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윤태호, 김홍모, 마영신, 유승하 작가가 참여한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이 창비에서 출간됐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기획한 이번 시리즈는 제주4ㆍ3, 4ㆍ19혁명, 5ㆍ18민주화운동, 6ㆍ10민주항쟁 등을 다뤘다. 만화가 김홍모는 제주 해녀들의 항일시위와 제주4ㆍ3을 연결해 『빗창』 을 그렸고, 윤태호는 전쟁 체험 세대의 시선을 빌려 한국의 발전과 4ㆍ19혁명을 목격해온 이들의 소회를 『사일구』 로 솔직하게 풀어냈다. 만화가 마영신은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5ㆍ18민주화운동의 왜곡과 폄하를 지적하며, 『아무리 얘기해도』 를 통해 40년 전 광주를 우리는 지금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질문한다. 6ㆍ10민주항쟁 현장을 뛰어다녔던 유승하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1987 그날』 을 만들어냈다.
지난 4월 7일, 창비 출판사는 유튜브
『빗창』 , 해녀들의 목소리로 다시 기억하는 제주4ㆍ3
사회적 색채가 뚜렷한 작품을 주로 그리는 만화가 김홍모는 『빗창』 을 통해 잔혹했던 제주4ㆍ3을 해녀들의 서사로 재해석했다. 『빗창』 은 야학에서 만난 세 해녀 련화, 미량, 재인이 해녀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일제의 수탈에 항의하는 해녀시위를 주도하며 시작된다. 일제강점기 말 벌어진 이 시위에 수많은 해녀들이 전복을 채취할 때 사용하는 도구인 ‘빗창’을 들고 동참했고, 연인원 1만 7천여 명이 참가한 ‘제주해녀항일투쟁’이 발발했다. 실제 제주 이주민인 김홍모 작가는 현장 취재를 통해 제주4ㆍ3의 역사를 꼼꼼하게 재현했다.
김홍모 작가는 “제주4ㆍ3이 72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다. 제주4ㆍ3이 왜 일어났는지, 당시 제주도민이 30만 명인데 3만여 명이 왜 잔인하게 학살돼야 했는지, 그 역사를 살펴보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제주4ㆍ3을 좌익들의 폭동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당시 상황을 지휘한 가해자와 미군정이 책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진실이 밝혀지기 어려운 것 같다”며, “제주해녀항일투쟁을 통해 남성 중심의 서사에서 벗어나 민주화운동에 큰 역할을 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사일구』 , 많은 이에게 과연 4ㆍ19혁명이란 무엇이었나
만화가 윤태호는 역사 속 개인이 어떻게 4ㆍ19혁명을 기억하고 경험하는지를 『사일구』 로 풀어냈다. 『사일구』 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주인공 ‘김현용’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돌아본다. 김현용은 어린 나이에 징집되어 전쟁을 경험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평화나 민주주의가 아니라 생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공부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투쟁 현장에 뛰어든 동생 ‘현석’과 친구 ‘석민’을 보며 갈등하고, 여든의 나이가 된 2016년 겨울, 촛불을 들고 혁명의 광장을 찾는다.
윤태호 작가는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건, 스스로를 대중만화가로 생각하는 나에게 어려운 작업이었다. 끊임없이 팩트를 체크해가며 그림을 그려야 하기 때문에 망설였지만, 경력이 쌓이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소명이 있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이 작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작업 동기를 밝혔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부터 엄청난 분량의 4ㆍ19혁명 자료를 받은 윤태호 작가는 “이번 작업을 계기로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에 대학생뿐 아니라 중고등학생들이 무척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4ㆍ19혁명을 실제로 경험한 장인을 모델로 작업한 것은 “혁명의 주도자가 아니라 인도 위에 서 있는 익명의 사람, 관람자의 시선으로 4ㆍ19혁명을 바라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무리 얘기해도』 , 광주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만화가 마영신은 『아무리 얘기해도』 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5ㆍ18민주화운동’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고발했다. 마영신 작가는 “이미 많은 영화, 책에서 5ㆍ18민주화운동을 다뤘기 때문에 무척 부담스러운 주제였다. 겁도 없이 작품을 수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보통 이런 주제는 피해자 입장의 서사가 많기 때문에 오히려 반대 입장에서 접근했다”고 밝혔다.
『아무리 얘기해도』 는 터무니없는 가짜뉴스가 정정되지 않는 지금과 40년 전 계엄군이 저지른 잔혹한 행위를 다수가 애써 모른 체했던 역사를 함께 보여준다. 마영신 작가는 액자식 구도를 취한 것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5ㆍ18민주화운동을 폄하하고 외면했는지 거울처럼 비춰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정기 전남대 5ㆍ18연구소장은 “ 『아무리 얘기해도』 는 도발적인 만화다. 5ㆍ18민주화운동을 다루되 과거를 재현하는 데 그치기보다는 5ㆍ18을 왜곡, 폄훼하려는 극우세력과 이들이 퍼뜨리는 가짜뉴스의 문제를 함께 고발한다. ‘아무리 얘기해도’ 귀를 닫고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멋대로 허상을 키워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독자에게 혐오감과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도 가짜뉴스에 현혹되어 진실을 외면한 적은 없는지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고 추천평을 썼다.
『1987 그날』 , 6월의 뜨거운 함성
유승하가 그린 『1987 그날』 은 전두환 정권 아래 엄혹한 현실을 살아낸 당시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1987년을 풀어냈다. 사회적 책임과 불의를 눈감을 수 없어 운동에 동참한 진주, 가족과 운동 사이에서 갈등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언니로 인해 세상에 대한 믿음을 잃은 대학생 혜승, 그리고 미술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집이 철거당하는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나리 등을 통해 1987년을 호출했다.
6ㆍ10민주항쟁을 직접 경험한 유승하 작가는 “5ㆍ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청년들의 끊임없이 헌신적인 투쟁을 만화로 말하고 싶었다”며, “당시 상황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객관화가 되지 않아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30여 년이 지났지만 1980년대에 전방위적인 억압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1987 그날』 은 박종철 열사, 이한열 열사의 이야기가 뼈대를 이루지만, 유승하 작가는 ‘혜승’이라는 인물을 통해 바라본 ‘박혜정 열사’에 가장 감정 이입을 많이 했다. 유 작가는 “당시 많은 사람들이 회색분자의 죽음이라고 했지만 박혜정 열사는 결코 회색분자가 아니었다”고 강조하며 “언젠가 박혜정 열사를 중심으로 한 작품을 꼭 한번 쓰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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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세트 김홍모, 윤태호, 마영신, 유승하 글그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 창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기획하고 김홍모, 윤태호, 마영신, 유승하 네 작가가 참여해 제주4ㆍ3, 4ㆍ19혁명, 5ㆍ18민주화운동, 6ㆍ10민주항쟁을 그렸다.
엄지혜
eumji0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