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 : 오늘 주제는 추석특집으로 정했습니다.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불현듯(오은) : 이 주제를 받고 서가를 훑었는데 의외로 별로 없는 거예요. 어렸을 때는 가족의 사랑과 단단한 화목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에요. 추석에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읽으면 좋을 만한 책이 무엇이 있을까 한참을 서성였어요.
프랑소와엄 : 저는 추석이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분들이 읽으시면 좋을 책을 가지고 왔어요.
캘리가 추천하는 책
『해가 지는 곳으로』
최진영 저 | 민음사
가족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게 한 영화가 있었어요. <레이디 버드>라는 영화인데요. 딸이 엄마에게 물어요. 엄마는 날 좋아하느냐고요. 엄마가 답합니다. 당연히 사랑하지, 라고요. 그러자 딸이 다시 묻습니다. 그러니까 엄마는 날 좋아하느냐고요. 이때 엄마가 답을 못해요. 이 장면을 보면서 가족이라는 게 어쩌면 사랑이라는 환상 뒤에 숨은 의무일 뿐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리고 ‘좋아한다’와 ‘사랑한다’의 경계와 미묘한 결을 생각하게 했죠. 저는 가족을 생각하면 책임감, 의무, 희생, 혈연관계 같은 것이 떠오르는데요. 그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고요. 그래서 오늘 사랑에 관한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 소설은 세상에 강력한 바이러스가 창궐해서 전염병이 돌고, 하루아침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이후의 세계가 배경입니다. ‘도리’라는 인물은 동생 ‘미소’와 단 둘이 남아 악착같이 세상을 경계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있는 인물이고요. ‘지나’는 이 재앙 속에서도 오늘의 삶, 나의 현실을 귀하게 바라보는 정말 멋있는 인물이에요. 이 둘이 길에서 우연히 만납니다. 지나의 아빠가 대단한, 어떤 의미에서는 아주 지독한 생존자여서 일찍이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재산을 다 정리해 탑차 두 대에 생활품, 식료품을 채워서 피난을 시작했거든요. 자신의 생존한 가족들을 데리고 이동하는 중이었는데 지나가 도리를 발견하고는 도리와 미소를 함께 데려가자고 아빠에게 말하는 거죠. 이때 지나의 아빠가 도리에게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널 가족처럼 대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아”
가족이 실은 대단히 허약하고, 가족이라는 가면 뒤에는 아주 잔인할 수 있는 인간의 나약함이 숨어 있는 거예요. 현실에도 가족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벌어지는 폭력들이 있잖아요. 한편 도리와 지나는 거의 처음 본 순간부터 서로에게 애정을 느끼는데요. 이 재앙 속에서 이들의 사랑이 순탄치만은 않죠. 하지만 지나와 도리의 관계가 지나와 아빠의 관계보다 더 가족에 가까운 관계가 아닐까요. 사랑이 전제될 때만이 가족이고, 그것이 없다면 가족은 끊어질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가족을 영원불변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관계가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게 가족이라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하고 있어요.
프랑소와엄이 추천하는 책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
김선영 저 | Lik-it(라이킷)
저자는 14년 차 내과 전문의입니다. 대장암, 부인암, 희귀암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고통과 죽음에 대한 사유, 일상을 그리고 쓴다고 저자 소개에 나와 있는데요. 저는 에필로그에 있는 이야기가 김선영 작가님을 더 잘 소개하는 글 같아서 꼭 읽어드리고 싶어요.
“나는 재미있고, 매력적인 사람은 아니다. 종종 말실수도 하고 어설프며 상황에 재치 있게 대처하는 능력도 떨어진다. 그래서 친구도 별로 없고 직장에서도 그리 인기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나를 표현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가 보다. 나의 비루한 면을 숨기기 위해서일 수도 있지만 쓸수록 생각의 파편들을 모아 더 좋은 생각들로 다듬어 낼 수 있어 글쓰기가 좋아졌다.”
