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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26화 : 동무 때문에 나선 일이니 후회하지 마시오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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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관청이나 경찰에서 일본인 또는 조선인 업자들에 두당 얼마씩의 수수료를 받으며 동조하여 시골의 소녀들을 모집했고, 단돈 십여 원에 팔려온 이들은 육 년에서 십 년의 계약으로 한번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었다. (2019. 07.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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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유치장은 아래 위층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신금이는 공범인 손영순과 분리되어 아래층에 있는 방에 들어가 있었다. 칼 찬 검은 제복의 일본인 순사가 조선인 순사보조와 함께 교대로 감옥을 지켰다. 신금이의 방은 여자들 칸이라 일본인 집에서 도둑질을 했다는 아이보개 소녀와 사창가에서 잡혀온 두 여자가 있었다. 신금이는 한 눈에 척 보고 그들을 모두 알아보았더란다. 


 “얘야 너 반지 땜에 들어왔구나.”


금이가 소녀에게 한마디 했더니 그 애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란 눈을 크게 떴다. 


 “에구머니 그걸 어찌 알았수?”


 “내게는 훤히 보이는데. 너 살던 집에 목욕간 있지? 거기 유리 달린 미닫이 문 아니냐? 반지가 문과 벽 틈새에 굴러 들어간 거야. 아직두 거기서 반짝반짝 하는구나.”


소녀가 억울하다며 다시 울기 시작하자 맞은편에 기대서 졸고 있던 창녀들은 서로 기대고 있던 머리를 떼어내고 지껄였다. 


 “시끄럽게 울고 지랄이야, 이년아 조용히 해. 여기 죄 없이 들어온 사람이 너뿐인 줄 아냐?”


 “거 왜 애는 공연히 울리구 그래. 당신 점쟁이여 무당이여?”


신금이는 배시시 웃고는 그들에게도 한마디 해주기로 한다. 


 “거기는 하룻밤에 손님을 둘이나 받아놓고 각방을 오락가락하다가 쌈이 나서 여기 왔구, 또 거기는 지나가는 학생 모자를 뺏어서 들오라구 그랬구먼. 그러니 그 녀석이 돈이 있는지 없는지두 모르구. 강제루 손목시곌 잡히라니 시비가 안 붙을 리가 없지.”


 “아이구나 정말 도사님 납셨네여. 그럼 우린 언제 나가게 되우?”


 “오늘 하룻밤 자면 나가니까 걱정 마셔. 그 댁에 곱슬머리 남자 있지?”


 “헉 우리 포주 아저씨.”

 

 “벌금 내고 낼 데려갈라구 하는구먼요.”


금이 또래거나 좀 아래로 보이는 두 여자는 두 손을 합장하고 빌면서 연신 유치장 마루에 이마를 조아리며 절을 했다. 신금이는 그들과 대번에 친해졌으니 그중 하나가 제사공장 여공을 하다가 나락에 떨어졌다는 사연을 듣고서였다.


신금이가 취직했던 공장은 제사와 방적이 한 공장에 있었으니 규모가 큰 공장이었다. 일본 본사에서 기술진이며 경영진이 파견된 대기업이어서 경성에서는 조건이 매우 좋은 축에 속해 있었는데도, 하루 작업 시간이 보통 열세 시간이었다는 것이며 임금수준이 일본인에 비하여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점으로 보아 분명한 착취적 노동 조건이었다. 일반적으로 제사공장 같은 소단위의 공장들은 큰 공장의 하청을 받기 마련이어서 노동조건은 거의 살인적이었다. 나중에 이이철이 그녀에게 보여준 적색노조준비위 중앙의 문건을 보면 류재우 동무가 적어 놓은 글은 이러하였다.

