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이번 생의 업으로 삼았으니 나 역시 내가 쓰는 글의 보폭과 리듬을 고민하게 된다. 그럴 때는 아름답고 푸르던 영화 속 몬태나 숲의 강물과 그들이 나란히 서서 날리던 플라이 낚시의 네 박자 리듬을 생각한다. (중략) 부드럽게 사뿐히 수면에 내려앉는 라인처럼, 은유하자면 네 박자 리듬의 글쓰기이고 그건 어쩔 수 없는 희망이다. 같은 밀도의 이야기를 할 때도 가능한 한 소박하고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기를. 과장하지 않고 진솔할 수 있기를. 그저 첫 마음을 잃지 않기를.
이도우 소설가의 산문집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이도우 소설가 편>
오늘 모신 분은 인사를 건네는 소설가입니다. 깊은 밤, 가만가만 이야기 나눌 누군가가 그리우시다면 이 분의 산문집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와 함께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소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 『잠옷을 입으렴』 그리고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를 쓰신 이도우 작가님입니다.
김하나 : 녹음일 기준으로 바로 어제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가 종영이 됐어요.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은 라디오 드라마로 제작이 됐었고, TV 드라마가 된 적은 없죠.
이도우 : 그렇죠. 몇 번 시도는 됐었는데 기획 단계에서 끝까지 가지는 못했었죠.
김하나 : 그러면 작가님의 작품으로는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가 처음으로 드라마화 된 거죠. 어떠셨나요?
이도우 : 일단은 너무 기쁘고 감사하고 영광이었죠.
김하나 : 제가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서 보고 있었는데, 본방 사수 이벤트도 하시고 책도 보내주시고 하시던데요. 저는 궁금한 게, 드라마를 만들기 전에 작품을 구상하고 쓰실 때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매만진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걸 드라마로 구현할 때는 제작비나 촬영 여건 등으로 인해서 많이 바뀌잖아요. 어떠셨어요?
이도우 : 일단 배경이나 책방 같은 경우는 제 예상보다도 훨씬 고퀄리티로 나왔어요. 안 그래도 서강준 배우님이 처음에 인터뷰하실 때 작품 소개를 하면서 ‘굉장히 작고 아담한 시골책방이, 아니다, 지금은 굉장히 커진 시골책방이...’하고 센스 있게 말씀을 하셔서 제가 ‘아니, 얼마나 커졌기에?’ 하고 봤더니 2층 건물로 멀리서 보면 큰 ‘굿나잇책방’이 탄생을 했더라고요. 그래서 제작진 분들이 굉장히 관심을 많이 기울이시고 투자를 많이 하셨구나 라는 걸 느꼈고요. 강원도 영월과 삼척의 첩첩산중에 마을 하나를 통째로 거의 촬영장으로 쓰셨어요. ‘호두하우스’도 따로 짓고 ‘굿나잇책방’도 짓고 ‘은섭이네 집’도... 멀리서 카메라로 잡았을 때 구도에 다 잡힐 수 있는 세트를 공들여서 만드셨더라고요. 강원도까지 수많은 인력들이 오가느라 굉장히 힘드셨을 것 같아요.
김하나 : 독립서점인 조그만 ‘굿나잇책방’도 꽤 많이 커졌는데, 그럴 때는 마음은 어떠세요? 고마운 마음도 있지만 그리셨던 것과는 그림이 조금 다를 수 있잖아요.
