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경
『말 좀 끊지 말아줄래?』 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은 책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인물들의 ‘말’로 넘실댄다. 말맛이 느껴지는 탄력적인 대화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 대화는 자꾸만 엉뚱한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우리는 보통 친교를 목적으로, 혹은 정보를 나누기 위해 대화를 주고받지만, 최정나 소설의 인물들은 대화를 주고받는다고 해서 서로를 더 이해하거나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거나 하지 않는다.
작년에 「한밤의 손님들」로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면서 많은 독자분들에게 소개되긴 했지만 단행본으로는 처음 선보이는 첫 책입니다. 첫 책을 내신 소감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책을 처음 받고 표지를 손으로 만져보며 부들부들한 종이의 감촉을 느꼈어요. 책은 물질인데도 만들어주신 분들의 정성이 느껴지는 게 신기했지만 곧 정성이 들어갔으니까 당연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을 쓰라고 격려해주신 분들과 제가 지내온 시간, 만나온 사람들이 모두 떠오르기도 했고요.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저의 한 시기가 정리된 것 같았어요. 이미 오래전에 정리된 어떤 시기와 거기 있던 저 자신을 마주하는 것 같기도 했고요. 그래서 좀 담담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독자분들께서 반응을 해주시니까 그제야 책을 냈다는 게 실감났어요.
『말 좀 끊지 말아줄래?』 를 처음 접하게 될 독자분들을 위해 작품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주신다면요. 키워드는 역시 ‘말’이 될까요?
가끔 제 목소리나 표정이나 행동 같은 게 진짜 제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특히 목소리는 톤과 뉘앙스에 따라 감정이 드러나고, 말은 내용에 따라 성격이나 생각, 취향이 드러나기도 하잖아요. 그러니까 목소리에도 표정이 있는데, 그 표정은 사회적 분위기와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라는 시스템 안에서 비슷비슷한 생각을 하며 비슷비슷하게 살고 있구나, 느끼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목소리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 아닌가, 나아가서 내면이라는 것의 실상이 무엇일까, 고민하기도 하고요. 간혹 말을 하거나 듣다 보면 말 자체를 전시하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거든요. 욕망을 드러내기도 하고 감추기도 하고요.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말들, 쓸데없는 말들도 많잖아요. 늘 우리가 하고, 듣는 말들이요. 그런 말들에 관심이 있어요. 이 소설집에는 그런 관심이 담겨 있습니다.
표제작 제목이 강렬한데요, 제목은 어떻게 떠올리게 되셨나요.
소설을 쓸 때 제목을 가장 나중에 붙이는 경우가 많아요. 제목을 붙이는 데 좀 어려움을 겪는 편이거든요. 「말 좀 끊지 말아줄래?」도 마찬가지예요. 다 쓰고도 제목이 없었어요. 처음에는 소설 속 인물의 이름을 가져와 ‘우씨, 이씨’라는 제목을 생각해보았어요. 어감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익명을 나타내면서도 별 의미 없는 점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별 의미 없는 말들이 쌓여서 우리 인생이 되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좀 장난스럽기도 하고, 뭔가 확 와닿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소설을 죽 읽으며 살펴보는데 “말하는데 자꾸 말 끊지 말아줄래?” 타박하는 이씨의 대사와 “이제 나 말해도 되는 거냐?” 묻는 조씨의 대사가 눈에 들어왔어요. 이 대사들이 소설 전반의 흐름을 아우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둘 중 고민하다가 이씨의 대사를 조금 다듬어 제목으로 삼았어요.
이씨와 조씨의 대사에 대해 언급해주셨는데, 여덟 편의 단편마다 대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편이지요. “드릴 저기가, 그러니까 말씀이 없습니다” “잘 있으시오. 나는 먼저 가오. 빠이빠이!” 등 독특한 리듬과 유머가 느껴지는 대사들이 많은데요, 평소 사람들의 대화를 메모해두는 편인지 어떤지 궁금합니다.
어느 순간 주위에서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걸 메모하는 편이에요. 소설을 쓰면서 잊고 있던 기억들이 불쑥 떠오를 때도 있고요. 그런 것들을 다듬어 대사로 쓰기는 하지만 그게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많아요. 그럴 때는 인물들이 대화를 이끌어가도록 맡겨놓아요. 인물들이 하는 대화는 제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흐를 때가 많고요. 그러면 저는 그들의 대화가 어떻게 뻗어나갈지 궁금하니까 그냥 인물들이 말하는 대로 따라가요. 마치 인물들의 말을 받아 적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죠. 제가 쓰려고 생각했던 것은 예상 가능하지만, 인물들의 말을 따라가는 경우에는 예상에서 벗어나기도 하는데, 소설의 전반적인 흐름을 조금 조정해야 하니까 어렵고 힘들지만 그게 재미있기도 한 것 같아요.
이야기는 주로 레스토랑, 집 마당, 온천 등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진행되는데요, 여러 공간을 오가기보다 하나의 공간으로 설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압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에 공간을 한정 짓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하지만 공간이 한정되어 있는데다 과거의 사건이나 인물의 내면이 서술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대사나 오브제 등을 통해 소설 속 공간으로 외부를 불러오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소설에 등장하는 친구, 가족 등은 대부분 데면데면한 사이입니다. 친밀하거나 어색한 사이보다 애매한 관계의 인물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편이신가요.
저는 제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이 평범하다고 생각해요. 평범한 관계 속에서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평범한 사람들이요. 그리고 아마도 그들은 서로 친밀하다고 느낄 거예요. 하지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어떤 시간과 공간, 그 안의 사람들을 도려냈기 때문에 데면데면한 사이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피부를 측정기로 들여다보면 이게 내 피부인가 싶어서 놀라기도 하는 것처럼요.
주로 어떤 책들에 흥미를 느끼시는지요. 독자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고전을 읽을 때 좀 행복하다는 기분이 들어요. 소설을 읽는 시간이 너무 좋고, 소설을 통해 작가와 작가가 그려낸 인물들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피곤하거나 지쳐서 좀 쉬고 싶을 때는 프란츠 카프카와 레이먼드 카버, 제임스 조이스와 윌리엄 포크너 등의 소설을 읽어요.
* 최정나
1974년생. 201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전에도 봐놓고 그래」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단편소설 「한밤의 손님들」로 2018년 제9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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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끊지 말아줄래?최정나 저 | 문학동네
귀기울여 엿듣던 대화가 도돌이표처럼 이어지는 어느 대목에서 우리는 돌연 일상을 낯설게 만드는 기묘한 긴장의 분위기에 휘감기고, 어느새 자세를 고쳐 앉으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