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의 세상』을 읽는 독자들은 예상치 못한 대목에서 치고 들어오는 최상희 특유의 유머에 비죽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회 접시에 깔린 무채나 과자 봉지 속 질소 같은 유나가 개복치처럼 눈동자를 굴릴 때라거나(「유나의 유나」), 주운의 집 거실에서 고스톱을 치던 외계인이 좀 수줍은 얼굴로 “고, 할게요.”를 말할 때 말이다(「방문」). 그러다 비밀 하나쯤 마음속에 품은 채 아직은 답을 정할 수 없는 미정 방정식의 세계로 나아가는 아이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여 고개를 끄덕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보여 주는 베일 듯 선뜩한 진실 앞에서 편치 않은 감정과 마주하는 때가 조금 더 잦기는 할 테다. 붉은 손등을 지녔다는 이유로 무리에서 배척되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붉은 손가락」의 윤호, 화재 사고 이후 사이가 틀어진 아버지와 단둘이 고스트 호텔을 방문한 「고스트 투어」의 이안, “아빠가 돈을 주고 사 온” 엄마가 처한 상황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새」의 주희, 얼어붙은 세상을 가로지르는 은하열차에서 「화성의 소년」을 관찰하는 지구 소년, 남자의 흉포함이 휘감아 버린 집에서 단 하루도 편히 잠을 자지 못한 「Lost Lake」의 세 가족, 학교 홈페이지에 성추행 고발문이 올라온 가운데 희미해져 가는 친구들을 바라보는 「B의 세상」의 주운.
세상의 균열과 모순을 바라보는 시선의 날카로움은 불편한 현실을 속속들이 들추지만, 그 날카로움이야말로 『B의 세상』이 우리를 안심시켜 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현실을 외면하거나 무마하지 않고 똑바로 응시하는 것, 그리하여 B들의 세상이 줄곧 여기 있었음을 드러내 보이는 것. 그 바탕에는 모든 존재를 향한 존중과 사랑이 자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민과 사랑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여겨져 오래전에 사라진” 세계를 그리기 위해 “연민과 사랑”의 풍경을(「화성의 소년」) 포착해 내는 작가를, 우리는 신뢰하지 않을 수 없다. 덕분에 마음 놓고 위안을 받으며, 다시금 이 세상 너머를 꿈꿀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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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의 세상최상희 저 | 문학동네
“여전히 흔들리는” 세상에서 작가는 기꺼이 함께 흔들리기를 택한다. 당연한 듯 유리한 자리에 서서 폭력을 행하거나 방관하는 이들이 A라면, 최상희가 수면 위로 끄집어 올리는 것은 A들이 애써 외면해 왔을 B들의 세상이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