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기쁨은 짧고 슬픔은 긴 이 시대의 음악”
나는 내게 남겨진 상처를 늘 음악으로 치유해왔다. 내게 그랬던 것처럼 음악으로 이걸 돌려주고 싶었다. 지금을 살아야 정신건강에 좋다. 과거로도 미래로도 가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거다.
글ㆍ사진 이즘
2019.12.13
작게
크게

Untitled-1.jpg

 

 

누구에게나 내 고통이 세상에서 제일 아프다. 그렇기 때문에 섣부른 위로는 쉽게 선을 넘고 허공으로 흩어진다. 그럼에도 이상은은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힐링과 치유를 노래했고 우리를 위로했다. 그렇게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의 곡들은 지금도 여기, 우리 곁에 살아있다.

 

'담다디'의 시원하고 신선했던 등장, '언젠가는'으로 전했던 빛바랜 인생의 통찰, '삶은 여행'으로 가져온 따뜻한 온기를 거쳐 그는 < 더딘하루 >의 날 것의 로킹함, < 공무도하가 >의 독특한 동양 서사, < 외롭고 웃긴 가게 >의 서늘함을 종횡무진 오갔다. 화려했던 데뷔, 그만큼 치열했던 자기 고민의 시간 속에서 그는 솔직함을 놓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 솔직함은 여전히 이상은의 위로가 유효할 수 있는 이유다. 5년 만에 6곡의 작은 음반으로 15.5집 < Flow > 의 출발을 알린 그를 홍대 부근 빅퍼즐 사무실에서 만났다. 타이틀처럼 그가 흘려내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인터뷰는 이 궁금증을 중심으로 수록곡을 하나씩 조명하며 진행됐다.

 


삶 가까이 행복이 있잖아요, 그건 느껴야지만 보이는 거죠

 

이상은의 음악에는 늘 가사가 살아있다. 이번에는 뭐랄까? 완전히 자기 얘기 같기도 하고 또 타인에 대한 조언 같기도 했다. 뭐가 됐든 공허한 메아리는 아니다.

 

데뷔 이후 이렇게 긴 시간 쉰 건 처음이다. 거의 5년 반 만의 신보니까 말이다. 결론적으로는 자, 타의로 휴식기를 가졌는데 나에게는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충남 공주에 있는 부모님 댁과 서울에 있는 우리 집을 오가며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나 할까? (웃음) 처음에는 불편하고 힘들었는데 자연하고 가까이 살면서 점점 어떤 안정감이 느껴지더라. 진짜로 하고 싶은 것만 해도 되고, 눈치 안 봐도 되고. 내가 어려서부터 일만 해오지 않았나. 살면서 거의 처음 느낀 자유로움이었다.

 

그런 편안함 덕택인지 노래들이 쉽고 부드럽다.

 

5년간 멈춰 있으면서 그간 주장해왔던 것을 내려놓게 됐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음악도 일부러 찾아 들었다. 그러면서 '대중성'이란 단어를 깊게 들여다봤다. '도구로 사용되는 대중성' 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했을 때 이것들을 어떻게 잘 버무릴 수 있을까 고민한 거다. 그때 철학 하는 지인이 “내게 음악은 멀리 떨어진, 거기 있든 말든 상관없는 것” 이었는데 내 음악을 통해 노래가 “자기를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하더라. 이 말이 깊게 새겨졌다. 그동안 내가 종종 어떤 계층만 이해할 수 있는 실험적인 곡들을 만들지 않았나. (웃음) 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 자체에 가치가 있다는 걸 깨닫게 하고 싶었다. 물론 쉽진 않겠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을 꺼라 생각한다.

 

첫 곡 'Relax'는 그럼 부모님 댁에서 만들어진 건가?

 

아니다. 아주 먼 곳에서 만들어졌다. (웃음) 런던에 갔다가 지인이 오로라를 보고 왔는데 너무 좋았다고 한 말에 꽂혀 그대로 핀란드 북쪽인 로바니에미로 갔다. 푸른 하늘, 자연이 주는 영감을 기대하며 갔는데 막상 도착하니 숙소도 허름하고 오로라는커녕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순록이 끄는 썰매 탔는데 웬걸. 바닥에 누워 타는 썰매에다 속도도 아주 느린 게 상상했던 거랑 정반대였다. 날씨도 춥고 피곤하기도 하고... 그렇게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데 순간 '뻥'하고 머릿속에 진공 상태가 왔다. 그간의 잡념과 고민이 싹 정리됐다고나 할까?

