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우리는 믿고 싶은 것만 믿었던 것
심리 관련 책을 많이 보는 사람이 아니라도 ‘마시멜로 실험’은 들어봤을 것이다. 1960년대 미국 스탠포드 대학 심리학과의 월터 미셀은 4-5세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유치원 선생님이 아이를 한 명씩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마시멜로가 있는 접시를 보여주며, 언제든 먹어도 되는데, 선생님이 나갔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잘 기다리면 하나 더 주겠다고 조건을 걸었다. 결과, 개인차가 있었는데 평균 약 9분을 참았다. 어떤 아이는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먹어버렸고, 어떤 아이는 15분을 참았다. 이후 1982년 미셀은 참여한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설문지를 보내고 꾸준히 관찰했다.
15분을 잘 참은 아이들이 바로 먹어버린 아이들에 비해서 SAT가 평균 210점이나 높았고, 사회성도 좋고, 인기가 있었다는 걸 발견했다. 이 연구결과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한 마디로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다르다”를 실증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참을성이 좋은 아이가 꾸준히 공부도 잘하고, 성실하고, 사회적으로도 성공을 할 수 있다니! 덕분에 엄청난 부모 교육서, 어린이 심리발달 서적 등에서 인용되면서 파블로프의 개 실험과 조건반사 수준의 반열에 올라버렸다.
실은 우리는 믿고 싶은 것만 믿었던 것이다. 이후의 실험은 꼭 그렇지만은 아니라는 것, 그런 결과의 이면이 있음을 알렸으나, 우리는 첫 실험의 결과와 그 해석에만 열광해왔고 애써 그 다음 실험의 이야기는 보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심리를 지적하면서 이후의 실험을 소개하며 우리의 왜곡된 믿음을 교정해주는 책을 발견했다. 인지심리학자 이고은의 『마음 실험실』 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마시멜로 실험의 이후 버전을 소개한다. 미국 로체스터 대학의 셀레스츠 키츠가 같은 실험을 했는데, 아이들에게 조금 기다리면 그림을 그릴 색종이와 찰흙을 주겠다고 해놓고 반에게는 갖다 주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제공하지 않았다. 그 이후 마시멜로 실험을 실시했다.
약속대로 색종이와 찰흙을 제공받은 아이들은 평균 12분을, 못 받은 아이들은 평균 3분만 기다렸다. 연구자는 아이들의 타고난 참을성 기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뢰할만한 환경’이라는 맥락 인식의 차이가 지시를 따를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라 지적했다. 다른 연구에서는 접시 위에 그냥 두면 6분이지만, 덮개를 덮어두면 11분, 다른 생각을 하면서 주의를 분산시키면 13분을 기다리는 차이가 관찰되었다.
결국 “아이의 타고난 참을성이 핵심이 아니라, 주변 상황에 대한 인식과 조건이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마시멜로 실험을 너무 일찍 읽고 믿게 된 부모 중 내 아이가 마시멜로를 막 집어먹는 걸 보고 “아, 내 아이는 싹수가 노랗구나”라고 낙담을 해 버리고 이후로는 아이에 대해 그런 부정적 편향을 갖고 대했고, 아이가 결국 공부를 못하고 인기도 없다면, 그야말로 부모의 부정적 ‘피그말리온 효과’가 작동한 결과일지 모른다. 아이의 성장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실은 부모의 부정적 환경 조성의 영향일 수도 있는데 마시멜로 실험의 ‘자기 예언 충족’으로 인식해버리는 비극이 바로 이와 같은 유명한 실험의 오해로 인해 벌어진 나비 효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이와 같이 우리가 살면서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여러 가지 현상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이고 지금 학계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팩트를 타당한 실험에 근거해서 설명하고 있다. 정신적 고통도 신체 고통과 유사한 통증을 유발하고, 뇌의 고통과 관련한 부분이 공통적으로 활성화되는 것이 관찰된다. 그래서 신체 고통을 줄이기 위해 복용하는 타이레놀과 같은 약이 정신적 고통을 줄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를 제시한다. 고통은 뇌의 관점에서 볼 때는 마음이 아프건, 몸이 아프건 공통적인 면이 크다는 것이다.
거꾸로 신체적 고통이 항우울제의 복용으로 많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는 것도 의학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처방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 외에 점을 보러 가는 심리와 운명에 대한 믿음, 성공적 노화를 위한 심리학에서 밝힌 조건들, 과거-현재-미래에 대한 인식, 손실과 이익이 마음에 미치는 영향, 이별, 짝사랑, 질투와 같은 사랑에 대한 심리도 재미있게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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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연구를 적절히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이 인상적인 면은 무엇보다 외국 학자의 연구를 찾아내서 인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저자가 직접 참여한 연구뿐 아니라 국내에서 시행된 다양한 연구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최근 한 베스트셀러 서적이 다양한 서적을 인용했는데, 인용한 부분이 매우 많아서 이슈가 되었다. 패러프래이징과 인용 서적 표기로 표절은 피했지만, 여러 권을 짜깁기로 인용해서 편집한 것이 실제 저자의 창작물로 볼 수 있겠는가라는 비판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이 책은 저자 본인이 가장 잘 알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연구를 적절히 소개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외국인의 심리를 반영해서 한국인을 설명하는게 아니라, 한국인의 문화심리학적 측면도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저자는 주관적 시간 인식에 대한 실험을 직접 실시한 것을 책에 소개하고 있다. 실험 대상자들은 컴퓨터 게임을 하고 이기면 봉투에 돈을 받고, 지면 돈을 반납해야 한다고 듣는다. 컴퓨터를 조작해서 어떻게 하든 절반은 이기고, 절반은 지게 만들었다. 진짜 실험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게임이 끝나 승패를 알게 된 후 5분 동안 기다리는데, 5분이 되었다고 생각이 될 때 실험실을 나오라고 지시를 했다. 게임에 져서 손실을 경험한 사람은 3분 13초만에 나가겠다고 했고, 이겨서 돈을 딴 사람은 6분 6초가 된 후 5분이 되었다고 인식하고 버튼을 누르고 나가겠다고 했다. 손실을 경험한 사람에게 시간은 매우 늦게 흘러가고, 이긴 사람에게는 빨리 흘러가는 주관적 시간 인식의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을 저자는 재미있는 실험으로 입증한 것이다. 재미없는 영화를 볼 때에는 “아직도 반이 안 지났네”라고 자꾸 시계를 보게 되고, 신나는 영화를 볼 때에는 “벌써 2시간이 지났네”라고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영화 자체의 힘도 있지만, 이런 주관적 인식 차이의 영향이었다. 영화로 따지면 “아, 티켓 값 아까워”라는 손실 인식은 가뜩이나 재미없는 영화가 더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게 한다는 것이라 해석할 만하다. 남의 실험을 열심히 읽고 이해해서 설명하는 것보다 자기가 직접 한 실험을 소개한 것이니 더욱 생생하고 쉽게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었다.
저자가 챕터마다 이야기하는 주제의 결론은 일반적이고 상식적이다. 반전이 있는 내용은 없다. 그렇지만, 고전적 실험부터 최근 연구들, 여기에 한국에서 실시된 다양한 실험에서 입증된 결과를 바탕으로 막연히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들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설명하고 있다. 무심하게 넘기던 일상이 이 책을 읽고 나니 약 10%는 명료해진 것 같았다.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