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쇄를 찍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날, 한 문장이라도 쓸 수 있을까 싶었다. 웬걸, 그때로부터 벌써 4주가 지났다. 두 번째 책은 어떤 내용으로 쓸까, 어떤 출판사와 계약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첫 책에 아이디어를 준 후배에게 물었다. “나, 어떤 이야기를 쓰면 좋을까?” “음, 저는 선배가 사람 이야기를 쓰면 좋겠어요. 제일 잘 쓸 것도 같고요.” 후배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오는 날, 마음먹었다. “그래, 사람 이야기를 하자.”
『태도의 말들』 이 출간되고 아주 오래 전 인터뷰 현장에서 딱 한 번 만났던 편집자에게 장문의 메일이 왔다. 내가 싫어하는 것들에 관해 쓰자고. 앗, 내가 싫어하는 것이 무진장 많은 사람이라는 걸 어떻게 눈치 챘지? 하지만 ‘싫어하는 것’을 쓴 책을 누가 읽어줄까? 써도 되는 글일까? 고민이 되어 정중히 거절했다. 그 편집자님은 나를 정확히 간파한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의 특징’에 대해 쓰기로 했다. 아무래도 난 소박한 사람이 좋다, 욕심이 적은 사람이 좋다. 내가 욕망이 크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거꾸로 많기 때문일까? 곰곰 따져보니 나는 욕망이 적지도 많지도 않은 사람이지만, 자족하는 사람들을 존경하는 것 같다.
사람들을 예민하게 본다. “저 사람이 이토록 완고한 까닭은 무얼까? 성장배경에서 만들어진 걸까? 후천적인 경험으로부터 온 것일까?” ,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사람들에게 사랑을 퍼주고 싶어할까?”, “앗, 요 사람은 왜 이렇게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을 어려워하나?” , “엥, 이 사람은 왜 허구한날 미안하다고 하나? 그렇게까지 미안한 일은 아닌데.” 나는 24시간 중 10분의 1 이상을 타인의 행동을 파악하는데 쏟는다.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다행히 요즘 나는 싫어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연민이 생긴 것도 너그러워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모든 이가 다소 쓸쓸해 보인다. 하지만 싫어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은 아니다. 내게 큰 피해를 주진 않았지만 내상을 입힌 사람. 여전히 나는 그와 인사하지 않는다. 두 번째 책을 쓰면서 그런 사람들을 마음속에서 지워버리고 싶다. 용서는 아니고, 무관심의 상태를 마주하길 원한다. ‘좋아하는 사람’을 많이 생각하는 일을 취미로 삼아 싫어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일에 에너지를 쓰지 않고 싶다. 할 수 있을까?
저는 아무 문제 없어요.
제가 더 영광이죠.
편하게 하고 싶은 말 다 하셔도 됩니다!
위 문장은 『태도의 말들』 을 만들면서, 이기호 작가님께 문장 인용 허락을 구한 메일에 온 답장이다. 어찌나 큰 용기가 됐던지. “편하게 하고 싶은 말 다하셔도 된다”는 격려와 용기. 이 짧은 세 문장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글은 아니었다. 머릿속에 복잡한 일들이 가득할 때, ‘내가 말해도 되나?, ‘내가 써도 되나?’ 고민될 때, 나는 이기호 작가님의 말을 떠올린다. “편하게 하고 싶은 말 다하셔도 됩니다!”
엄지혜
eumji01@naver.com
limsoso
2020.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