 

일상을 잡고 있던 긴장들을 확 풀어졌다고 느껴진다.

 

말 그대로 생각이 다 날라 갔다. 거기가 영하 20도에 춥기도 엄청 추웠고 가뜩이나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봤다. 다들 연인, 가족끼리 오는데 내가 혼자 달랑 배낭 하나 메고 가서 그런가? 어쨌든 방도 가장 구석에 작은 거로 주고 다들 나를 피하더라. 열 받아서 조식도 몰래 먹고 그랬다. (웃음) 그랬는데 그 고생과 허탈함이 순식간에 '아, 별거 아니구나' 하는 울림으로 다가온 거다. 'Relax'의 가사에는 계획대로 되는 게 없는, 소박하고 무심코 지나가는 것들에 '빛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하는 내 경험이 녹아있다.

 

오로라를 잃고 순록과 경험을 얻은 셈이다.

 

제대로 깨달았다. 순록은 크지만 아주 느리다. 하하하.

 

반면 '일상 노마드'는 일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곡 같다.

 

이번 음반은 개인적으로 내게 도전과도 같았다. 예전에는 작업을 좀 하다가 2주쯤 짬을 내서 일본도 가고 태국도 다녀왔는데 그사이 시대가 바뀌었더라. 빠르고 압축적이다. 오랜만의 컴백이니 욕심이 나기도 해서 몸을 안 아끼고 밤새워 가며 곡만 만들었다. 주구장창 떡볶이만 먹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힘들게 쥐어 짜내다가 잠깐 마트나 나가볼까? 하고 집 앞 슈퍼에 갔다. 세상에나. 모든 게 다 너무 아름다웠다.

 

평소 여행을 많이 다니지 않나. 그 여행지에서 느끼는 환기와 무엇이 다른 건가?

 

일상을 발견한 거다. 의욕이 없이 쓰러져 있더라도 태도만 긍정적이면, 동네 마실만으로도 환기가 된다. 난 하와이나 미국에 가면 꼭 '홀 푸드 마켓(Whole foods market)'에 간다. 여기에 가면 물건들이 깨끗하고 예쁘게 정리되어 있다. 일본 로컬 문화 중에는 카페에서 벼룩시장을 여는 게 있는데 이렇게 동네 일상에서 느끼는 기쁨이 내겐 너무 소중하다. 왜 '텐바이텐'(아기자기한 물건을 파는 종합 문구 매장-편집자)에 가면 사람들이 일상을 이렇게 귀엽고 소중하게 꾸미려 하는구나 느껴지지 않나? 삶 가까이에 행복이 있다. 이런 건 느껴야지만 보이는 거다. (웃음)

 

 

Untitled-2.jpg

 

 

상처를 음악으로 치유했어요


트레몰로(같은 음을 같은 속도로 빠르게 연주하는 것-편집자) 사운드가 인상적인 '가을 수채화'는 딱 이상은 표 노래다.

 

11집 < 신비체험 >의 '비밀의 화원'을 떠올리며 쓴 곡이다. 가사들로 연결 관계를 짓거나 한 건 아니지만 분위기를 좀 바꿔보려 했었다. 그 곡이 봄이라면 이건 가을 느낌이라고나 할까? 내 노래를 많이 들어오셨던 분들이라면 편하게 같이 호흡할 수 있는 곡이다.

 

반면, '넌 아름다워'는 기타 톤도 그렇고, 멜로디도 그렇고 참 좋다! 이번 음반에서 가장 대중적인 곡을 꼽자면 이 노래이지 않을까?

 

기타는 '언니네 이발관'에서 활동하기도 한 (이)능룡이 연주했다. 깔끔하고 담백하게 사운드를 잘 잡아줬다. 다만 그런 것에 비해 뚜렷한 후크(멜로디 라인)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곡뿐만 아니라 사실 많은 내 노래들이 그렇다. 글자가 너무 많은 거지. (웃음) 요즘 젊은 사람들이 내 곡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건 아마도 이런 메인 선율의 부재 때문일 거다.

