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오은): <오은의 옹기종기>와 함께 <어떤,책임>도 2주년이 됐어요.
프랑소와 엄: 2년 전 <어떤,책임> 코너명을 짓기 위해 만났던 때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동안 다툼 한 번 없이 지냈잖아요. 더욱 깊어지고, 신뢰가 쌓여서 굉장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캘리: 여러분께 드릴 엽서를 쓰면서 저도 그 생각을 했어요. 좋은 동료, 좋은 친구를 만들었다고요. 좋은 우정을 쌓았다는 생각에 기뻤습니다.
불현듯(오은) : ‘다독임이 필요한 친구에게 권하는 책’이라는 오늘 주제를 보자마자 제 책이 나와서 정해주신 주제라 곤란하지만 기뻤어요.(웃음)
프랑소와 엄이 추천하는 책
『당신의 말을 내가 들었다』
안미선 저 | 낮은산
정말 자신 있게 영업할 수 있는 책입니다. 우선 이 시리즈를 꼭 소개하고 싶었는데요. 낮은산 출판사의 ‘페미니즘 프레임’이라는 시리즈예요. 우리 자신과 일상을 페미니즘이라는 프레임으로 다르게, 더 깊게, 정확하게 들여다 보려는 인문 시리즈로, 인문 에세이라고 보면 될 것 같고요. 이 책은 시리즈의 네 번째 책입니다. 판형이 특이해요. 세로로 길쭉한데 딱 한 손에 들어오는 크기거든요. 저는 이 판형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여성의 위치가 이렇지 않은가, 했거든요. 지하철을 탈 때도 남자 두 명이 앉은 사이 자리에 앉을 때 너무 불편하잖아요. 여자만 앉은 자리에 앉을 때는 진짜 편하고요. 이 책을 펼칠 때마다 내 공간에서, 생활의 틈 사이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안미선 작가님은 여성, 노동 관련 인터뷰를 많이 해오셨죠. 책에는 그간 이런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겪은 감정들, 이야기에 접근하는 방법 등이 담겨 있는데요. 목차도 ‘노크’, ‘공간’, ‘녹음’, 말’, ‘눈물,’ ‘침묵’처럼 단어로 되어 있어요. 저는 인터뷰에 대해 최근 나온 책들 가운데 가장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공이 느껴지는, 그냥 쓸 수 없는 글이라는 게 느껴졌어요. 정말 좋은 문장도 많아요.
낯선 이야기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무력감에서 나온다. 변화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관심이 현재 자기 자신에게만 쏠리고 타인은 배타적으로 대하게 된다. 이야기를 통해 상황이 바뀌고 한 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면 공포나 무력감을 극복할 수 있다. 타인의 이야기를 알고 싶어하지 않고 타인을 쉽게 경멸하는 사회 분위기가 인간의 가능성을 축소하고, 세상을 살벌하고 잔인한 곳으로 만든다.
무엇보다 제목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독자도 어떻게 보면 저자가 한 말을 들은 거잖아요.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말을 들으면서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이 책에서 격려도 느꼈고요. 안미선 작가님이 하시는 모든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고, 이 책을 최소 세 번은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불현듯(오은)이 추천하는 책
『좋은 곳에 갈 거예요』
김소형 저 | 아침달
이 주제를 듣고, 제가 다독임을 필요로 할 때 어떤 책들을 읽었는지 돌이켜봤어요. 주로 시집과 단편 소설을 읽었더라고요. 다독임이 필요하다는 건 단순히 “힘내” 같은 위로를 듣고 싶다는 뜻은 아닌 것 같아요. 다독임은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근사한 행동이기도 하지만 내가 나 자신한테 해줄 수 있는 행동이기도 하거든요. 시집을 고르고, 단편 소설을 골라 읽는 순간만큼은 내가 나를 다독이기로 마음 먹은 순간 같고요. 그래서 다독임이 필요할 때마다 문학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슬픈 사람들의 이야기,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 후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훨씬 더 기울어졌어요. 책 속에 있는 그런 사람들과 저를 겹쳐 보는 것이 제게는 가장 커다란 다독임이었어요. 그래서 오늘도 시집을 가지고 왔습니다.