 

저들 조선의 여공들 실태를 보자. 처음 한 두 해는 식사만 제공받을 뿐 무보수로 18시간 19시간 혹사당하며, 그 후는 20전 내지 30전을 받으며, 십 년을 일하더라도 40전의 임금을 받는 예는 없다. 벌금제를 만들어 때로는 부채로 한 달에 2원 정도 내는 때도 있다. 또한 그들은 감옥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기숙사에 기거하면서 한 달에 한 번밖에 외출할 수 없고 외출할 때는 감독자가 따라 나간다. 그들의 음식물은 잡곡으로 감옥과 동일하며, 감독, 구타, 고문, 징벌 등은 감옥과 다르지만, 위생 등은 오히려 감옥이 우위를 점할 정도이다. 그녀들은 언제나 80도 이상의 더운 작업장에서 일하며 바람이 통할 구멍조차도 없는 곳에서 혹사되기 때문에 정확한 내용은 알기 힘들지만, 나의 경험만으로도 쉽게 알 수 있다. 즉 내가 알고 있었던 5년 이상의 직공 8명 중에서 지금은 단지 2명밖에 남아있지 않고 나머지 6명은 모두 죽었던 것이다. 내가 일찍이 죽어야만 할 사람만을 알았던가?     

    

지방의 관청이나 경찰에서 일본인 또는 조선인 업자들에 두당 얼마씩의 수수료를 받으며 동조하여 시골의 소녀들을 모집했고, 단돈 십여 원에 팔려온 이들은 육 년에서 십 년의 계약으로 한번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었다. 이들은 각자의 운세에 따라서 사창가나 공장으로 팔려갔다. 이러한 일본 관청의 경험은 관례가 되어 나중에 전쟁시기의 징용과 정신대 동원에 활용되었다. 굶주린 부모를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던진 이 소녀들은 사창가에서 자신의 살을 베어 파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시들어갔고, 공장에서는 소모품처럼 죽어갔다. 신금이가 유치장에서 만난 창녀 아이들은 처음에는 공장에 팔렸다가 기술 향상도 지진하고 부채가 늘어간다 하여 지옥살이를 몸 파는 곳으로 넘겨버린 예에 지나지 않았다. 금이는 아이보개 소녀와 함께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찌질 찌질 울었다. 역시 창녀들은 하루가 돈이라고 일을 시킨다며 포주가 벌금 내어 풀려나갔다. 아이보개 소녀는 절도죄를 뒤집어쓰고 구치소로 넘어갔다. 신금이가 콩이 절반인 가다밥에 오경찬 짠 무에 콩나물 소금국으로 세끼를 먹고 지내더니 난데없이 사식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점심 식사 후에 순사가 철창 앞에 다가와 문을 따더니 나오라고 했다. 


 “면회다.”


 “누가요?”


 “알게 뭐냐, 약혼자라는데?”


금이는 어두컴컴한 유치장을 벗어나 경찰서 면회실로 들어갔는데 유리창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등지고 앞에 검은 것이 우뚝 서있었다. 얼굴도 보이지 않았지만 순사가 약혼자라고 말했을 때 금이는 어쩐지 그가 한쇠 이일철일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들은 입회 순사를 옆에 두고 마주 앉았다. 


 “어제 집에 와서야 뒤늦게 소식을 들었소.”


일철이 말했을 때 그 목소리는 부드럽고 약간 쉰 듯 나직했다. 금이는 그 순간 이 사람에게 시집을 가야 한다고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그때에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알았다. 나는 이 사람의 지킴이가 될 것이다. 


 “동무 때문에 나선 일이니 후회하지 마시오.”


일철의 말에 금이는 일부러 새침하게 받았다.


 “누구 때문이 아니라구여.”


 “알아보니 화사를 옮기도록 해주고 그 직장에서는 해고한다더군요.” 


 “그만둘 작정이에요.”


일철은 할 말이 더 이상 없어졌는지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는 각진 모자를 쓰고 학생복 위에 망토를 걸치고 있어서 순사보다도 높은 사람처럼 보였다. 잠시 둘 사이에 침묵이 흐르자 순사가 면회 종료를 알렸다. 금이는 그 방을 나가기 전에 일철에게 재빨리 말했다. 


 “여기선요, 다른 사람들이랑 나눠 먹어야 해여. 인절미나 절편을 사서 넣어주셔요.”


그 말을 알아들었던지 그녀가 유치장으로 돌아가 한 시간쯤 되었을 때에 큼직한 떡 보따리가 들어왔고 그녀는 아래 위층의 십여 명 유치인들에게 떡을 골고루 돌렸다. 그리고 신금이는 그 후 오랫동안 자랑을 했었다.


 “우리 약혼은 결국 유치장에서 치른 셈이란다. 죄수들이 혼약의 떡을 나누어 먹었으니까 그이들이 증인이지 깔깔.”