저자의 아버지께서 경제학자셨는데 40대에 담낭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는 간호사셨는데 아버지가 투병을 하시면서 어머니와 함께 일기를 쓰셨대요. 그것이 아주 오래 전에 책으로 묶여 나온 적도 있고요. 그 책이 절판된 상황에서 따님이신 김선영 작가님께서 의사가 되어 아버지가 죽은 이후의 나의 삶을 풀어낸 책입니다. 오은 시인님이 이 책을 읽고 칼럼에 이렇게 쓰셨더라고요. “단단하면서도 겸손한 저 문장들로 인해 나는 큰 위로를 받았다.” 저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이 책은 안 읽었으면 많이 아쉬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에요. 첫 책인데 이렇게 공감대도 있고, 문장도 좋은데 환자가 알아야 할 정보도 많고, 진심이 느껴지는 동시에 자기 스스로에게는 객관적인 판단을 하고, 그러면서 유머도 있는, 전체적인 온도나 태도가 정말 좋았던 책이에요. 본인에 대한 성찰도 끊임없이 하면서 시스템에 대한 비판도 정확하게 하고, 그러면서 의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고찰을 많이 하셔서 특별하게 이 책이 읽혔던 것 같아요. 추석 때 재미있게 보내시는 분들도 많지만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분들도 굉장히 많으시잖아요. 부모님을 떠나 보내신 분들도 있고, 취업이나 결혼에 대한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집에 계시는 젊은 분들도 많으실 텐데요. 그런 분들이 이 책을 갖고 동네 카페에 가서 읽으면 추석을 잘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특히 병원에 갈 때마다 ‘이 의사 왜 이래?’ 생각하시는 분들, 주변에 장기 투병하는 가족이나 친구, 친척이 있는 분들, 내 죽음에 대해 고찰하고 생각해보고 싶은 분들, 부모나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해 평소 많이 생각하는 분들, 좋은 글쓰기의 교본을 찾고 싶은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 진짜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불현듯(오은)이 추천하는 책
『우리 가족』
하세가와 슈헤이 글그림 / 김영순 역 | 문학과지성사
띠지에 “난 아빠가 너무 좋아!”라고 적혀 있어요. 아빠가 좋아지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그림책이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첫 장면은 아빠와 아들이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입니다. 아들이 말해요. “아빠, 난 아빠가 엄마 역할까지 하는 거 바라지 않아. 아빠 는 그냥 아빠였으면 좋겠어”라고요. 지금 엄마가 부재한 상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죠. 부재의 이유가 명확하게 나오진 않아요. 그걸 예상해보는 것이 읽는 사람의 즐거움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이어 이들은 계속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빠는 엄마 휘파람 소리 들어본 적 있어?”
“응, 있지. 한 번.”
“딱 한 번? 엄마 휘파람 자주 불었는데.”
그러면서 아들은 말해요. 엄마가 항상 똑같은 멜로디의 휘파람만 불었다고요. 그러면서 아들이 그 휘파람 소리를 따라 해요. 그렇게 아빠와 아들은 자기의 자리에서 엄마를 그리워해요. 엄마가 그리워진 아빠와 아들은 배를 보러 가자면서 항구에 나가고요. 그 길에서 아빠와 아들이 모종의 화해, 그리고 엄마의 부재에 대한 수긍을 경험하게 됩니다. 마지막 장면이 재미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항구 거리를 걸었다. 한껏 멋 부리고 말이다.”라는 글과 함께 둘의 모습이 나오는데요. 아빠가 아들의 손을 잡고, 챙겨주는 장면이 아니라 같이 친구처럼 걸어가는 모습이거든요. 이 책은 엄마의 부재 상태에서 다시 가족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책이라 생각했어요. 남은 사람들이 남은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인 거죠. 엄마와 아들의 시간이 훨씬 많았겠지만, 그리고 이 시간이 아빠와 아들의 시간으로 완벽하게 전환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채워지게 마련일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됐어요. 특히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남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다이내믹한 삶을 살겠다는 의지가 보여서 좋았어요. 뜻밖의 상황 속에서 일상을 지켜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이라고 할 때 흔히 아빠와 엄마, 자식들로 구성된 형태를 생각하는데요. 실제 삶에서 그런 구성의 가족은 많지 않아요. 누군가 떠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가족도 충분히 유의미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응원해야 할 가족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디오클립 바로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195
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