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찍는 증쇄 사진. 찍고 나면 매우 뿌듯해짐.
책을 썼다. 올해 2월 4일 출간된 에세이 『태도의 말들』 , 12월 11일(현재) 8쇄를 찍었고, 총 판매 부수는 약 1만 4천 부다. 책을 내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의 목표(라고 말했지만 야망이었다)는 1년 안에 3쇄였다. 최소 2쇄는 찍어야 출판사에게 손해를 입히지 않으니, 3쇄가 팔릴 때까지 나는 내 책을 열심히 홍보할 요량이었다.
2012년 가을, 예스24에 입사했다. 잡지 기자를 했던 경력으로 입사했으며 내년이면, 이곳에서 8년차가 된다. 입사 후 나는 웹진 기자와 MD 사이에서 굉장히 어정쩡한 스탠스로 일해야 했는데, 많은 출판 마케터가 내게 말했다. “어떤 책이든 저자가 홍보하는 것보다 더 좋은 효과는 없어요.” 그러나 ‘스타 작가 아님, 출간 이력 없음, 유명하지 않음, 엄청난 필력 같은 것도 없음’, 이것이 내 현실이었다. 과연, 나는 2쇄를 찍을 수 있을까?
출판사에서는 인쇄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책 출간 날짜를 조금 늦춰 기록한다. 책에는 2월 4일로 찍혔지만, 내가 책을 받은 날짜는 1월 말이었다. 회사로 택배가 왔다. 저자 증정본은 보통 10부를 받는다. (스타 작가이거나 과한 요구를 많이 하는 작가는 계약서에 명시된 증정본보다 더 많은 권수를 받는 걸로 알고 있다) 나는 책을 낸다는 소문을 많이 내지 않은 터라, 회사에서 책을 꺼내 보기가 매우 민망했다. 책상 위에 받은 책을 두 권 꼽아 놓고는 자꾸 가는 눈길을 애써 무시하고, 업무에 집중했다.
집에 가는 길, 천천히 책을 읽었다. 아, 매우 작고 가볍군! 유유출판사는 재생종이로 책을 만드는 출판사다. 띠지를 웬만하면 만들지 않는, 문고본 사이즈의 책을 많이 펴내는 출판사다. 그래도 이렇게 얇은 줄은 몰랐다. 책 정가가 13,000원인데(인터넷서점은 10% 할인, 5% 포인트 적립으로 11,700원), 과연 내 책을 사줄 독자가 존재할까? 예스24에 책이 등록된 날, 내 출간을 아무런 질투 없이 기뻐해줄 지인들에게만 구매 링크를 보냈다. 카톡으로 바로 책을 샀다는 인증이 쏟아졌다. 나는 MD는 아니지만 영업프로그램의 접근 권한은 있기 때문에 상품수량변동기록은 볼 수 있다. 책이 등록된 첫 날, 내 책은 31권 팔렸다. 그리고 주말이었던 다음날은 9권이 팔렸다. 출간 후 나는 출근하자마자 내 책이 몇 권이 팔렸는지 살펴보는 버릇을 갖게 됐다. 두 자리 숫자를 기록한 날이면,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샘솟았고 판매량이 저조한 날이면 ‘음…. 끝난 건가’하며 현실을 직시했다.
『태도의 말들』 은 ‘태도’에 관한 100개의 문장과 그 문장에 얽힌 저자의 단상을 기록한 에세이다. 나는 출간 전, 90명의 작가(또는 출판사)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문장 인용 허락을 구하면서, 내가 쓴 원고 전문을 보냈다. 100% 수락을 받았다. 그것도 엄청나게 빠르게 회신이 와서 놀랐다. (저자들은 아는 것이었다. 이런 회신은 빨리 해줘야 한다는 것을. 자신들도 경험이 있었을 테니)
인용을 부탁할 때만 연락하고, 책이 나온 후 입을 싹 닫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출판사에서 70권의 책을 사서 (저자가 출판사에서 책을 구입할 경우, 70% 금액으로 책을 살 수 있다) 문장 인용을 허락해준 작가들에게 사인본을 보냈다. 자택 주소를 이미 알고 있었던 작가들에게는 그냥 보냈으며, 주소를 모르는 작가들에게는 일일이 메일을 보내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무척 놀랐다. 다들 주소를 빠르게 알려 주셔서. 나는 내 책이 보내지기만 하고 읽히지 않을까 봐 걱정했는데, 의외로 “제가 이 책을 살 예정이지만, 사인본을 받고 싶으니 보내 주세요. 받은 책은 제가 읽고, 한 권을 사서 친구에게 선물할게요”라고 하셨다. 대작가들에게 내 사인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그런데 딱 한 분만 “책을 보내지 말라”고 하셨다. “장바구니에 이미 내 책이 담겨 있고, 사인본을 일일이 보내는 건 번거로우니 괜찮다고 하셨다.” 감동했다. 초베스트셀러 작가의 면모는 이렇게 다르구나, 놀라웠다. 그리고 두 분은 주소를 알려달라는 내 메일에 답장을 안 했다. 원래 증정 도서를 잘 받지 않는 분으로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분이 상하거나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책 한 권을 아끼게 되어 좋았다. (참고로, 내 책을 굳이 받기를 원치 않을 것 같은 작가에게는 알아서 메일을 보내지 않았다)
『태도의 말들』 이라는 작은 책을 쓴 후,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많다. 매년 춥기만 하다는 출판 시장의 현실을 온몸으로 체험했고, 저자의 곤혹스러움, 편집자의 어려움, 마케터의 현실, 작은 출판사 대표의 마음도 조금은 알게 됐다. 어떤 과정으로 책이 홍보되고 팔리는지도 눈으로 보게 됐다. 혼자만 알긴 아까운 이야기들이 많아 ‘출간 후 알게 된 것들’ 코너를 통해 나누고자 한다. 책을 홍보하려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글이 아니다. (나는 예스24 직원이고, <채널예스>를 만드는 업무를 하고 있어서, 이 글을 쓴다고 고료를 따로 받지 않는다. 그리고 이 글은 단행본이 될 글감도 아니다) 나는 출판계를 비교적 잘 아는 기자인 동시에 각종 잡무도 함께하는 직장인, 그리고 마케터와 편집자의 고충을 잘 아는 서점직원이다. 첫 책을 준비하는 사람들, 책을 어떻게 홍보해야 하는지 궁금한 사람들, 한 권의 책이 나오는 구체적인 과정이 알고 싶은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연재다. 다음 회에서는 ‘편집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책을 준비하기’를 써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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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의 말들엄지혜 저 | 유유
시시한 일상을 잘 가꾸고 싶은 분,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일에 각별하게 마음 쓰는 분, 나 자신을 지키는 법이 궁금한 분, 사소한 것에 귀 기울이고 싶은 분, 순간의 반짝임이 아닌 꾸준히 빛을 발하고 싶은 분이라면 이 책에 담긴 태도를 읽고 자신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매만져 보면 어떨까요.
엄지혜
eumji01@naver.com
노란에이프런
2019.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