큼이나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방송작가 시작과 동시에 내 글을 쓰기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언제나 방송 바깥의 나에 대해 썼다. 방송과 무관한 내 이야기를, 누구도 검열하지 않는 나의 이야기를 쓰면서 방송’용’ 작가로 사는 것이 좀 더 수월해졌다. 운 좋게 그 이야기를 재미있어하는 고마운 출판사들이 있었고, 나는 생업과 생업의 숨통을 틔워주는 딴짓의 영역에서도 작가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었다. 내 글에 맞는 디자인과 판형, 편집을 나보다 더 고민해주는 동료가 있는 것이 언제나 감사하고 즐거웠다. 방송원고를 쓰는 것이 내 씨앗으로 정원을 만드는 일이라면, 책을 쓰는 것은 내 씨앗에 걸맞은 토양과 온도를 맞춰주는 전문가들과 함께 잘 정돈된 화단을 꾸리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쓰고 싶은 강렬한 것이 떠오른 날이 있었다. 쓰고 싶은 글뿐만 아니라 어떤 ‘책’의 모양이 떠올랐다. 그 글을 담는 커버, 폰트, 손에 잡히는 질감 같은 물성마저 선명해진 것이다. 그걸 이루고 싶고 그 과정을 직접 해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고민하던 중 독립출판을 알게 되었다. 집 앞 독립서점에 가서 삐뚤빼뚤하게 키운 화분 같은 소중한 글들을 봤다. ‘이런 책을 내고 싶다’는 다짐보다, ‘이 책을 만들면서 얼마나 행복했을까?’ 하는 부러움이 일었다. 그래서, 멋진 정원사가 없어 조금은 조잡하더라도 내 작은 텃밭에서 어설프게 키워보기로 마음 먹었다. 나의 첫 독립출판물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기존 책보다 작은 판형에, 무광코팅조차 하지 않아 스크래치를 잘 입는 표지에, 보통 내지보다 두꺼운 100g짜리 푸석한 종이들을 품고서.
세상 다양한 비혼의 모습들을 하나로 묶을 마음은 없고, 나의 비혼이 어떤지는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 막연히 결혼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시절을 지나, 현재의 나는 결혼할 가능성이 매우 낮으며, 미래는 예측할 수 없지만 비혼자로 사는 내 삶의 모습을 비교적 자세히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손에 잡히는 명확한 책의 형태가 문장과 함께 떠올라 독립출판을 마음먹던 그 날처럼. 내가 사랑하는 서울의 동네 해방촌에서, 큰 이변이 없는 한 아파트보다는 빌라에 살고 있을 것이고, 저녁은 1시간 정도 폴댄스를 하고, 직접 만든 가구로 채운 작업실에서 글을 쓰면서, 일주일에 한두 번은 동네친구를 만날 것이다. 그 중 몇몇과 대량으로 배송받은 식재료를 나누기도 하고, 서로의 안위를 궁금해하고, 비혼라이프 팟캐스트를 함께 만들면서. 누군가는 그 삶이 돈이 되겠느냐 할 것이고, 그 삶을 사람들이 인정해줄 것인지 의심하기도 할 것이며, 대다수의 삶과 내 것을 비교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독립출판물과 마찬가지로, 내가 만드는 비혼의 삶은 내 손으로 내 설계를 거쳐 나를 담은 것이기에 그 모든 질문이 힘을 잃는다.
독립출판물은 옳아서가 아니라 고유한 것이어서 의미있다. 나는 비혼의 삶도 그것이 기혼보다 의미 있다거나 적절해서가 아니라, 각자의 고유한 것이어서 조명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큰 조직에서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고려하며 쓰는 방송원고도 그 나름대로 소중하고, 내 이야기를 타인과 협업해 내놓는 출판사와의 작업 역시 소중하고, 독립출판물은 판매량과 상관 없이 온전히 내 일부를 그대로 뚝 떼서 책으로 구현한 것이기에 의미있다. 마찬가지로, 사회가 권장하는 다수로 사는 나, 가정에서의 어떤 전형적 역할을 수행하는 나, 그리고 그걸 가능케하는 비혼자로서의 내가 각자 너무 소중하다.
누군가는 최대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출판사와 협업하고 싶어하지만 사랑하는 글 중 어떤 것은 이 글이 가진 냄새를 그대로 내놓고 싶어한다. 누군가는 사랑에 빠지면 사회가 만든 제도 안에서 다른 차원의 삶을 설계하고 싶어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내 사랑을 다른 사람들의 개입 없이 그저 마주보고 싶어한다.
나의 글을 타인의 개입 없이 마주보게 해주는 독립출판물처럼, 그렇게 꾸려가는 내 비혼의 삶을 그 모습 그대로 긍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비혼이든 기혼이든, 리미티드 에디션인 타인의 삶도 그렇게 보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모두는 달라서 의미 있으니까, 당신도 지금 그대로 거기서 알려주면 좋겠다. 나 여기에 이런 모습으로 있다고. 그래야 우리 모두가 더 자유로워질 테니까.
* 곽민지 작가. 출판레이블 <아말페> 대표. 기성 출판사와 독립 출판사, 기타 매체를 오가며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걸어서 환장 속으로』 『난 슬플 땐 봉춤을 춰』 등이 있다. 비혼라이프 팟캐스트 <비혼세>의 진행자, 해방촌 비혼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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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지
작가. 출판레이블 <아말페> 대표. 기성 출판사와 독립 출판사, 기타 매체를 오가며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걸어서 환장 속으로』 『난 슬플 땐 봉춤을 춰』 등이 있다. 비혼라이프 팟캐스트 <비혼세>의 진행자, 해방촌 비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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