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_ C9엔터테인먼트
가요는 계절감을 포함하여 날씨라고 할 만한 것들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봄이면 봄, 여름이면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그 계절마다 떠오르는 노래가 있고, 덥거나 춥거나 첫눈이 오거나 비가 내리거나 심지어 쨍하니 맑은 날도 마찬가지다. 더운 날이면 ‘쿨’의 1990년대 히트곡 혹은 ‘시스타’의 육감적인 댄스곡이나 그도 아니라면 ‘F(x)’의 엉뚱한 가사의 노래를 듣는 게 적절하다. 이 글이 지면에 실려 독자의 손에 닿을 때, 그러니까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을 미래의 지금이 바로 그 여름의 한창일 텐데, 당신은 대체 무엇을 듣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글을 쓰고 있는 현실의 지금은 본격적인 더위를 맞이하기 전에 필수적으로 거쳐 가야 하는 코스, 바로 장마철이다. 창밖에는 온종일 오락가락하던 비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요즈음의 장마는 장마라기보다는 열대성 스콜에 가까워서 언제고 다시 비가 유난스레 쏟아질지 모르지만. 많은 가요는 열대성 게릴라 폭우보다는 추적추적 내리는, 전통적인 장맛비를 그려낸다. 어제오늘 내린 비는 다행스럽게도 장마철의 빗방울들다웠다. 종일 무겁게 내려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이런 날에 찾아 들어야 할 노래와 가수는 따로 있기 마련이다.
많은 이들에게 ‘윤하’의 노래로 인식되어 있지만 본래 ‘에픽하이’의 정규앨범
윤하의 최신 EP ‘STABLE MINDSET’는 대놓고 그러라고 만든 앨범으로 보인다. 공식 앨범 소개에 따르면 이번 앨범은 ‘독보적인 윤하표 발라드’가 콘셉트인바, 이는 타이틀곡에서 금세 확인할 수 있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제목으로 이별 후의 아픔을 윤하가 노래하다니, 지금처럼 비가 오는 날에 이 노래를 듣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비가 내리는 날에는/ 나를 생각해 줘요./ 함께 걸었던 거리를 기억해 줘요.” 슬쩍 멈추듯 자연스레 흐르는 리듬감 바깥으로 이런 가사가 윤하의 목소리를 통해 들릴 때, 비 오던 날의 어떤 추억을 떠올리지 않을 비정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번 앨범은 익숙한 대중성을 타이틀곡으로 확보하는 동시에 발라다른 장르가 표현할 수 있는 템포와 무드를 다른 수록곡으로 폭넓게 표현한다. 왈츠 리듬을 타고 흐르는 ‘사계(四季)’에서의 서정성을 소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가사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대와 함께 걷는/ 몇 번의 봄을 지나/ 여름처럼 널 뜨겁게 사랑하고/ 가을을 함께 걸으며/ 겨울을 기다려요.” ‘Lonely’는 랩이 없는 ‘우산’이라 할 만큼 듣기에 편안하며 ‘어려운 일’은 ‘비가 내리는 날에는’이 여운을 더욱 짙게 만다는 발라드다. 이렇게 윤하의 노래로 비 오는 날을 지나왔으면 마무리는 안정적인 저음이 돋보이는 ‘Rainy Night’가 좋겠다.
이번 앨범이 반가웠던 것은 비 오는 날에 들을 노래가 늘어나서 때문만은 아니다. 윤하의 보컬이, 그의 목소리가, 그의 노래가 더 깊어지고 더 넓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다. 모범적이면서 화려한 보컬이자 보기 드문 싱어송라이터였던 윤하에게 잠시 있었던 어떤 부침이나 아픔이, 그의 목소리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 걱정했었던 마음이 노래를 들으며 눈 녹듯 풀어져서이다. 이제 비가 오면 마음을 놓고 윤하를 들을 수 있으니까, 그것으로 된 것 같다. 비가 오면 좋아하는 사람이 생각나고, 그 사람이 어디 아픈 건 아닌지 걱정을 하게 되는데, 윤하의 노래를 들으며 이제는 온전히 각자의 기억과 추억 안에서 헤매어도 된다. 윤하의 목소리는 여전히 거기에 있을 거고, 거기에서 더 깊어질 것이니까. 비가 내릴 때는 물론이고 맑은 날이지만 내 안에 비가 후두둑 떨어지는 어떤 날에도, 나는 윤하를 들을 것이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윤하가 있다. 그 사실이 어찌나 다행인지, 내리는 비가 반가울 만큼, 비가 더 오길 원할 만큼, 윤하의 목소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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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 (Younha) - STABLE MINDSET윤하 노래 | (주) 카카오 M / C9엔터테인먼트
한 곡 한 곡 리스너들의 마음을 공감 시킬 수 있는 곡들로 구성되었으며, 윤하만의 독보적인 감정표현으로 곡의 완성도를 한 층 더 높였고 더불어 최상의 컨디션인 보이스로 돌아와 기대감을 상승 시켰다.
서효인(시인, 문학편집자)
민음사에서 문학편집자로 일하며 동시에 시와 산문을 쓰는 사람. 1981년 목포에서 태어났다. 2006년 『시인세계』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여수』, 산문집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잘 왔어 우리 딸』 등을 펴냈다. 김수영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매일같이 여러 책을 만나고 붙들고 꿰어서 내보내는 삶을 살고 있다.
youeun01
201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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