제목부터 지금 읽어야 할 시집이라고 생각했고요. 표지에 있는 드림캐쳐와 천사도 나를 다독여주는 것 같았어요. ‘좋은 곳’을 생각해볼게요. 좋은 곳이란 이미 과거의 데이터가 있는 거잖아요. 다독임이 필요할 때 소설과 시를 읽었다고 말씀드렸지만 그것들이 없을 때 저는 옛날을 생각하는 것 같거든요. 걱정이 없던 시절을 떠올리면 다독여져요. 그러니까 다독임이 있는 순간은 좋았던 그때를 떠올리게 만드는 순간이 아닐까 하는 거죠.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든 극복하고 다음 국면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품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터가 좋은 곳에서 우리는 걸었다 //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었고 / 불타는 마을에서는 밥 짓는 냄새가 났다 // 그는 우산을 주며 말했다 // 아까 천둥이 쳤었어요 / 오늘은 좋은 곳에 갈 거예요 // 어린 친구들은 겨울왕국을 보러 가면서, 오늘 저는 좋은 곳에 가요, 제 두 번째 꿈을 이루는 거예요, 라고 떠들었는데 // 친구들은 꿈을 이뤘겠지 그들이 좋은 곳에 들러 언젠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까지, 그들의 시간은 흐를 것이다 //
(「좋은 곳에 갈 거예요」 일부)
이런 시를 읽으면 좋았던 때, 좋은 곳을 찾기 위해 애썼던 때,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때, 마지막 남은 안간힘으로 그 상황에서 벗어나던 때를 돌이켜보게 돼요. 어두운 순간에서 한 발 한 발 움직이듯 조심스럽고 섬세한 책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시집이나 단편 소설을 읽으시면 좋겠어요.
캘리가 추천하는 책
『좋은 생명체로 산다는 것은』
사이 몽고메리 저 / 레베카 그린 그림 / 이보미 역 | 더숲
제목이 너무 취향저격이었어요. 통속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어떤 자극적인 말보다 더 자극적으로, 더 진실로 다가오는 말이죠.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말은 '인간이 동물에게서 무엇을 배웠나?'라는 질문에 저자가 내놓은 답이었다고 합니다. 처음 들은 질문이고, 전에는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이었지만 듣자마자 곧바로 이렇게 대답을 했대요. 저자는 자신이 스승이라고 부를 만한 대상은 대부분 동물이었다고 말하는데요. 이 책은 동물 생태학자인 저자가 지금껏 살면서 자신에게 '좋은 생명체로 사는 법'을 알게 해준 동물들을 10개의 챕터로 이야기하고 있는 책입니다. 저자가 키웠던 반려견들, 야생에서 만난 타란툴라 거미, 나무타기캥거루 등이 등장하죠.
제일 처음 등장하는 동물은 검둥개 '몰리'입니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친구나 인형보다 동물을 훨씬 좋아했대요. 심지어 사람에게도 거의 관심이 없어서 여러 번 집에 방문한 적 있는 부모님의 친구도 기억을 못했는데요. 아빠가 “브랜디의 주인이야” 하면 ‘아, 그 붉은 장모를 가진 닥스훈트와 함께 사는 사람’ 하고 떠올리곤 했대요. 그랬던 어린 몽고메리에게 어느 날 강아지가 생긴 거죠. 몰리는 자립성이 넘치고, 활동적이어서 밤에도 혼자 밤 산책을 하다 돌아오는 멋진 강아지였어요. 저자는 밤이면 바깥으로 나가는 몰리를 말리고 훈련시키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몰리를 닮고 싶다고 생각해요.
가장 좋았던 내용은 3장 '꿀꿀이 부처 크리스토퍼 호그우드'예요. 어느 날 인근 돼지 농장에서 새끼 돼지를 데려와 키우게 되는데요. 사실 그 즈음 저자는 안 좋은 일을 동시에 겪고 있었어요. 첫 책 계약을 한 출판사가 계약을 취소하고, 아버지의 투병 소식까지 들은 거죠. 그리고 저자는 이 새끼돼지에게 '치유 받았다'고 말합니다.
크리스토퍼는 사람들이 주는 모든 음식을 사랑했다. 꿀꿀이 스파의 따뜻한 비눗물을 사랑했고, 부드러운 귀털을 다정하게 쓰다듬는 작은 손들을 사랑했다. 자신과 함께 있어 주는 사람들을 사랑했다. 아이거나 어른이거나, 건강하거나 아프거나, 대담하거나 수줍음이 많거나, 수박껍질과 초콜릿을 가져오거나 빈손으로 와서 귀 뒤를 쓰다듬거나 상관없이 모두를 반갑게 맞이했다.
아시는 분도 계실 텐데 국내에 출간되기도 했던 『문어의 영혼』 이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해요. 이 책을 먼저 보시고 함께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동물을 보면서 어떤 생명체로 살아야 되는지 많이 느꼈다는 걸 알 수 있는 아름다운 책이고요.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했어요.
*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
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