 

이상은에게는 천진난만하지만 강한 목소리와 선명한 메시지가 있다. 젊은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내 목소리가 그런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한다. 악기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목소리만으로 표현되는 '감성' 또한 있다. 내가 어떻게 인식을 해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그렇게 들어준다면 감사한 일이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보이스 칼라를 다루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목소리에 대한 지적은 처음이다. 설명을 조금만 더 해준다면?

 

한마디로 꾸밈없는 보컬이다. 힘을 풀고 고음을 지를 때 기존 음색과는 다른 지점들이 나타나는데 이게 쾌감을 준다. 나이를 잊어버리게 되는 개방성이라고나 할까? 그런 어떤 틀 지우기가 이상은의 노래를 일상 속으로 끌어당긴다.

(눈이 둥그레지며) 정말 좋은 칭찬이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어려서부터 내가 여행을 많이 다니지 않았나. 그러면서 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책이 있었는데 그 책에 이런 문장이 있다. '그 사람은(주인공) 할아버지와도 젊은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 문장이 너무 좋았다. 사람으로서 내게도 어떤 한계들이 늘 존재한다. 나는 언제나 그걸 넘어서고 싶었고, 또 넘어서 왔다. 음악으로 젊은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다가가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번 음반에서 어린 친구들에게 가장 추천해주고 싶은 곡은 무엇인가?

 

공교롭게도 방금 이야기 나눈 '넌 아름다워'다. 어릴 때는 슬프면 슬프고, 기쁘면 기쁘고 그랬다. 모든 감정들이 오롯이 온 거다. 그런데 어른이 돼서 보니까 기분 조절이 가능해지더라. (웃음) 반복적으로 괴롭다고만 말하면 정말 괴로워진다. 가사를 보면 '마음을 따라가 / 완벽한 것은 따스하지 않아'라는 부분이 있는데 실제로 우리가 완벽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래도 스스로의 기분은 본인이 만들 수 있다. 그걸 말해주고 싶었다.

 

음반 명은 < Flow > 인데 타이틀은 또 '넌 아름다워'다. 수록곡 'Flow'가 타이틀이 되지 못한 이유가 있는 건가?

 

다 만들고 보니 음반에서 가장 대중적인 곡이 '넌 아름다워'와 'Flow'였다. 타이틀로 뽑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웃음) 개인적으로 이 곡은 내 상처와 관련이 있다.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친구와 좋지 않게 끝을 맺었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 그러면서 우리나라 자살률이 떠올랐다. 왜 사회는 잘 성장하고 있다는데 자살률 같은 건 떨어지지 않는 걸까? 내 노래로 그것들을 줄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정확하게 들었다.

 

이 곡에서 명대사가 나온다. '오늘 , 지금을 살면 잊혀져'('Flow' 가사 중) 풀이를 좀 더 부탁한다.

 

나는 내게 남겨진 상처를 늘 음악으로 치유해왔다. 내게 그랬던 것처럼 음악으로 이걸 돌려주고 싶었다. 지금을 살아야 정신건강에 좋다. 과거로도 미래로도 가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거다. 너무 많이 돌아보면 버겁고 불안해지지 않나. 지금을 사는 아이들처럼 다들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Untitled-3.jpg

 

 

가끔은 분절로, “그래도 삶은 흐른다!”


그렇다면 이상은이 말하는 < Flow > 는 무엇인가?

 

흐른다는 건 좋은 거다. 생각해보면 내가 막혀있을 때마다 주변에서 늘 나를 흘러갈 수 있도록 해줬다. 멈춰져 있고 막혀있는 입장에서 무언가가 흘러들어와 준다는 건 정말 고맙고 감사한 일이 아닌가. 굳어져 가는 걸 막을 수 있게 내가 그들(대중)에게 일종의 흐름을 전달해주고 싶다.

 

음반이 발매된 지 한 달 정도 지났는데 팬들의 반응은 어떤가? 상은의 의도대로 반응이 오고 있는지.

 

작가인 팬이 코멘트를 남겨줬다. '내가 겪어본 아픔과 치유만이 다른 사람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고 말이다. 이런 반응들이 내 음악의 힘이다. 한번은 실연을 당해 죽어야지, 죽어야지 했던 팬이 내 콘서트를 다녀간 후기를 읽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웠는데 내 공연을 보고 다음 날 < 개그콘서트 >를 보며 깔깔 웃고 있었다는 거다. 음악이 주는 힐링이 내가 원하는 것들이다. 잘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웃음)

 

마지막 곡 '오아시스의 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가사들 중 가장 비유가 많은 것 같은데.

