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에세이스트] 1월 우수작 - 식물을 선물하는 일
언제부터였을까. 식물을 키우기 시작한 날이. 회사생활이 가장 힘들었던 3년 전, 2016년 여름쯤으로 기억한다.
글ㆍ사진 정광훈
202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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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가 매달 독자분들의 이야기를 공모하여 ‘에세이스트’가 될 기회를 드립니다. 대상 당선작은 『월간 채널예스』, 우수상 당선작은 웹진 <채널예스>에 게재됩니다.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은 매월 다른 주제로 진행됩니다. 2020년 1월호 주제는 '2020년 나에게 하는 약속'입니다.

 

 

언제부터였을까. 식물을 키우기 시작한 날이. 회사생활이 가장 힘들었던 3년 전, 2016년 여름쯤으로 기억한다. 늦은 시간까지 야근하고 마트에 들러 집에서 마실 맥주를 고르고 있었다. 만 원에 4캔짜리 수입 맥주를 고르고 계산대에 맥주를 내려놓았는데 구석에 쌓여 있는 화분이 보였다. 직원에게 파는 것인지 물어보니 마감 세일로 반값에 팔고 있다고 해, 충동적으로 두 개의 화분을 샀다. 공기정화 식물이라니까 무턱대고 사기는 했지만 사실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몰랐다. 단지 이름처럼 사무실에 두면 답답한 공기가 조금 괜찮아질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두 가지 식물을 들였는데, 하나는 율마라고 불리는 허브의 한 종류로 손을 잎에 대고 만지면 좋은 냄새가 나는 식물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스파트 필름이라고 불리는 넓은 초록 잎을 가진 공기정화 식물이었다.


율마는 회사에서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책상 옆에 두고 손으로 만지며 향을 맡았다. 그럴 때마다 기분이 나아지곤 했는데 너무 자주 만져서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말라버려 부스러지는 잎들을 떼고 뿌리째 뽑아 흙과 함께 버릴 수밖에 없었다. 스파트 필림은 계속 살아남았다. 화분을 둘 공간이 남아 죽은 율마 대신, 꽃이 예쁘게 핀 이름 모를 식물을 다시 사 왔는데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꽃과 함께 시들어 버렸다. 열매가 맺힌 게 예뻐서 산 다음 식물도 물을 너무 많이 줘서인지 뿌리가 썩어 버렸다. 아름다운 꽃이나 열매를 보고 산 식물들은 모두 죽어버리고 평범하고 수수한 모습의 식물들만 오래 살아남았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한결같이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식물들이 그래서 더 정이 갔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사무실 내 자리 주변에는 여러 식물들이 자리를 잡았다. 사무실에서 물을 마실 때마다 물을 몇 모금 남겨 화분에 주고 쉬고 싶을 때면 늘 화분을 가지고 나가 햇빛이 잘 드는 탕비실에서 함께 햇볕을 쬐었다. 식물들은 갈수록 잎이 팽팽해지더니 건강해졌다. 나도 주변의 식물들과 같이 천천히 건강해지고 있었다.


카카오톡에 친한 친구의 생일이 떴을 때, 기프트콘이나 케이크 같은 선물은 좀 진부한 것 같아 식물을 화분과 함께 선물한 적이 있다. 한 친구는 재밌어했고 한 친구는 너다운 선물이라며 감동해서 잘 키워보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고 어느 날, 퇴근길에 한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네가 준 화분 잘 자라고 있어. 생각나서 보낸다. 잎이 이만큼 무성해졌어. 예쁘지?’라는 메시지와 함께 풍성하게 자란 식물의 사진이 도착해 있었다. 식물들이 죽지 않고 잘 자란 게 신기하기도 하고 친구가 내심 고맙기도 해서 다른 화분을 선물했던 친구에게도 연락해 보니 그 역시 잎이 무성하게 자란 사진을 보내주었다. 두 명의 친구가 건강하게 키워낸 식물들처럼 입사 후 그들도 안정적으로 회사에 뿌리내린 것처럼 보였다. 몇 년 전에는 사람과 일에 치여 힘들어했는데 이제는 괜찮아 보였다. 작은 화분으로 나처럼 자신을 조금씩 치유하고 이겨낸 것 같았다.

 

작은 화초에 물을 줘보면, 가끔 들고 나가 햇볕을 쬐어 보면 또 다른 생명과 함께 사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물과 햇빛만 있으면 자랄 수 있는 작은 생명을 온전히 책임져 보는 경험을 통해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어제는 보지 못한, 새로 자라난 새잎에서 피어오르는 희망을 엿볼 수도 있다. 며칠간 물을 못 줘 축 처져 있던 잎에 물을 줘보면 이내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생기가 돈다. 힘이 없고 처져 있는 오늘의 나도 내일이 되면 다시 괜찮아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도 생기게 된다.

 

작은 식물을 곁에 둬 보는 일.


물을 잊지 않고 나누는 일.


햇볕을 함께 쬐는 일.


무의미해 보이는 이 작은 일들이


나를 치유할 수 있다.

 

2020년이 오면 나는 이 작은 일들을 무리하지 않고 늘려나가고 싶다. 작은 식물을 더 많은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다. 그들에게 작은 생명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하는 경험을 선물하고 싶다. 작은 화분으로 시작된 생명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일상에 작은 틈을 만들고 그 틈 사이로 잃어버린 행복이 조금씩 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그 행복을 나누는 2020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광훈 36세, 현대제철 영업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 나도, 에세이스트 공모전 페이지

http://www.yes24.com/campaign/00_corp/2020/0408Essay.aspx?Ccode=000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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