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냥의 시간>의 한 장면
당혹해하는 반응이 많다. <사냥의 시간> 에 대한 이야기다. 윤성현 감독의 <사냥의 시간> 은 2020년 한국 영화의 최전선에 있는 기대작이었다. 전작 <파수꾼>(2011)이 워낙 뛰어난 평가를 받아서다. 청춘, 발음하면 입에서 ‘ㅊ’의 라임이 경쾌한 파동을 타는 이미지와 다르게 모순의 절벽에 위태롭게 서 있는 사연을 시야 제로의 안개 속의 풍경으로 제시해서다.
복잡 미묘한 감정이 핵심이었던 <파수꾼>과 다르게 <사냥의 시간> 은 내용이 간결하고 이미지가 선명하며 그래서 일직선으로 질주한다. 그게 당혹스럽다. <파수꾼>의 연출법과는 정반대의 위치를 향해, 좋게는 하지 못했던 영역으로, 나쁘게는 역행하고 있어서다. 그에 관해 윤성현 감독은 다음과 같은 의도를 전했다. “<파수꾼>이 감정적인 영역에서 고민을 깊이 한 영화라면 <사냥의 시간> 은 처음 구상했을 때부터 직선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사냥의 시간> 의 배경은 경제 붕괴로 치안 상태가 극도로 불안한 근미래다. 여기저기서 더는 못 살겠다, 노동자들의 시위가 빈번하고 이를 진압하려는 공권력의 사위(斜位)가 서슬 퍼렇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일이 없어 길거리에서 죽어 나가거나 기회가 없어 술로, 마약으로, 도박으로 넘쳐나는 시간의 탁한 물방울을 컵 밖으로 의미 없이 흘려보낼 뿐이다.
이제 막 출소한 준석(이제훈)에게는 다 계획이 있다. 감옥의 아는 형님이 20만 불만 있으면 수익이 보장된 가게를 넘기겠다는데 그럴만한 돈이 어디 있어, 그래서 사설 도박장을 털 생각이다. 호형호제하는 장호(안재홍)와 기훈(최우식)이 인생 뭐 있어 허송세월할 바에는 준석과 함께하겠다고 하이파이브를 한다. 마침 준석에게 빚이 있는 상수(박정민)가 도박장에서 일하고 있어 세부 계획을 짜기도 용이하다.
청춘이 자조하듯 내뱉는 우리 조국, 내 땅 ‘헬조선’을 장르적으로 구체화한 듯한 근미래의 준석과 장호와 기훈과 상수 세대에게 세상은 달콤한 꿈을 꾼 대가를 미끼로 놓은 덫이다. 꿈을 현실로 실현할 환경을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은 없으면서 그 꿈이 기성의 질서에 균열을 가할 때 내리는 처벌은 확실하다. <사냥의 시간> 의 청춘이 자행하는 불법은 선택지가 없어 제 발로 기어들어 가는 지옥행 티켓인 셈이다.
지옥에는 벌을 내리는 자와 벌을 받는 자가 존재한다. 벌을 내리는 자는 쫓고 벌을 받는 자는 탈출구를 찾아 쫓긴다. 준석과 친구들을 사냥감 삼아 숨통을 조이는 한(박해수)의 존재는 헬조선 시스템의 ‘파수꾼’이다. 어떤 면에서 <사냥의 시간> 은 <파수꾼>의 연장선이다. 여전히 청춘은 불안하고 세상은 이를 감싸지 못해 청춘과 세상을 양 끝에 둔 시소 위의 시간은 불안정하게 흘러가는 중이다.
<파수꾼>은 이를 우정의 파국으로 묘사했다면 <사냥의 시간> 은 파국의 이미지로 제시한다. <파수꾼>은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심리의 서사가 방사형으로 전개되어 예상할 수 없는 지옥도였다면 <사냥의 시간> 은 일직선으로 흐르는 이야기가 예정된 파멸로 이끌어 예측이 가능한 지옥도다. 그래서 흔들리는 <파수꾼>의 청춘이 화면의 중심을 잡지 못하는 핸드헬드의 카메라로 의미를 획득했다면 총을 난사하고 죽어 나가는 <사냥의 시간> 의 핏빛 이미지는 노골적이라 공허하고 전시(展示)적이다.
<파수꾼> 이후 <사냥의 시간> 까지 9년. 불안이 청춘을 대변하는 고정불변의 단어로 지위를 누리는 것과 달리 극복하고 넘어서려는 청춘의 대응은 시대에 따라 헬조선, n포 세대와 같은 부정의 단어는 물론 힐링, 소확행, 워라벨과 같은 긍정의 단어로 희비를 교차해왔다. 불의한 리더에 맞서 세상을 바꾼 역사도 경험했다. 그렇게 청춘은 생물처럼 자라고 변화하고 성장한다. 그런데 세상에 맞서겠다고 총을 들고, 친구의 죽음을 복수하겠다고 인간병기가 되는 콘셉트라니! 언제적 일본 학원 폭력물이고 홍콩 누아르인가 말이다. 근미래 배경과 달리 역행해도 너무 역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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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ykskny
2020.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