 

가끔은 세상과 분리되는 순간들이 필요하다. 분리를 히브리어로 '카도시' 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Holy'다. 즉, 속물 사회와 분리시키는 순간들이 '홀리'하다는 거지. (웃음) 조금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오아시스는 무슨 뜻인가?

 

오아시스는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다. 음반을 준비하면서 때로는 내가 세상과 분리되어있는 것처럼 느꼈다. 내가 여기 있는데 분리되어 있는 건 뭐지? 그렇다면 이건 나쁜 건가, 좋은 건가? 그런 꼬리의 꼬리를 무는 고민을 했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가끔의 분절이 평범함과 비범한 순간의 경계를 준다는 거였다. 삶 자체가 사막이고 때로는 여기서 의도적으로 분리되어 오아시스를 만나보자. 그래도 괜찮다, '괜찮습니다' 노래한 거다.

 

왜 사람들이 상은에게 기대는지 알겠다. 힘들어도 괜찮다는 메시지, 나 대신 세상에 맞서 싸워 주는 사람 같다.

 

하하하. 감사할 뿐이다. '담다디'로 한 번에 세상에 알려지고 이후 혼자서 길고 긴 창작활동을 해오면서 나름의 질곡이 많았다. 이 시간들을 지나오며 내가 나를 버티게 해준 음악을 이제 다른 사람들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로 잘 만들고 싶다. 염세주의로만 빠지지 말자. '세상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의 길을 갈 수 있게, 가끔은 예쁜 것도 보고 일상도 쓰다듬어 주면서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래도 삶은 계속 흐른다!

 

끝으로 앞으로 활동 계획을 묻고 싶다. 이번 음반이 EP이니까 16집도 비슷한 연장선상으로 기대하면 될까?

 

(고개를 저으며) 완전 새로운 작품이 나올 거다. (웃음) 이건 내가 5년 만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하는 신고식 같은 앨범이다. 오래 쉬었으니 싱글 작업도 하고 노래도 많이 만들어보려 한다. 이건 비밀인데 조만간 가사 비디오도 나올 거다. 반겨줘서 고맙다. 기쁨은 짧고 슬픔은 긴 이 시대에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살아보자.


 

 

 

 


 

 

이상은 - fLoW이상은 노래 | Sony Music
좁고 우스운 이 땅에 내려오지 않는 ‘새’가 될 필요도 없고, 삶과 죽음의 경계지인 ‘삼도천’을 기웃거리지도, 거칠고 황량한 ‘사막’을 방황하지도 않는다. ‘지도에 없는 마을’이나 ‘제3의 공간’을 찾아나서는 ‘코스모폴리탄 보헤미안’으로서의 분주한 여정을 이어가지 않아도 된다.

 

 

 

 

배너_책읽아웃-띠배너.jpg

 

 



#이상은 #Flow #담다디 #오아시스
0의 댓글
Writer Avatar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Writer Avatar