이도우 : 그 부분은 제가 충분히 예상을 하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영상화를 위해서 판권을 넘기는 순간 각오를 하고 넘기는 것 같아요. 저도 책을 많이 읽고 그 책이 영화나 드라마가 되면 반드시 찾아보면서 비교해서 보는 걸 즐거워하는 사람이고요. 제가 다른 사람의 작품을 독자, 청자의 눈으로 보는 것과 제 작품이 영상화되는 것을 바라보는 눈은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역시 팔은 안으로 굽어야 한다는 걸 느꼈고요(웃음).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번 드라마를 시청자나 원작자의 마음으로 보지 않았고요. 제작진의 마음으로 봤어요. 내가 책을 한 권 쓴 탓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수고와 고생을 하고 있구나, 그 생각을 먼저 했기 때문에 배우 분들도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연기를 하시는 것 같고, 그걸 생각하니까 일단은 감사하는 마음이 제일 크고요. 제작진의 마음으로 봤기 때문에 인스타그램에서 이벤트를 했던 것도, 원래 제가 책 선물하는 걸 좋아하는데다가, 정말로 ‘my pleasure’였던 거죠. 제가 좋아서 했고 거기에 호응해주시는 독자 분들 시청자 분들이 너무 좋았고요. 그런 마음으로 드라마를 봤습니다.
김하나 : 작가님이 첫 소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을 쓰시고 난 뒤에 붙었던 ‘로맨스 작가’라는 타이틀 에 대해서도 갸웃갸웃 하셨을 것 같아요.
이도우 :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을 쓸 때는 솔직히 ‘로맨스 소설을 쓴다’고 생각하고 썼어요.
김하나 : 아, 장르 소설을 쓴다.
이도우 : 네, 장르 소설을 쓴다고 생각하고 썼는데. 다만 장르의 법칙에 충실하게 클리셰를 많이 쓰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우연히 도서대여점에서 (로맨스 소설) 두세 권을 보고 문득 필 받아서(웃음), 뭔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왕이면 내 방식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그때만 해도 로맨스 소설의 남자 주인공이 군대를 다녀왔다는 설정이 아마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 처음이었을 거예요. 그냥 스물일곱에 다 다국적 기업의 회장님이거나(웃음), 그런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게 사실은 클리셰니까. 장르의 법칙이니까. 그런데 ‘로맨스는 무엇인가’라고 생각했을 때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을 긍정적이고 낭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하나의 세계관이잖아요. 제가 내린 그 정의에 충실하게 썼던 것 같아요.
김하나 :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의 경우에도, 저는 ‘이도우 작가님이 쓰신 로맨스 소설이겠거니’ 생각하면서 읽어가다 보니까, 주인공인 해원과 은섭의 관계가 끝까지 아주 중요한 갈등과 이런 걸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읽은 거예요. 그런데 그게 아니어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결국 여러 가지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되게 좋았어요.
이도우 : 제가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을 쓸 때보다 나이가 조금 더 들어서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를 쓰기도 했고. 또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는 로맨스 소설을 쓴다 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어요.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과는 출발이 달랐던 것이고.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쓰되 말 그대로 날씨가 좋으면 찾아갈 수 있는 화해, 인간적인 이야기, 또 무엇보다 은섭이라는 캐릭터를 그리고 싶었던 마음이 컸고요. 그런 것들이 다 녹아져서 하나의 그림이 나오려면 이런 소설이어야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어느 순간 제가 카테고리에 매이지 않게 됐던 것 같아요. 처음에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 나온 뒤에 위키백과 같은 데에 보면 ‘이도우-로맨스 소설 작가’로 나오니까 ‘내가 로맨스 소설을 쓰기는 했는데, 로맨스 소설 작가로 이렇게 도장을... 찍으셨나요?’ 싶고(웃음).
김하나 : 제가 찍힌 겁니까? (웃음)
이도우 : 찍힌 건가...? 모르겠네..? (웃음). 그 다음에 『잠옷을 입으렴』 을 쓰고 난 다음에 독자들한테 대거 혼선이 일어났어요.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의 작가가 신간을 냈다고 해서 ‘와!’ 했다가 ‘이거 뭐지?’ 하다가 ‘로맨스가 아니에요!’ (웃음). 그러고 난 다음에 (독자들이) 정말 양분화가 됐어요.
김하나 : 소설 단 두 편에 양분화가 돼버렸군요.