열흘 만에 손영순과 신금이가 풀려났다. 손영순은 이미 자신의 기술이 쓸모 없게 되었음을 알았다. 그가 다른 공장에 일자리를 얻어 현재와 같은 직조기를 책임지는 조장이 되려면 이전 직장의 추천서나 증명서를 받아야 했는데, 그녀는 오히려 파업위원장을 했다는 이름이 따라다닐 것이다. 그녀의 고향과 가까운 지방도시에도 군소 제사 방적공장이 있으니 용인 잡부로 취직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씩씩하게 말했다.


 “내 새끼 키우며 고향에서 어떻게든 살아봐야지.”


신금이도 해고당했으니 기숙사에는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었고 우선 거처를 마련해야 하였다. 남자들 같으면야 맨손으로도 하루 일용 품팔이 일을 하며 일세방이나 봉노나 함바집에 들어가 합숙을 하면 되겠지만, 여자는 제 몸 단속을 해야 하고 노상의 가두노동은 할 수 없었다. 박선옥이 외가에 자기 쓰던 방에서 함께 지내자고 하여 신금이는 기숙사에 있던 짐을 그리로 옮겼다. 며칠 지내던 중에 이일철이 아우와 함께 그녀를 찾아왔고 일철은 묵묵히 방바닥을 내려다보며 앉았고, 아우 이철이가 앉은자리에서 상체만 구부려 절을 하고는 능청스럽게 말을 꺼냈다. 


 “형수, 인사드립니다, 껄껄. 우리 형이 이미 유치장 면회할 제 약혼자라고 관청 문서에 적었으니 이젠 무르지도 못하오.”


신금이도 이일철도 끽 소리 못하고 앉았더니 박선옥이 곁에서 맞장구를 쳤다. 


 “맞아, 나두 이제는 조장에게서 해방될 때두 되었지. 어서 우리 언니 모셔가우.”


이철의 말을 요약하자면 형이 이제 곧 철도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배치 받게 되면 가장의 구실을 해야 한다. 지금은 약혼 기간이라 그냥 집에 와서 건넌방을 쓰면서 함께 살아도 되지만, 먼저 부모님의 허락이 있어야 할 테니 도리 상 다른 곳에 모시겠다. 일간 짬을 내어 김포 집에 우리 아버지와 형이 찾아가 청혼을 넣을 작정이다. 결혼식은 형의 졸업 이후인 내년 정이월에 치르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활발하고 낙천적인 신금이도 막상 제 앞치레를 해야 할 때에는 말수도 적어지고 생각도 없는 듯이 보였다. 형제가 다녀간 이튿날 아침에 박선옥이 출근하고 금이는 마당에서 노부부의 떡쌀 앉히고 절구에 찧고 하는 일을 거들고 있었는데, 어떤 여편네가 서슴없이 가게 옆 쪽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응, 니가 금이냐?”


 “예, 누구신데……”


 “누구긴 누구여? 자네 데리러 온 사람이지.”


그런데 그렇게 호기롭게 큰 목소리로 말하는 여편네의 등 뒤에 또 한 사람의 덩치 크고 자다가 일어난 것처럼 인상과 머리카락이 부스스한 또 하나의 여편네가 싱긋이 웃으며 서있었던 것이다. 글쎄 남의 집에 새색시를 만나러 온다면 옷이라도 갖추어 입어야 남 보기도 좋았을 텐데. 그냥 맨 저고리에 아래에는 잡부들이 작업복으로 흔히 입는 왜바지 몸뻬를 걸치고 생뚱맞게 발에는 고무장화를 신었다. 당황하여 그의 아래 위를 훑어보는 금이의 눈길을 따라서 자기 주제를 스스로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그녀는 사내처럼 너털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허허 내가 우리 서방님 일터에서 도와주다 달려오느라고 차림새가 이렇다네. 나는 일철이 이철이 고모 되는 사람이여.”

 

금이는 주위에 선옥이 외조부모가 없었다면 그녀의 등 뒤에 따라온 사람에 대해서도 물어보았을 거라고 나중에 식구들에게 얘기했다. 신금이는 그렇게 막음이 고모와 만나게 되었고 중요한 장면마다 그녀와 한쇠를 따라다니던 주안댁까지 보게 되었던 것이었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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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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