이상은

보헤미안의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싱어 송 라이터. 1988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받으면서 갑자기 스타가 되었다. 1889년에 1월에 1집을, 12월에 2집을 발표하며 가수로 활동했으나, '공인'이라는, '스타'라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훌훌 털어버리듯 1990년 홀연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1991년에 미술 공부를 이해 미국 뉴욕으로 또 한번 유학을 떠난 그녀는, 이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통속성에 물들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그리는 뮤지션이 되었다. 지난 18년동안 특유의 짙은 감수성과 시(詩)처럼 섬세한 가사, 독특한 멜로디로 그만의 음악화법을 만들어왔으며, 이제 ‘이상은스타일’이라는 하나의 코드가 되었다. 2008년 그녀의 첫 저서 『올라! 투명한 평화의 땅, 스페인』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녀는 비로소 참다운 평화의 땅을 대면한다. 바르셀로나에서 시작된 그녀의 여정은, 세비야와 발렌시아, 톨레도를 거쳐 다시 마드리드까지 이어진다. 물빛처럼 투명한 그의 영혼이 만난 평화의 땅,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과 이야기가 그녀의 섬세한 목소리로 풀려나온다. --------------------------------------------------------------------------------------------------------------------- 그녀의 음악은 어느 순간부터 구도자의 노래 혹은 정체성을 상실한 보헤미안의 시와 같은 것이 되었다. ‘담다디’와 ‘사랑할꺼야’에서처럼 핏대를 올리며 노래를 부르지 않지만 맥빠진 듯한 음성에서 나오는 울림은 끊임없이 세상을 공명하고 어느 순간 우리의 가슴속에 들어와 앉는다. 그리고 개인의 철학만으로 똘똘 뭉친 불가해 속의 가사들은 전혀 낯설지만은 않은 우리의 표상을 스치며 끊임없이 되새김질을 유도하고 있다. 그녀가 스타덤에서 들려주던 초기의 노래는 목소리로 카타르시스를 제공했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은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현인의 모습으로 우리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있다.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수상하며 수퍼스타로 떠오른 이상은(Lee Tzsche, 1970년)은 표절시비의 2집을 뒤로하고 훌쩍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연극영화를 전공하던 자신의 위치에서 한껏 멀어진 미술 공부라는 전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갔다.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그녀가 예상보다 일찍 들고 온 3집은 수퍼스타에서 아티스트로 접어드는 변화의 과정을 뚜렷이 느낄 수 있는 앨범이다. 작사, 작곡은 물론 앨범의 재킷에서부터 연주, 편곡, 프로듀싱, 녹음, 마스터링, 배급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다 쫓아다니며 관여를 한 이 앨범은 외국인 친구들과 같이 한 연주곡과 타이틀곡 ‘더딘 하루’, ‘영원히’, ‘너무 오래’, ‘어느 날 아침’ 등 몇 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곡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어느 피아노 곡을 들으며’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글귀의 모호한 감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지배되는 그녀의 시적 형상을 대표하고 있다. 이 앨범이 나온 후 몇 달 뒤 우리 음악계는 한 번의 천지개벽을 맞는다. 그리고 이전까지의 모든 스타들이 모두 메인 무대에서 물러나는 비극을 맞는다. 하지만 TV 브라운관의 립싱크가 없는 세상을 택한 이상은은 이 후로 점점 더 주목을 받으며 한번의 걸림돌도 없이 지금까지 줄곧 자기 스타일의 앨범을 내 놓았다. 이상은은 댄스씬으로 주목받지 못한 저주받은 4집 이후 내놓은 5집에서 ‘언젠가는’의 빅히트로 재기에 성공한다. 그리고 <공무도하가>로 다시 한번 아티스트의 이름에 도전장을 내민다. 일본 음악인들과 함께 하며 만든 이 앨범은 우리의 음악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고 우리 나라를 비롯한 제3세계를 돌아보도록 만들었다. 한마디로 ‘공무도하가’, ‘새’, ‘삼도천’은 미래가 없어 보이던 우리 음악계에 신선한 공기를 제공했다. 1997년 음악 동료 다케다 하지무와 같이 한 7집에서는 명곡 ‘어기여 디여라’로 일본 쪽에서 호평을 받고 이소무라 가즈미치 감독의 <간밧테이끼마쇼이>란 영화 음악을 맡았으며 1998년에는 영국의 버진 레코드와 계약하고 영어 음반 를 내놓았다. <간밧테이끼마쇼이>이의 영화 음악인 은 일본에서 다음으로 많이 팔리는 앨범으로 기록되었으며 5집 이후 일본에서의 인기는 컬트팬을 끌어 모으는 것 이상의 수준이 되었다. 영어 음반에 쓰인 리채란 이름은 아버지의 성과 어머니의 성을 각각 따서 지은 것으로 그녀는 외국 쪽에서는 계속 이 이름을 쓰고 있다. 세계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한 이후 그녀는 국내에서 박철수 감독의 영화 <봉자>의 음악을 맡았고 2001년에는 라는 제목의 음악을 발표하며 끊임없는 창작욕을 과시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음악 가운데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그녀의 음악을 모두들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른다. 점점 더 여려지고 조용해지는 이 음유시인의 음악은 전자음을 배제하고 리얼 뮤직으로 자기 세계를 투영시켜 그렇게 선과 도의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고 나면 변하는 세상의 문법으로 그녀를 재단하지 말고 그냥 놓아두자. 그녀는 지금껏 알아서 잘 해왔으며 인기나 평단의 힘없이 혼자의 힘으로 아티스트가 되었다. 그리고 또 무언가가 되기 위해 자신에게 자유를 허락하고 있다. 우리는 그녀의 자유를 얻어 마시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 제공 : IZM (www.iz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