이도우 :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도 괜찮았는데 『잠옷을 입으렴』 도 좋았어,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전문 장르 독자 분들은 ‘이건 로맨스가 아니에요!’라고 하시고, 『잠옷을 입으렴』 으로 저를 처음 알게 된 독자님들은 ‘이런 소녀들의 성장이야기 너무 좋아’ 하면서 다른 작품을 찾아보시다가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을 읽고 난 뒤에 ‘이건 무슨 사랑 판타지?’ 이러시고. 어느 작품으로 이도우를 처음 만났느냐에 따라서 굉장히 반응이 극과 극이었는데, 일단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이 더 많이 팔렸기 때문에 『잠옷을 입으렴』 이 나온 다음에 독자들 사이에서 저의 카테고리가 약간 흔들리는 걸 목격했죠.
김하나 :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를 읽어가면서 ‘정말 이 분은 어쩜 이럴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도 ‘기억의 호더증후군’ 이야기를 하셨는데, 수많은 기억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어느 날 새벽에 일어나서 피아노에 대해서 생각했던 글이 있죠. 「그녀들의 피아노」라는. 보통 사람은 새벽에 잠 깨서 그런 이야기들을 다 떠올리지 않아요. 피아노에 얽힌 잊을 수 없는, 작가님의 기억 속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들이 쭉 나오는데 저는 너무 놀랐습니다.
이도우 : 제가 왜 이렇게 잊지 못하고 질척거리는지, 그런 자책을 했던 시절이 조금 길었고요. 어느 순간 ‘하지만 나는 나를 데리고 평생 살아야 하니까, 나와 화해하거나 나를 용서하거나 나를 감싸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몇 년 전부터 하게 됐어요. 산문집 서문에 썼던 것처럼 밤에 쓴 글을 부랴부랴 낮에 지우고 부끄러워하는 긴 세월을 거쳐서 ‘나는 이렇게 생긴 나와 평생 살아야 하니까, 그러면 낮에 다시 지우지 말고 밤에 쓴 글은 밤에 다시 읽자’고 생각하게 됐어요. 말하자면 합리화가 된 거죠.
김하나 :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죠(웃음). 낮에 부끄러울 것 같으면 계속 밤에 쓰고 밤에 읽으면 되잖아, 생각의 전환이죠(웃음).
이도우 :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몽이 좋으면 뭔가 더 인정받은 듯한 느낌이 들고(웃음). 사실 밤에 쓴 일기를 낮에 지우거나 구겨서 버린 분들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그거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말자고 생각하고 나니까 제가 품고 있던 기억들도 산문집으로 낼 수 있었고. 사실 산문집을 내고 싶다는 생각은 10년 전부터 했었는데. 이 책에 실린 글들이 거의 15년 전부터 조금씩 조금씩 썼던 글이거든요. 원래는 원고지 3600매 정도였는데 거기에서 딱 1000매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쳐낸 거죠, 말하자면.
김하나 : 그렇군요. 작가님은 일기를 많이 쓰시나요?
이도우 : 일기장에 정확하게 쓰고 그렇지는 않지만 주로 비공개로 해놓고...
김하나 : 은섭처럼.
이도우 : 네(웃음), 비공개로 해놓고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뭐가 엄청 많아요.
김하나 : 그러면서 10월의 마지막 날이면 들어가서 1년의 부피를 한 번 보시고요.
이도우 : 네. SNS는 독자 분들과 소통하고 싶어서 만든 인스타그램만 오픈해서 거기에서 재밌게 독자 분들과 소통하고 있고요. 혼자 일기 쓰는 건 다 잠겨 있어서 혼자 왔다 갔다 하면서 많이 남기죠.
김하나 : 그러면 쓰기도 많이 쓰시고 그것에 대해서 되새겨보기도 많이 하시는군요.
이도우 : 그렇죠. 말하자면 기억력이 좋다는 건, 기억을 하기도 하지만, 그 기억을 기록해 놓고 늘 되새김질을 하기 때문에 남아 있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말하자면 기억의 복습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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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이도우 저 | 위즈덤하우스
이도우 작가 특유의 따뜻한 시선과 깊이 있고 서정적인 문체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책으로, 작가가 오래도록 기억해온 사람, 말, 글, 풍경, 그날의 마음들에 관한 세심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2020.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